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교회

누가복음 12:32-40

얼마전 ‘푸른 눈의 수행자’로 불리며 25년간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로 활동하던 미국인 출신 현각 스님이 자신이 소속된 한국 불교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 큰 화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지적한 한국 불교의 문제점은 종단내에 뿌리깊이 자리잡은 상명하복식 유교 문화와 일반 신도를 무시한 승려 중심의 권위주의, 그리고 기복신앙 등이었습니다.

타종교에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공교롭게도 오늘날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흔히 발견되는 상하적 위계구조와 전권을 휘두르는 목회자 중심의 교회 행정, 그리고 번영신학으로 대변되는 물질숭배 사상의 교회내 침투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교회의 문제점들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공과 번영이 신앙의 열매처럼 여겨지면서 나눔과 가난의 실천은 말뿐인 이상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성장과 팽창을 강조하는 교회에서 소신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도를 논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처럼 몸으로 실천하려 드는 신앙인도 많지 않지만, 설사 그렇게 한다 해도 스스로 감내해야 할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외롭고 힘든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현실의 상황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교회 중의 하나가 언론을 통해 조명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포항에 위치한 작은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이 교회는 동네에 세워진 지 30여년이 지나도록 교인이 10명 안밖을 넘지 않는 초미니 교회입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이 교회의 이름을 제쳐 두고 굳이 “안되는 교회”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실제로 전형적인 안되는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교회에 오는 목회자들도 안되는 교회에서 무엇이든 될 것이 없다는 패배감이 강했던지, 오래 그곳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 건물 주변조차도 손이 가지 않아 엉망이 되버렸던 모양입니다. 사람들도 어차피 안되는 교회 라는 생각에서 였는지, 교회 마당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갔던 것이지요.

그러다 4년 전에 새로운 목회자 부부가 파송을 받아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동네 사람들이 쓰레기를 교회에 무단으로 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팻말도 걸어 놓고 호소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안되는 교회라는 이미지가 박혀서 인지 쉽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얼마 안되는 교인들을 보며, 역시 안되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법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목회자 부부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꾸는 교회로 변화시켜 보자는 다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쓰레기로 가득찬 교회 터를 깨끗이 치우고 텃밭을 만들어 가꾸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 동네사람들의 쓰레기 투기장으로 변했던 교회 주변에는 화분을 가져다 놓고 나무를 심어 교회를 녹색의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쓰레기 무단 투기가 사라지고, 교인들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도 함께 텃밭을 가꾸는 일에 참여하여 교회 마당에서 작물을 키우고 수확한 열매를 함께 나누면서 생명의 기쁨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소중함도 알리고 생명을 키우며 말씀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지요. 지금은 ‘녹색교회’라는 명칭을 얻어서 하나님의 창조로 주신 자연과 생명체를 가꾸는 교회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명을 가꾸고 그것의 소중함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가 된겁니다. 이제 동네사람들도 더 이상 ‘안되는 교회’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되는 교회’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되는 교회’의 모습을 예수께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계실까요? 그리고 ‘되는 교회’의 지체인 그리스도인으로 갖추어야 할 신앙의 자세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이를 두 가지로 요약하여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마음을 하늘에다 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자가 오는 것을 늘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32-34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요건으로 낡아 없어지기 쉬운 세상에 재물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그 나라에 재물을 쌓아둘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곧 마음을 세상에 두지 말고 하늘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스페인 속담처럼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 차라리 재물을 쌓으려거든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하늘에 쌓는 편이 낫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를 실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예수님은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푸는 것’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에 재물을 쌓는 방법이라는 것이지요.

다른 한편으로 예수께서는 이러한 행위를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모습으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이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처럼 욕심이 생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쌓아두어야 할 재물은 다름 아니라 바로 영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는 재물을 쌓아둘 수는 있어도 그것은 영원한 자기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재물을 바라보는 영적인 마음은 하늘 나라에 쌓이는 진정한 보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손에 넣을 수 있는 재물에 대한 탐욕이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참된 시선을 갖는 것이야 말로 ‘되는 교회’와 참된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수중에 재물을 쌓는 일보다 이를 함께 나누는 삶이 더 값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을 두고 사는 신앙의 모습을 어느 때라도 주인이 찾아 올 것을 대비하고 있는 준비된 종과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 35절을 보면, 준비된 종의 모습을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있는 상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표현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의복은 대부분 길게 늘어 뜨린 형태여서 옷자락을 허리까지 걷어 올리지 않으면 일하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꼭 허리춤을 붙잡아 매야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자기자신의 마음을 무언가에 꼭 붙들어 매어놓지 않으면 실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늘 스스로를 붙들어 매고 중심을 잡는 신앙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대의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는 진리에 중심을 두는 신앙의 자세를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되는 교회와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등잔의 비유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말씀입니다. 당시 등잔은 기름을 담은 배 모양의 접시에 무명 심지를 담은 모양이었습니다. 때문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언제나 심지가 깔끔히 손질되어 있어야 했고, 기름도 계속 공급되어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심지 (心地)는 마음의 터요 바탕을 뜻하는 말입니다. 곧 우리의 마음 바탕이 늘 정결해야 한다는 말씀인 셈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성화된 삶을 사는 노력이 바로 ‘되는 교회’를 세우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만드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성화된 삶을 사는 모습은 마치 등잔에 항상 기름이 마르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날마다 삶속에서 충만할 수 있도록 자신을 가꾸고 마음의 바탕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비록 적지만 이 시대의 풍조를 좇기 보다 마음을 하늘에 두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기쁨으로 허락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중심으로 성화된 삶을 실천하는 이시대의 진정한 되는 교회와 참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우리가 지켜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