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밥상

고린도전서 11:23-26

우리말에 식구(食口)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함께 밥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관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옛부터 한솥밥을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이웃사촌이 멀리 사는 혈육간 보다 더 가깝다고 여길만큼 우리의 통념상 식구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영어로도 함께(com) 빵(pany)을 나누는 사이를 뜻하는 company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동료란 한 화덕에서 구워낸 빵을 함께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겁니다.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함께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것은 혈육 이상의 끈끈한 관계를 나타내 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식사하는 것을 매우 즐기신 것처럼 보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만 봐도 그렇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기적의 사건을 통해 기억하는 것은 오천명이 함께 먹었던 빵이었지, 결코 그날 예수께서 선포하셨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님도 아예 자신을 “생명의 빵”(요6:48)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시기도 했습니다. 말씀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치며 잔소리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빵을 떼어 주며 이를 먹고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이 땅에 와서 우리와 함께 밥상을 나누고자 하신 궁극적 목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밥상은 육신의 생명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을 살리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장(場)이 된 것입니다. 사람이 먹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도 거룩한 밥상을 통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신 그리스도를 기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곧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맞이할 성찬의 자리는 주님을 기억하며 영원한 생명을 나누는 거룩한 생명의 밥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생명의 밥상을 대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몸을 떼어 주시며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의 밥상을 허락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함께 그 밥상을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다만 사람들 사이의 관계만을 국한하여 하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도 포함된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밥상에서 함께 나누게 될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정작 그 위에 올라갈 먹거리가 잘못되면 그 역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무너져서, 우리가 나눌 생명의 밥상 자체도 준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위해 창조하신 자연의 생태계가 무분별한 인간의 소비와 탐욕적인 이윤 추구로 인해 고통 당하며 희생되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자연 재해로 인해 피해를 당한 소식을 들으셨을 겁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자연적으로 발생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이상적인 기후 변화와 자연 현상 뒤에는 바로 인간의 탐욕과 무관심이 숨어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의 욕심과 무지로 자행한 또 다른 폭력 앞에 자연 생태계도 몸을 흔들며 절규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 하에서 오늘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는 생명의 밥상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다시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세계성찬주일을 맞이하여 현존하는 교회의 일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연환경 속에서 모두가 하나되는 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성만찬을 통해 예수께서 우리에게 빵과 포도주를 주시며 기억하라고 하신 말씀의 의도를 다음의 세가지 관점에서 살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도 이 땅에 자연의 일부로서 우리를 찾아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연의 세계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 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도 그 자연의 일부로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그 자연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다’고 흐뭇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은 스스로를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시기도 하시고, 무엇보다 그 속에 성육신인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성만찬의 밥상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다는 것이 결국 하나님의 작품인 대자연 속에 그 일부가 되어 찾아오신 사건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의 빵이 될 수 있도록 통로가 되어 준 자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만찬을 뜻하는 말 중에는, Eucharist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Eucharist라는 말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다’ 라는 헬라어 “유카리스테오"(εὐχαριστέω)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성만찬은 감사의 자리입니다. 생명의 밥상에 재료를 제공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이를 가능케한 대자연에 감사를 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나눌 빵과 포도주는 이 땅의 선물입니다. 때문에 우리도 선물을 준 대자연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이를 지키며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셋째,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처럼 하나님의 피조물인 대자연을 지키는 일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거룩한 책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만찬의 밥상에서 나누어지는 빵과 포도주는 결국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것입니다. 밀과 포도라는 자연의 열매도 결국 사람의 노력을 통해 먹을 수 있는 빵과 포도주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도 우리의 노력이 없다면 생명의 도구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파괴하는 독이 될 수도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밥상의 근원이신 주님을 사랑하듯, 먹거리를 제공하는 대자연을 사랑하고, 더불어 이를 함께 나눌 거룩한 식구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생명의 밥상인 이 거룩한 성만찬에 참여함으로써, 우리가 더불어 살아갈 대자연과 생태계의 생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며 주님의 뜻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생명의 가치를 온전히 누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