그날이 올까요?

이사야 65: 17-25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큰 고난의 역사로 기억되는 것이 바로 바벨론 포로 사건입니다. 기원전 587년에 남유다가 함락되고 결국 예루살렘은 초토화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이방인들에 의해 완전히 짓밟히고 맙니다. 국가의 지도자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라 믿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신앙에 대한 여러가지 의문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그들에게 풍요와 번영을 이루게 해주시는 분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을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지키시는 수호신으로 다른 민족이 믿는 그 어떤 신보다 더 위대한 분이라 믿었던 겁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들인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 의해 나라를 잃고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더럽혀졌다는 사실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것에 대해 회의와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지요.

우리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큰 시련에 직면할 때가 그렇습니다. 알 수 없는 불치병에 갑자기 걸리거나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린 먼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나에게 이러한 시련을 주시는가? 지금까지 하나님 말씀대로 잘 순종하며 살았건만,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라고 말이지요. 믿음이 한 순간에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출애굽의 과정에서 광야생활을 겪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문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분명 구원을 약속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런 고난의 여정을 겪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은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힌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노예의 삶이라 해도 이전의 편안한 삶이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막상 정착을 한 이후에 이들은 늘 날마다 장막을 거두며 하루하루 주시는 만나로 끼니를 때우던 광야의 생활을 그리워하게 되지요. 왜 그럴까요? 소중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편안하고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날마다 채워주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여정이었으니 말입니다. 후에 사람들이 그날을 추억하며 주의 장막에서 한날이 궁전에서의 천날 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생활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던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다시 의뢰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자신들의 불순종했던 삶을 되돌아보며 회개하는 이들에게 그 순간은 소중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기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새로운 하늘과 땅을 열어 주신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혼란과 역경 뒤에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지요. 이제 꿈에 그리던 고향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아마도 저마다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환하여 자유를 만끽하며 새로운 삶을 누리고 싶은 꿈으로 온통 가득차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들의 마음 한켠에서는 언제든 이 기쁨을 빼앗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환희의 순간을 맞이하면서 행여 일어날지 모를 불안감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기쁨이 되는 완전한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더불어 기뻐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 모습을 이사야는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사라질 것이요, 모두가 주어진 생명을 다 누릴 것이고, 자기의 소유와 노력이 결코 허사가 되거나 남의 손에 빼앗기는 일이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런 모습이야말로 하나님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모습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요즘 시대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모습들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수고해서 얻은 열매를 자기가 갖고, 자신이 손수 지은 집에서 자기가 사는 것을 막아설 권리가 어디있습니까?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에서 이것은 말처럼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잃고 포로의 생활을 해야만 했던 그들에게 일상은 눈물의 연속이었습니다. 한서린 하루하루의 삶이었습니다. 전쟁과 질병과 같은 고통 때문에 자기 수명을 다 채울만한 때도 아니었습니다. 생명도 자기 마음대로 안되는 세상에서 재산이나 소유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러다 보니 이들의 심경에 한가지 변화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소중함입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잃어버리고 나니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일조차 정말 기쁘고 특별한 모습이 될 수있었던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고난의 역사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다시 회복하게 만든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숨죽이며 갈급한 삶을 버텨나가야 했던 그들에게 이전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한숨의 공기와 한 모금의 물은 소중한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던 가족들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조차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들의 포로된 삶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일상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18절에서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길이길이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역사가 곧 우리가 기뻐하는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깨달을 수 있는 이들에게 비로소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도 분명하게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려하는 이에게 보이고, 들으려 하는 이에게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깨닫는 이에게 매일의 삶은 복된 일상일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근원에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습니다. 한순간도 값없이 보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에서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지요.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고, 그래서 찬양할 수 있는 기쁨이 생겨나는 이유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힘이 들고 생각처럼 잘 안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남들도 몰라주는 것 같아 “이럴려고 목사했나”라는 서운한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하나님은 왜 날 외면하시는가 라는 푸념이 먼저 들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되돌아 생각해 보면, 그건 어디까지나 제 자신의 입장에서만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실행하고자 했던 일은 언제나 선한 것이라 믿었고, 그래서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는 일이었으며, 같은 이유로 함께 하는 이들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착각을 했던 겁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눈이 뜨이고 나니, 모든 것이 사람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내 행함이 아니라 매순간 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새하늘과 새땅이 열리듯, 시선의 변화가 삶에 기쁨을 알게 하는 근원이 되었던 겁니다.

요즘 저는 매주일마다 새로운 기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을 품에 안아 보거나,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해보고,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몸으로 느껴보는 것입니다. 물론 키우고 양육하는 부모들이야 힘들어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의 입장에서는 생명이 나와 자라가는 과정이 너무나 신기하고 또 그 속에서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기에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감사함이 저절로 솟아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지난 10여년간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채 바라보지 못했던 성도님들의 자리를 떠올릴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넘쳐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게 다 복입니다. 제게 잘 해주셔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배 때마다 찬양이 신이 납니다.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또 우리 안에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며 봉사할 수 있도록 힘주시고 은혜를 더하신다는 기쁨으로 찬양을 부릅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새하늘과 새땅이 열리는 역사가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임할 수 있기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이 변하여 진정 소중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깨달을 수 있게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참 혼란스럽지요?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들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당연한 권리가 부정되고, 일어나서는 안되는 반칙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불공평한 모습입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처음부터 누가 덜 나쁜가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역대 최악의 미국대선이 많은 사람들의 예측을 벗어난 놀라운 결과로 끝났습니다. 어떤 이들은 후폭풍을 걱정하며,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미래를 크게 염려하기도 합니다. 혹여 바벨론의 포수처럼 정치경제적 암흑기를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 모두 생각하지 못한 상황과 결과를 두고 우리 시대를 반성하며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는가”를 질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사야는 우리에게 이러한 말씀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혼돈과 우려의 상황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내던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시어 우리와 함께 기뻐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분명 새날은 옵니다. 그러나 이 날은 언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닫힌 눈을 뜨면 됩니다. 막힌 귀를 열어 듣기만 하면 됩니다. 새하늘 새땅을 향해 시대의 변화를 요구하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오늘 구태를 넘어 저기에 새로운 희망이 보이십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잃어버리고 지내던 소중한 삶의 가치와 의미가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그날을 함께 열어갑시다. 모두가 기뻐하고 하나님도 기뻐하실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만들어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