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都大體)

요 1:36-39, 고전 13:8, 마 7:7

 

지난 주 저와 6명의 단기 선교팀은 멕시코 티후와나 파시피꼬 교회의 여름성경학교(VBS) 사역을 위해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파시피꼬 교회는 지난 5년동안 우리 교회가 섬기던 멕시코 현지 교회로, 도시 빈민 가정과 아이들을 위해 사역을 해오고 있는 조그만 교회입니다. 이미 교회 식구들과 아이들은 우리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반갑게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선교팀 역시 1년만에 만나는 멕시코 현지인들을 생각하며 들뜬 마음을 안고 출발했습니다.

 

1.     와서 보아라

 

교회 미니밴에 짐을 빼곡히 쌓고 오전 7시경에 출발한 우리가 샌디에이고를 향해 가던 오후 무렵 현지 한인 협력 선교사이신 조영훈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멕시코 국경을 넘기 이전에 긴급히 상의할 내용이 있으니 만나자는 전갈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급한 일이기에 국경을 넘어서까지 와 이야기할 내용인가 우려와 함께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경 근처에 도착해서 이미 미국 국경을 건너와 기다리고 있던 조 선교사님을 만나 현지 상황을 듣고는 우리 모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용인즉슨, 파시피꼬 교회를 담당하고 있던 카를로스 선교사가 교회에 다닐 뿐만 아니라 교회 안의 조그마한 주택에서 살고 있던 7세 여아를 성추행했다는 경악할만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부모는 물론 교인들과 주변 동네 사람들도 다 알게 되어, 교회와 우리 선교팀이 건축해서 거처로 삼던 사택의 열쇠도 그대로 남겨둔 채 어디론가 도망을 가버린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날인 지난 주일 오후에 사건이 벌어져서 경찰의 조사가 우리 단기선교팀이 이미 출발한 바로 다음 날 이루어 졌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현지 한국 선교사인 조 목사님 조차 우리가 출발한 당일인 월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그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저희에게 알리기 위해 국경까지 건너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저와 우리 선교팀은 고민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미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여러가지 선물과 성경학교 재료들을 잔뜩 싸 가지고 왔고, 무엇보다 그들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찬 우리들이었습니다. 결국 논의 끝에 일단 국경을 넘어가기로 우리는 결정했습니다. 준비해 온 것들 때문이 아니라, 상처받은 교인들을 그대로 두고 돌아서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날 저녁 늦게 우리는 본래 예정지인 파시피꼬 교회가 아닌 조영훈 선교사님이 섬기고 계신 “높은뜻 멕시코 선교”교회에 짐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선교사님은 곧바로 사건이 발생한 파시피꼬 교회로 향했습니다.

이미 시간은 저녁 10시 30분이나 되었지만, 피해 아동의 부모를 비롯한 교회 식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피해 아동의 부모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그들의 상처 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함께 기도해 주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부부는 이 문제로 인하여 교회가 더 큰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저희에게 전하였습니다. 함께 했던 동네 이웃과 교인들도 그들의 말에 다 동감한다는 의사를 우리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되돌아 본 파시피꼬 교회의 모습이 화려한 도시 속에 그와는 너무나 대조되는 빈민가의 삭막함과 황폐함 처럼이나 더 우울하고 쓸쓸해 보였습니다.

돌아와 우리는 첫날 저녁의 경건 예배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때까지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던 단기 선교팀의 어린 자매들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과 그로 인해 발생한 일정의 변경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우리는 요한복음 1장의 본문 말씀을 함께 읽고 경건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따라 나섰던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이 곧 우리를 위해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하지요. 그런데 그들에게 예수님이 묻습니다.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어디에 머물고 계시느냐?”고 대답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와서 보아라”

우리는 이날 저녁 함께 모여 이런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입니다.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실현시켜 보고자 우리는 멕시코까지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불미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눈 앞에 벌어진 것입니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질문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시려고 하신 것일까?”라고 말이지요. 복음서의 말씀처럼 우리는 어쩌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무턱대고 길을 따라 나선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느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이 아주 낮설기까지 합니다. 때문에 우리의 질문도 제자들의 물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지요. “도대체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느냐?” 고 말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아주 분명했습니다. “와서 보아라” 그날 저녁 우리는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이렇게 접근해 보기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와서 보”는 일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주님께서 어떤 비전과 말씀을 우리에게 주실지 세밀하게 듣고 증거하는 선교의 여정을 보내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2.     Love Never Ends

