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어라

요한복음 14:1-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고별사로 알려진 말씀 가운데 일부를 선택한 것입니다. 공생애의 마지막을 얼마 남겨 두지 아니하고 제자들과의 이별에 앞서 주신 유언과 같은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육신의 몸으로는 더 이상 제자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예수님의 부재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나아가 고난과 근심 속에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핵심을 예수님은 초두에서 분명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한치도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힘들어 하던 사람들에게 매우 명확한 어조로 해답을 제시해 주신 겁니다.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나만 믿어”

세상에 이처럼 용기가 되는 말이 또 있을까요? 누가 저에게 이런 말 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 한번쯤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졸업을 하고 새로운 인생의 발걸음을 내딛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누군가 “걱정마, 나만 믿어, 다 잘 될거야”라는 말처럼 힘이 나는 말이 어디 있을까요? 생계에 대한 고민으로 걱정하는 이들에게,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또는 모든 것이 자신의 힘으로는 더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만큼 인생의 가장 막다른 골목에 서있는 사람에게 이 말은 그 무엇보다도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이 잘 믿기지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근심에 쌓인 사람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조언은 너무나 당연한 말일 수 있습니다. 그걸 몰라서 걱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도 걱정하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는 것 아닙니까? 그저 생각처럼 잘 안되니까 힘이 드는 겁니다. 마음대로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고 보면 사람 마음이란 게 참 희한합니다. 분명 내 것이긴 한데, 자기 마음도 내 마음먹은대로 안되니까 말입니다.

한국 사람이 참 먹는 것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하지만, 마음까지 먹는 걸 보면 참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문화에서는 전혀 먹을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것도 먹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시간도 먹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나이도 먹고, 급기야는 시간 잘 가라고 시계에 밥까지 주지 않습니까? 자기 마음도 그렇지만 흘러가는 세월도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니까, 어떻게든 자기 것으로 삼고 싶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먹는다는 말은 내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니, 마음도 먹으면 내 것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먹는다고 해도 마음은 자기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마음의 독특한 성질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마음을 마치 저울과 같은 모습으로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행을 유지하고 있는 저울에 물건을 올려놓으면 저울이 그 무게로 인해 기울면서 움직입니다. 마음도 저울과 같이 그 위에 어떠한 감정이 올려지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를 보통은 감동한다고 표현을 합니다. 예컨대,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잠잠하던 마음의 저울이 움직이면서 기쁨이라는 감정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반대로 기분 나쁜 일을 당하면 마음의 저울추가 기울면서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표현이 됩니다. 어떻게든 우리의 마음 안에 조그만 감정이라도 생기는 순간 마음이라는 저울은 흔들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감각이 너무 둔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으면 감동이 생기지 않으니까 마음의 변화를 전혀 경험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좋을 때는 마음이라는 저울이 흔들거리는 것을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슬프거나 괴로운 감정이 들 때는 흔들리지 않고 멈추어 있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음이란 저울에 전혀 변화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지요. 흔히 말해 평상심이라고 하는 단어는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평상심이란 아무 변화나 감동 없이 그대로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물론 진짜 저울은 위에 올려있는 물건을 내려놓기만 하면 그 상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감정을 내려 놓고 싶어도 내려 놓아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걱정과 근심으로 마음이 무겁게 짓눌리고 있어도, 그 무게를 생각처럼 내려 놓기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걱정하지말고 나만 믿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도 아마 똑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제자들의 답답한 심정을 훤히 꿰뚫어 보고 계셨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을 마치 눈 앞에 지도를 펼쳐 놓은 것처럼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일단 내가 먼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다 예비하고 다시 돌아올 게.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말고 기다려.’ 마치 채근하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조곤조곤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는 어머니처럼, 제자들에게 일러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의 의도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데려간다는 것일까?’라고 오히려 되물은 이유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갈 곳은 아버지 집이며 그곳에 너희도 머물게 될거야’ 라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완전히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치 잠시 자신의 곁을 떠나며 곧 다시 오겠다는 엄마의 말에 안심하지 못하고 근심이 가득한 아이처럼 말이지요. 한마디로 제자들도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말로 바꾸어 표현하자면 마음이 놓이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이 아버지의 집인 것까지는 알았는데, 그곳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것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원했던 것이지요. 사실 아버지의 집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가르쳐주신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이 가셔서 자신들의 위해 예비하신다는 아버지의 집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를 잘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미 제자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에 관해서 이미 제자들에게 다 알려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며 함께 동역하던 이들입니다. 공생애를 통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직접 본 증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라고 제자들에게 다시 상기시켜 주신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을 보면서 이미 제자들은 하나님의 집으로 가는 구원의 길을 이미 목격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그 길을 어떻게 지나 오셨는지 잘 안다는 겁니다. 늘 아버지 하나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그 뜻대로 사신 모습을 통해서 말이지요. 그것이 바로 진리와 생명으로 향한 길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는 겁니다. 본문은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집에 머물러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머문다는 것은 결국 아버지가 주인이 되는 곳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신앙의 길이 결국은 자기 마음을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맡기고 사신 모습 아닙니까? 먼저 아버지의 집에 머문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르려거든 너희도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 역시 달리 표현하자면, 예수님의 삶의 모범을 따라 제자들도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살라는 말씀으로 바꾸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에도 자기 뜻을 따르기 보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실 수 있도록 비우라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안에 하나님의 집을 짓고 살라는 권면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내려놓는 길이 다름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온전한 주인이 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스스로 자기 마음의 저울에 올려놓은 것들을 내려놓는 연습이 곧 신앙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다름아니라 너희의 마음을 누르고 있는 걱정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을 믿고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염려나 근심도 결국 내가 마음의 저울 위에 올려놓은 감정 아닙니까? 그 조차도 내가 저울질 하듯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맡기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으면 그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느낄 수 없습니다. 피리의 구멍을 다 막아놓으면 소리가 날리 없고, 잔에 빈 공간이 없으면 더 이상 물을 채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만일 자기 소리로 가득차 있으면 마음 속에서 부르시는 주님의 소리를 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의 열매가 다 자기 행위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마음이라는 저울이 평상심을 잃고 흔들리면,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를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신앙의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이 바로 진정한 제자의 길을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걱정말고,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내가 다 해 줄테니 신경 쓸 필요없다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사실은 오늘 우리의 신앙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지시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어머니주일을 겸해 졸업파송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졸업을 한다는 것은 한자의 의미처럼 일을 마친다는 의미도 분명 있지만, 영어의 ‘Commencement’라는 단어가 뜻하듯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영어 단어인 Graduation 은 'gradual'이란 말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졸업은 단순히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하기 위한 또 다른 시작이라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둔 많은 젊은이들의 앞에 놓인 현실의 길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생존을 위한 경쟁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시대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꿈과 비전을 갖고 생동감있는 시절을 보내야 할 젊은이들의 눈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합니다.

