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증거자(Testify to Love)

마태복음 10:26-31

 

우리가 함께 읽은 오늘의 본문 내용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면서 주신 말씀의 일부입니다. 그 핵심은 바로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치 품에 안은 자식을 떠나 보내는 부모의 마음처럼 애뜻한 감정이 느껴지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토록 제자들을 걱정하도록 만든 것이었을까요?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따라 활동하기에는 당시의 상황이 여러가지로 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기득권을 가진 유대의 성전 세력에 의한 사회 전반적 통제와 로마의 식민지 지배라는 정치 상황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선포하는 제자들의 사역에 커다란 장벽이 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 당시 유대 사회는 힘의 논리가 장악하고 있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그와 정반대의 논리를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가치와는 전혀 다른 말씀을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당시 사람들이 미련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의 가치와 모순이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보며 비방과 모순의 표징이 될 것(눅 2:34) 이라고 말한 까닭도 결국은 이를 두고 한 말이었던 겁니다.

나아가 제자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서 다른 이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려 했던 전도 행위는 일종의 해당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제자들에게는 위험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지요. 예수께서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마10:16)고 표현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과 타협하거나 세상의 논리에 굴복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야 말로 진리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세상이 감추고 숨기려 했던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진리가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의 말씀이었던 겁니다.

물론 몸은 피곤하고 힘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장차 겪게 될 현실의 고통과 수고를 안타깝게 여기고 계셨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혼까지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영혼을 살리는 복음과 진리의 선포를 위해서는 어떠한 타협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실을 숨기기 위해 닭의 목을 비틀어 막으려 해도 새벽이 오듯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입니다. 세상이 제자들의 몸을 힘으로 막는다고 해도 영혼과 정신까지 막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두려워 마십시오. 우리의 영혼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지켜 주십니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생명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가 온갖 시험을 당했던 사도 바울도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롬8:31)”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주님께 온전히 의지하였기 때문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겁니다. 세상에서의 자랑도 그에게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었던 믿음을 그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실상 내 몸을 위협하는 세상이 아니라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으로 이 말씀은 육신의 위협을 받았던 초대 교회의 제자들보다 오늘 우리에게 더 적합한 가르침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오늘 우리에게 오는 위협은 육신의 고통 보다는 정신적인 유혹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자들의 시대는 외부의 압력이 믿는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지만, 오늘날 우리 시대는 굳이 위협 때문에 신앙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세상과 타협하기 위해 스스로 믿음을 등져버리는 배신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외부의 압박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믿음을 거부하는 세대가 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두려움의 대상이 완전히 달라져 버린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세력이 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겁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영혼마저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팔아버린 형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를 팔아 버린 가롯 유다의 모습이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는 배신의 시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태양을 등지면 그림자 밖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진짜가 아니라 그림자와 같은 가짜를 믿고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영혼마저 팔아버린 시대가 안게 될 엄청난 비극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지요.

지난 주 우리가 속한 California-Nevada Annual Conference의 연회가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미국의 교회들이 점점 교세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연합감리교단, 특히 북가주 지역의 교회의 수가 감소되고 그와 함께 교세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교회라는 몸뚱이는 버티고 있는데 영혼이 자꾸 쇠약해져 가고 있는 것에 대한 걱정입니다. 금년 연회의 주제는 “Testify to Love: Your Story Matters”, 곧 “사랑을 증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제는 금년도 연회의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인 교단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동성애 문제로 촉발된 찬반양론이 이제는 골이 깊어져 결국은 교단의 분열로 이어지지는 않을까를 걱정하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하면 함께 어우러져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어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서로 다르다는 사실 속에서도 갈등과 분열이 아닌 화해와 평화의 장으로 이끌어 가려는 노력이 바로 교회의 역할이라는 공감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금번 연회의 주제처럼 모두가 사랑의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문제에 대한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열쇠의 의미를 반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열쇠를 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닫기 위한 자물쇠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우리와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이들과는 구별하기 위한 열쇠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의 증거자가 된다는 것은 서로를 구별짓고 벽을 쌓아 갈등과 분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다른 이들을 포용하기 위해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길입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교회를 이루어 가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오늘날 우리 교단을 비롯한 교회들이 행여 역풍을 만나 고생하면서도, 막상 주님을 보고서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꼈던 제자들의 모습과 같지 않은가를 염려하게 됩니다. 마가복음 6장에 보면, 먼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던 제자들이 역풍을 만나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께서 그들을 향해 다가 가시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산 제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역풍은 그들에게 쉽지 않은 장애물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지금까지 평생 목회만 하던 주님의 종들이 교회를 뒷걸음치게 만드는 여러가지 현실의 거대한 바람 앞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당시 제자들도 그렇지만 오늘 교회도 이 순간에 바로 주님의 인도와 역사를 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막상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왔을 때 보인 그들의 태도입니다. 제자들은 유령이 나타난 줄 알고 놀랐다는 것 아닙니까?

오늘날 좌초해가는 배처럼 가라앉고 있는 교회들 앞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주님이 직접 찾아와 주셨는데, 문제는 우리가 기뻐 환영한 것이 아니라 놀라 뒤로 넘어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들이 탄 배가 생명의 방주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능숙한 뱃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생명의 방주일 수 있는 것은 목사나 성도들이 일을 잘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럴듯한 행사를 잘 치뤄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를 찾아 오신 주님을 모실 수 있는 믿음이면 족합니다. 주님이 계신 곳, 그곳이 바로 생명의 방주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이 들어 오실 수 있는 열쇠로 문을 여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의 증거자가 되는 것이지요. 오늘 교회가 생명의 방주가 아니라 유령선이 되어가는 것처럼 서서히 좌초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그래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많은 목사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며칠 간이나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회의를 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옆에 계신 주님을 몰라보고 마치 유령을 대하듯 두려움에 떨며 밀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정작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우리가 아니었던가요? “두려워 하지 말아라” 주님의 음성에 다시 한 번 주의깊게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의 손에 사랑의 증거자라는 열쇠가 쥐어져 있는 한 여러분이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