 

둘째 날 우리는 다시 파시피꼬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여름성경학교를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교사님과 교인들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 상의하여 행사를 계획대로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상처받은 아이와 가족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신 앞으로도 교회의 존속을 바라는 교인들과 매년 우리를 기다리던 아이들의 바램을 생각하며, 간단히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나누어 주면서 인사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비록 일정은 어긋나 버렸지만,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뛰놀며 우리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와서 본” 이유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에 처음 단기선교를 떠난 조주현, 권혜윤, 이현민 자매들은 이 때까지도 긴 여행에 지친 데다가 변경된 일정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멕시코의 현지 아이들을 보는 순간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만난 것처럼 열정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해 하다가 이내 가까워져서 언어와 국경의 벽을 넘어 하나님의 한 자녀로서의 유대를 재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일체감을 느끼는 귀한 자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비록 상처를 받은 가족들도 그 가운데 있었지만, 이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살아야 할 교회에 대한 애정을 끝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뛰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피해 아동도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 일도 모르는 것처럼 함께 노는 모습이 더욱 안스러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를 보며 부모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겉으로는 뛰노는 아이들과 함께 기뻐하면서도, 속으로 함께 울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웃과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책임자로 간 저로서는 여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향후의 일정과 계획, 그리고 전반적인 우리 교회의 선교 사역에 대한 방향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를 생각하니 더욱 머리 속이 복잡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파시피꼬 교회의 한 여성 교인이 제 손을 붙들고 하소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이미 몇 년 동안 우리의 사역과 함께 했던 할머니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제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부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말아달라”고 말입니다. 비록 1년에 한 번 뿐이지만, 이 지역을 찾아오는 우리를 통해 아이들이 큰 기쁨을 얻는다고 합니다. 더불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교회가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마음 속으로 형제 자매의 유대감을 느끼고 있던 우리 마저 자신들을 홀로 내버려 두고 떠나 버리면 어떻게 할지를 걱정했던 것입니다.

아쉬운 파시피꼬 교인들과의 짧은 일정을 뒤로 하고 돌아와, 그날 우리는 두번째 본문의 말씀을 읽고 나누었습니다.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어 번역에는 ‘Love never ends’ ‘Love never fails’ ‘Love never leaves alone’ 으로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는 법입니다. 사랑은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사랑은 홀로 내버려 두지도 않습니다.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세상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쉽게 변하고 쉽게 떨어져 버리고, 또 쉽게 무너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누군가를 홀로 버려 두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여전히 “도대체 주님이 우리를 왜 부르신 것일까?”를 고민하던 우리에게는 참 단비와도 같은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사역의 여정을 온전히 주님의 뜻에 맡기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3.     구하고 찾으라, 그리고 두드리라

 

파시피꼬에서의 일정이 그렇게 마무리되고, 우리는 여전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지역이 있는지를 수소문해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매년 단기 선교팀이 방문하여 여름성경학교를 열어주던 현지 교회에 금년에는 방문이 어려워 재정과 인력 문제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이름은 Vida Nueva 새 생명교회로 티후와나에서 약 2시간 30분 정도 더 남쪽 방향에 위치한 앤세나다Encenada 라는 지역의 작은 현지인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앤세나다 지역을 선교하시던 한국인 선교사 부부에 의해 세워진 멕시코 교회입니다. 

