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지르러

이사야 5:1-7, 누가복음 12:49-53

내일은 굴욕적인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민족의 독립을 되찾은 광복절입니다. 나라의 주권은 물론이고 유구한 문화유산과 언어마저 강탈당했던 치욕의 36년의 역사를 마치고, 새로운 독립국가로서의 서막을 알리게 된 영욕의 날입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우리 민족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남과 북이 갈리는 쓰라린 아픔을 맛보아야 했고, 지금까지 분단의 비극은 이 땅 가운데 언제 평화가 오려는가 라는 탄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화해와 상생의 대화를 통해 남과 북이 평화 통일의 역사를 향해 달려 나가면 좋으련만, 여전히 비난과 불신의 벽은 높아서 한반도의 냉전상황이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은 지난 7월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문을 보면 세상의 갈등이 교회 안에서도 재현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화해와 평화의 도구로 바로서야 할 남북의 교회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회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주님은 교회에게 화목의 직분을 주셨지만 이 민족을 바르게 섬기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평화의 사도로 부르셨지만 화해를 도모하기보다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둘로 나뉜 서로를 같은 동포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아예 사랑할 마음조차 품지 않았습니다. 주여, 우리의 허물과 죄를 고백하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것은 오늘날 전쟁과 갈등이라는 어둠의 세력들을 몰아내고 평화와 상생의 빛을 밝혀야 할 교회의 시대적 사명이 무엇인가를 재확인해주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 땅 위에 참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가신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을 따르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누가복음의 말씀을 보면 놀랍게도 예수님은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온것은 세상에 평화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한반도를 비롯해서 세계 도처에서 빚어지는 비극적인 갈등 상황을 고려할 때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마치 교회가 세상에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비난을 떠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분명한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억해야할 예수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친절하고 자비를 베푸셨던 ‘부드러운 남자’의 모습이 아니라,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위선과 계략에 굴하지 않고, 불의에 항거하셨던 ‘강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 스스로 받아야 할 세례라고 표현한 십자가의 대속과 고난도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결연하게 맞이할 수 있었던 “강한” 주님의 모습 말입니다.

그토록 강한 예수님의 모습은 자신을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 세상에 불을 지르기 위해 왔다는 말씀에서 드러납니다. 물론 이 불은 모든 것을 심판하는 증오와 갈등의 불이 아닙니다. 세상의 거짓과 위선을 태우고 새로운 참평화와 정의의 세상을 구현할 생명의 불입니다. 우리를 멸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불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불 태우려는 대상도 그 무엇이 아니라 결국 당신 자신이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태우심으로 인해 모든 죄악의 뿌리를 없애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오늘 이 생명의 불 앞에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3:16)에 따르면,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는 선포를 마주하게 됩니다. 곧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맞는 ‘적당한 온도’에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생명의 불로 뜨겁게 타올라야 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문제를 감당해야할 교회의 사명입니다. 생명의 불로 뜨겁게 타오를 때 비로소 어둠이 사라지고, 불의와 부패는 그 실체가 만천하에 뚜렷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뜨거운 생명의 불로 타오른다 하더라도 그 결실은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빛은 어둠 가운데 더 밝게 비추는 법입니다. 그래서 부패하고 부조리한 어둔 세상 속에서 나오는 진리와 참평화의 외침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하지만 빛을 싫어하는 어둠의 세력이 가만 놔둘리 만무합니다. 탄압하고 더욱 억누르려 할 겁니다. 때문에 진리와 참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갈등의 상황을 치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는 피를 나눈 가족들 안에서도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고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결연한 의지와 확실한 믿음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 조차 옛사람을 벗어던지는 갈등을 극복하는 결단이 없이는 결코 새사람으로 변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 우리에게 선택의 상황이 발생합니다. 뜨겁거나 아니면 차갑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뜨뜻 미지근하던가의 선택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단호합니다. 불이 되라는 겁니다. 뜨거워지라는 겁니다. 적당히 넘어가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은 생명의 불로 우리를 참된 진리와 평화 그리고 정의의 포도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신 것이 그 분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적당히 미지근한 우리의 믿음이 쓸모없는 들포도를 맺게 했습니다.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포도원이 궁극에 맞이할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다시 물어보시는 말씀입니다. 열매를 맺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생명의 불처럼 뜨거워 지십시오. 불을 일으켜 우리의 낡은 옛 사람은 태워 버리십시오. 불을 일으켜 교회를 옭아매고 있는 사사로운 욕망의 끈과 구습을 태워 버리십시오. 불을 일으켜 어두운 세상의 악은 태워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십시오. 뜨거운 신앙의 열정으로 새사람, 새교회, 새나라를 일으키는 주님의 참된 포도열매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