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밥

마태복음 14:13-21

 

‘오병이어’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종종 언급할 만큼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상호들 중에도 ‘오병이어’라는 이름을 가끔 볼 수 있는데, 그 의미를 자기편한대로 해석하여 기적처럼 장사도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마도 번영과 확장 그리고 성공에 대한 갈망이 만들어낸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빵 다섯 개와 두 마리 생선으로 오천 명을 먹인 것은 오늘 말로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매우 경제적 효과가 탁월한 대박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오늘날 과학 기술은 끊임없이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콩알만한 알약만 먹고도 배가 부를 수 있는 세상 아닌가요? 현대 문명이 추구하는 과학기술의 핵심도 결국은 적은 비용 혹은 작은 양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우리는 과학 기술이 만들어내는 기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지요. 적어도 눈에 보이는 효과만 본다면 말입니다.

만일 눈에 보이는 현상만 두고 기적을 찾는 것이라면,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는 그다지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 한다면 오히려 보이지 않는 이면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세례 요한의 죽음 이후에 예수께서 한적한 곳으로 몸을 피해 다니시던 중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알았는지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무언가에 갈급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증거이겠지요. 특히 그들 중에는 앓고 있는 이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큰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앓는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앓는 사람들은 물론 육체적 병을 앓고 있는 병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기를 잃어 버린 이들도 포함된 말입니다. 한마디로 예수께서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육신과 영혼을 치유하는 기적을 행하셨다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어느새 “밥때”가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밥 먹을 때가 되었다는 생리적 신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누구나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 헌데 당장 그 자리에서 먹을 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모인 사람들을 먹이기에는 가진 것이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었던 겁니다. 요즘처럼 배달을 시켜도 돈이 있어야 하는데, 모인 사람들을 다 먹이려 한다면 적어도 200 데나리온 정도는 필요했습니다. 미국 화폐로 환산해 보면 약 만불 가량은 있어야 이들을 다 먹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니 일단 모인 무리를 해산시키자는 제자들의 의견은 결코 성의없는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정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보내지 말고 너희가 가진 먹을 것을 나누어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끔 앞 뒤 가리지 않고 일을 저지르고는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이라 말하는 목사님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도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마음 속에 떠올리면서 그렇게 하셨을 겁니다. 물론 알 수 없는 주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안타까운 사정을 미리 헤아리고, 교인들이 나서서 돕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적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채워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받는 사람이야 기대하지 못한 일이니 마치 하나님이 주신 기적처럼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저 호의를 베푼 일일 뿐일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다만 주목할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주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이유에서든 마음의 감동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지요.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를 턱없이 부족한 분량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인 것에만 주목하면 결코 찾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애초에 이 사건의 시작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야기의 발단은 바로 수많은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기셨다는 예수님의 마음에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육으로나 영으로 그들은 아파서 신음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갈급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지요. 예수님은 이들의 애타는 마음을 결코 져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한 영혼도 빈 손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으셨던 겁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교회를 찾아 예배에 참석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말씀을 듣고 찬양과 경배를 통해 은혜를 체험하면서 한 주간 동안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고자 이곳에 지금 앉아 있는 것 아닙니까? 참회를 통해 죄가 씻겨서 새로운 영혼으로 거듭나 한주간 주님의 인도 하에서 거룩한 그리스도의 자녀된 모습으로 살고자 이 자리에 나온 것 아닌가요? 그런데 생명수를 길어 가고자 들고 온 영혼의 항아리를 빈 채로 다시 들고 간다면 어떤 심정이 드십니까? 갈급한 마음을 채울 수 없는 시간으로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어떻겠습니까? 만일 예배 후 나누어 먹을 친교 음식이 부족하다 해서 예배도 드리지 않고 돌아가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제한된 조건 때문에 목적 그 자체를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맞이하는 꼴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을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에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수가 필요했던 것처럼, 이들에게도 영원토록 배고프지 않을 생명의 밥을 제공하시고자 했던 겁니다. 그 생명의 밥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저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 아니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받게 될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오병이어의 진정한 기적은 이 놀라운 선물을 받아서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었다는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19절을 보면 예수께서 오병이어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 사람들에게 나누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본문의 핵심이 결코 빵과 물고기의 수가 늘어난 초자연적인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확인 시켜줍니다. 하늘로부터 오신 진정한 선물, 바로 예수님이 우리 영혼의 허기와 갈급함을 채워 줄 생명의 밥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신 사건이라는 겁니다. 주님으로 인해 우리의 영혼과 마음이 가득 채워진 기적의 사건인 것이지요. 자기의 몸을 찢어 그 살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 보다 더한 기적이 있습니까? 죽을수밖에 없는 생명을 살려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것만큼 소중한 기적이 또 어디 있을까요? 비록 소유한 것 별로 없는 가난하고 유한한 삶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의 영혼은 충만해지는 기적을 맛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밥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말이지요.

20대 80의 사회라는 말처럼 여전히 세상은 부와 가난의 구별이 명확한 세상입니다. 한편에서는 물질적 풍요를 주체하지 못하며 흥청망청 소비하고 있는 동안에,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정말 먹을 것이 없어 하루를 연명하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어 버린 모습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황폐한 그 곳에 가서 아무리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야기한들 과연 그것이 실현 가능한 일이 될 수 있을까요? 가진 것이 있어서 먹을 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 선뜻 내놓는 사람이 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들의 마음이 정말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변화되지 않는 한 그 기적은 좀처럼 이루어지기 힘든 일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적의 핵심은 모두가 주님을 만나는 일이 아닐까요? 그를 생명의 밥으로 먹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기적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제자들처럼 성만찬의 식탁에 초대되었습니다. 생명의 밥으로 자신을 직접 떼어 내어주신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눔으로써, 거룩한 하나님 나라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나가는 기적을 모두가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귀한 선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생명의 밥이신 그리스도를 취하여 이 놀라운 기적의 복음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주님의 거룩한 성도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