우리가 먼저 도착하여 짐을 푼 곳도 바로 한국인 선교사님이 섬기는 사랑 선교회 Amor Mission라는 센터였습니다. 4년 전에 암으로 선교사님은 이미 소천하시었고, 이제 일흔을 앞두고 계신 사모님 홀로 남아 유업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모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너무나도 따뜻한 환대를 해주셨습니다. 근 20년 동안 앤세나다 지역에서 선교를 통해 교회를 세우고 지역 주민을 돕는 사역을 훌륭히 해오셨다는 이야기를 조 선교사님으로 이미 들었지만, 방문해서 본 센터의 사역은 생각보다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특히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을 모아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그들을 변화시켜서 갱생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교회에 거처를 마련하고 양육하는 사역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방문한 날이 수요일이라 그날 저녁 우리는 현지 교인들과 재활 갱생 프로그램 입소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예배에는 우리 이외에도 미국 백인 교회의 집짓기 선교 단체 일행도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서로 다른 세개의 언어, 민족, 그리고 배경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센터의 이름대로 사랑이라는 끈이 우리를 어떻게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센터에서 머무는 이틀간 우리는 이 사랑의 끈을 통해 Vida Nueva 교회의 어린아이들에게 주님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말로 새생명 교회인 이 현지인 교회는 서 선교사님의 제자인 오스카라는 멕시코 목사님이 담임을 하고 계십니다. 이 지역은 파시피꼬와는 달리 전형적인 농촌 지역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이 농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낮에는 아이들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을 위해 준비된 여름성경학교는 주님의 말씀을 나누는 예배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함께 뛰노는 놀이터였던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시작하려면 아직 3시간이나 남아있는 이른 시각에 이미 아이들은 교회 예배당 안에 들어와 성경학교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들뜬 아이들 틈 바구니에서 아주 특별한 한 아이가 우리 선교팀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멜리나Melina’라는 6살 여자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멜리나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손에는 4살짜리 여동생을 데리고, 다른 한 손에는 그 작은 어깨에 매달린 2살짜리 남동생을 안고 있었습니다. 동생들은 낯선 이들과 친구들 앞에서 한 순간도 멜리나의 품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멜리나의 발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신지 않은 맨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마도 거의 신발을 신어 보지 않은 굳은 살이 배긴 발이었습니다. 여섯 살 난 맨발의 아이가 동생들을 끌어안고 여름성경학교를 찾아왔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는 잠시 할말을 잊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선교사님에게 들어보니, 멜리나의 식구들은 멕시코인들 중에서도 가장 하층에 속한 원주민 인디오들로 농장의 일을 구하기 위해 좀 더 큰 지역인 앤세나다로 온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말도 스페인어가 아닌 인디오 말을 써서 사실 타언어권에서 온 우리 만큼이나 낯선 상황이었던 겁니다. 유난스럽게도 주의를 경계하고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안타깝게 생각한 자매들은 특별히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며 보살펴 주었고, 혜윤이는 어느새 자기가 신고 온 신발을 벗어 아이에게 벗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한 뼘은 더 커 보이는 그 슬리퍼를 멜리나는 다음 날도 신고 왔습니다.

함께 마음을 열어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율동과 찬양으로 경계는 어느새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언어라는 장벽을 뛰어 넘어 우리는 그렇게 한 몸된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사실을 증명해 나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함께 뛰놀며 자연스럽게 생긴 정을 떼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며 교회를 떠나기 전, 교회의 담임 목사인 오스카 목사님은 눈물로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놀랍고 오묘합니다. 우리의 기대와 계획을 넘어서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를 뜻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우리는 알 수 없는 인도하심으로 만나게 되었고, 그 만남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역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도대체 왜?”라고 물었던 우리의 질문에 대한 확실한 응답을 하나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위하여 우리를 이곳까지 부르셨구나’ 라고 말이지요.

마지막 날 저녁 우리는 마태복음의 본문 말씀을 함께 나누며 일정을 마감하였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구하라, 찾으라, 그리고 두드리라”는 주님의 분부였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처음 우리가 던졌던 바로 그 질문 “도대체”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주님을 따르고자 지금 이 자리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를 알지 못해 신앙적으로 헤매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도대체 어디에 계신지 조차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와서 보라는 말씀을 듣고도 아무 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늘 구하고 찾으라, 그리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신앙의 “도대체”에 대한 응답을 위해 구하고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열릴 때까지 두드리는 신앙의 열정과 진정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선교를 다녀 오면서 우리는 와서 보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본 것을 여러 성도님들과 앞으로 계속해서 증거해 나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체험한 사랑의 힘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그저 한 번의 일회성을 그치는 한 여름밤의 꿈 같은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따르는 제자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주님이 계신 곳에 우리도 함께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주님이 지금 어디에 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질문에 여러분 스스로가 대답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구하고 찾으십시오. 그리고 두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구한 것을 얻고 찾으며, 문이 열리는 역사가 여러분의 삶과 여정 속에서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 앞으로의 선교 열정을 위해서도 이 질문을 게을리 하지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시 한 번 금번 선교를 위해 함께한 일행들과 이들을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며 동역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간절한 열망을 통해 멕시코의 어린 아이들과 교회에 희망의 빛이 조금씩 더 선명하게 새겨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도대체 왜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셨던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확증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