젊은이들에게 걱정말고 소신있게 살라는 말을 하기가 두려울 정도입니다. 감히 마음놓고 편히 살라고 권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기억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내가 간 그 길을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 그 역시 평탄한 꽃길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쉽게 말해 마음 턱 놓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어쩌면 마음 굳게 먹고 가야할 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어디서 생겨나는 게 중요합니다. 나로서는 먹고 싶지 않지만 바로 주님의 뜻이라 먹는 것이지요. 그 부분이 다르다는 겁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생명과 진리로 향해 가는 그 길은 매우 좁고 고단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내 편한대로 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따라 사는 삶이란 그저 아무 생각없이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모습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를 고난의 가시밭길로 무작정 내보내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길이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가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길을 밟아야만 갈 수 있습니다. 생명과 진리의 길, 내 뜻보다는 주님의 뜻을 먼저 앞세우는 만만치 않은 여정은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밟고 가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오히려 주님을 믿고 끝까지 흔들림없이 그 길을 가라고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계십니다.

저는 요즘도 가끔 힘이 들 때마다 떠오르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어머니입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예외없이 똑같이 갖는 공통점이 바로 어머니의 자식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가장 처음 느끼는 소외감의 대상이 어머니인 것처럼, 연대감을 느낀 첫번째 존재도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따뜻한 품은 영원한 안식처와 같이 포근하고, 어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세상의 풍파를 견디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비록 이제는 성인이 되어 어머니와 떨어져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나 내 편이 되어 나를 응원해 주고 계시리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힘들어 하는 자식을 볼 때마다 “걱정 마라. 너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말아라”는 용기를 지금도 해주시고 계시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적인 어머니와 같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걱정말고, 나를 믿어라” 세상이 우리를 몰라준다 해도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함께 그 고단한 길을 동행하여 주실 겁니다. 잊지 마십시오. 그 믿음으로 오늘도 한걸음씩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힘차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새로운 인생의 길에 발걸음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이 말씀이 용기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부끄럼 없는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뜻대로 마음을 먹을 때, 분명 마음먹은대로 열매를 맺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