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민수 (君舟民水)

마태복음 25:31-46

 

지난주 한국의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여 발표하였습니다. 매년 한국사회를 가장 드러내 준다고 생각하는 사자성어를 지성인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해 왔는데, 2016년에는군주민수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말은 중국 고전인순자(荀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실제 원문에는임금은 ,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엎을 수도 있다 되어있는데, 군주민수는 이것을 함축하여 만든 단어입니다. 풀이하면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있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배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주권이 백성에게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있는 대목입니다.

 

공동체라는 배가 잘못된 길을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방향을 얼마든지 있는 법입니다. 오늘날 같이 민주사회에서는 국가를 정치하는 대리인으로 위정자들을 선출하는 것도 국민의 몫이지만, 그들이 잘못된 길을 밑으로 끌어내리는 역시 국민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이라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정농단으로 혼란한 국가 위기 상황에 대처하여 촛불민심으로 일어선 시민들의 모습은 지성인들의 눈에군주민수 크게 다를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는 겁니다.

 

이제 2017 정유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금년은 첫날부터 주일로 시작합니다. 주일은 부활의 날입니다. 지난 엿새동안 세상 속에서 지은 죄를 씻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는 날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주의 자녀들이 천국잔치를 미리 맛보는 날이기도 합니다. 생명의 날이자 동시에 기쁨의 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를 주일로 시작한다는 점이 작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비록 지난 동안 우리의 삶이 다소 혼란하고 어려움이 있었다 지라도, 새해는 복되고 기쁜 주일의 의미처럼 모든 것이 새롭게 변화되어 옳은 방향으로 열매를 맺을 있는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속사람이 변화되어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있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제자들을 만들어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가득찬 모습으로 변화시켜 나갈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국과 미국을 비롯한 땅의 모든 나라에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 흘러서 국가와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한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노자 사상에 따르면 흐르는 물처럼 가장 선한 , 다시 말해 가장 바람직한 방법도 없다고 합니다.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지요. 물이 가라하면 가고, 멈추어 서라 하면 멈출 때가 가장 최선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지 질문이 생기지요.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는 겁니다. 요즘처럼 제각각이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기준을 어디에서 찾을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이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라고 있는 내용입니다. 본문은 인자가 다시 오실 그날의 모습을 전하면서, 하나의 명확한 기준으로 최후의 심판이 행해질 것이란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를 예수께서는 양과 염소를 가르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하셨습니다. 어떠한 기준에 따라 우리 모두는 둘로 구별된다는 겁니다. 오른편의 양과 왼편의 염소로 갈라진다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렇게 구별시키는 이유가 단지 좌우의 진영을 갈라놓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는 영생을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영벌의 심판을 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에도 한국이나 미국사회처럼 좌우의 진영 논리가 존재하는 것이냐며 비판의 시선으로 보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말하는 좌우의 구별이라는 것이 매우 작의적인 아닙니까? 지금도 제가 보기에 왼편에 계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분들이 생각하기에 자신들은 오른 편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실테니 만일 제가 저만의 기준을 가지고 왼편에 앉은 분들에게 불이익을 준다면 얼마나 받아들이기 어려울까요? 무엇보다 영생과 영벌을 나누는 기준이라면 누구라도 납득할만한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맥락에서 예수님이 제시한 심판의 기준은 우리를 놀라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그것은 바로지극히 보잘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는가?’ 입니다. 한쪽에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축복을 주고 다른 한쪽에는 영원한 형벌이 되는 저주를 내리는 기준이 이것에 달려 있다는 것이지요. 나아가 예수께서는 기준을 충족시킬 있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언급해 주셨습니다. 굶주린 , 목마른 , 나그네, 헐벗은 , 병든 , 그리고 갇힌 자를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바로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말씀해 주신 겁니다.

 

반대로 영벌을 받을 염소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어떠한 잘못이나 악행을 범했을 , 형벌을 받는 세상의 방식과는 달리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행하지 않은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극히 보잘 없는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그들을 위해 아무 일도 행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영벌의 근거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지난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비판 가운데 하나가세월호 사라진 7시간이었습니다. 배의 선장과 조타수처럼 국민의 안전과 국정 방향을 책임져야 지도자들이 지극히 작은 어린 생명들이 생사를 오가는 순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요지였습니다. 차라리 아무 것도 없는 무능 때문이라면 많은 국민들은 납득하고 새롭게 정비할 것을 요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우리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묘사하는 무감각과 무관심 그리고 무책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던 것이지요.

 

동안 아무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잊지 않고 사건을 입에 담는 이들은 사회의 왼편 염소자리에 내몰려 보이지 않는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어느새 진실보다는 현실이, 관심 보다는 편리가 우리의 마음을 차지해 버렸던 겁니다.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손익계산을 통해 현실의 이해를 따지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라는 기준이 우리도 모르는새 우리 자신을 평가하고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던 겁니다.

 

생명의 방주인 교회도 요즘은 방향을 많이 잃어 버렸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본래 방주에는 방향키가 없습니다. 창문도 만들지 않았지요.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방주가 생명의 공간일 있었던 것은 이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의지한 것이지요. 같은 물이라 하더라도 방주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홍수는 방주를 움직이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던 이들에게 홍수는 생명을 앗아가는 심판의 물이었습니다.

 

군주민수. 인생을 흐르는 물에 비유하듯 교회와 국가 공동체도 역사의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습니다. 다만 어떤 이들에게 물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반면, 어떤 이들에게 물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 버릴 있는 심판의 공포로 느껴지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바라기는 금년 한해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교회와 국가 공동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수가 되어 기준에 합당한 삶을 사는 새해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지극히 보잘 것없는 생명을 향한 관심과 필요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정과 교회, 그리고 공동체가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누리는 진정한 목양지가 되는 해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