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적

창세기 1:1-5, 마가복음 1:4-11

 

최근 한 생물학자의 강연을 듣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아주 재미있는 연구 결과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쥐의 암수 선택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수컷 쥐는 암컷의 외모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반면, 암컷은 수컷이 얼마나 먹을 것을 가져올 수 있는가와 함께 냄새를 통해 상대 수컷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암컷이 냄새로 수컷을 선택한다는 부분입니다. 본능적으로 암컷은 수컷의 냄새를 통해 유전적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전적 차이를 가지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수컷을 선택하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유전학적인 다름을 통해 질병을 이길 수 있는 생존 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서로가 다른 유전적 요소를 통해 다음 세대의 생존에 필요한 더 나은 조건을 본능적으로 구한다는 사실이 참 놀랍습니다. 생물학자는 이것이 바로 생명이 가진 놀라운 능력이라고 결론을 맺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다르다는 사실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의미를 주는가에 대해서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컨대, 바코드나 0과 1의 이진법으로 구성된 컴퓨터의 언어체계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서로 다른 바의 모양을 통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존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컴퓨터도 0과 1의 서로 다른 조합을 가지고 전혀 다른 의미의 대상을 만들어 냅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도 4개의 유전자 정보를 무한적으로 조합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성질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생명은 똑같아 보이는 물질의 서로 다른 구성물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 생기를 불어넣은 인간이 저마다 다 다른 모습과 성격을 갖게 되는 이유인 것이지요.

다르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서로를 구별해주는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해 주면서 동시에, 이를 통해 생명의 생존능력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생명의 놀라운 특징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도대체 그렇게 다양하고 다른 이질적인 것들을 조화시켜 나갈 수 있느냐고 말이지요. 두 세 사람만 모여도 갈등과 분쟁이 나타나는데, 어떻게 세상의 평화가 가능할 것인가를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한 인간의 몸속만 해도 60조개나 되는 세포들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이것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일 제멋대로 자기 몸의 세포들이 움직이면 생존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원하는대로만 살려 한다면 그 공동체는 더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제가 들은 강연에서 그 생물학자는 이 혼란한 상태를 막고 하나의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만들어 나가는 힘을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실은 살아있다는 것, 생명 그 자체가 바로 기적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역사도 결국은 기적의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만드시고, 그 생명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질서를 부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만드는 힘, 곧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조화로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순종하며 사는 것도 그것이 바로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아니하고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평화와 사랑, 그리고 참된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가능해 지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이루는 기적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러한 생명의 기적을 보여주는 한 사건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은 주현절 후 첫째 주일이면서 동시에 전통적 교회력에 따르면 주님의 세례일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기 이전에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은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다른 공관복음에서도 이 사건을 모두 기록하고 있을 만큼 예수님의 세례는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가 죄를 씻기 위한 상징적 의미로 행해진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본래 요단강가에서 요한이 행한 물세례의 방식은 사람을 물 안에 넣었다가 다시 물밖으로 빼내는 침례의식이었습니다. 신학적으로 해석하자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의미를 재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죄를 물로 씻어 옛사람은 죽고,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를 예수께 행한다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어 고난의 여정을 밟게 하신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세례의식은 물론이고, 고통스러운 십자가 고난의 여정을 왜 짊어지고 가게 하셨을까?”라는 의문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답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지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직후에 나타난 기이한 현상이 그것입니다. 본문의 기록에 따르면,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는 기이한 현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와 함께 하늘로부터 그가 곧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이 선포됩니다.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해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이 부분은 오늘 또다른 본문인 창세기의 말씀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의 과정과 일면 비슷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한마디로 정의 내리자면 세상의 질서를 세우시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혼돈된 상태의 것에서 구별을 지음으로써 생명의 조화를 이루신 것이지요.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실 때에 하늘이 갈라진 것도 실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보여주는 묘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주현절의 사건은 바로 하늘과 땅의 경계를 무너뜨린 놀라운 역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와 함께 재미있는 표현이 하나가 바로 나옵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온다는 비유입니다.

일반적으로 ‘비둘기’ 하면 평화의 상징을 떠올리는데, 유대인들에게는 그보다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물 위에 움직이고 있었다”는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상상할 때 비둘기가 나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노아의 홍수이야기에서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증거로 나뭇가지를 물고 온 비둘기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에게 비둘기는 세상을 사랑하여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졌던 겁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한결같다는 증거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할 때도 그렇고,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그렇게 보여주신 것이지요.

그리고 어두운 세상에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던 것처럼,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이 땅에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노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선포하셨던 겁니다. 혼돈 상태였던 천지만물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실 만큼 말씀을 통해 질서정연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죄의 구렁텅이에서 갈 곳 몰라 방황하는 세상에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구원의 길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생명의 기적을 행하신 것이지요. 우리에게 살아가는 이유와 방향, 그리고 목적이 분명하게 주어진 기적의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2018년의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생명의 기적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새하늘 새땅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기적이라 할만큼 우리 모두의 삶에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어둡고 방황했던 지난날을 이겨내고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얻어 꿈과 소망의 빛이 가득한 새날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금년을 지나가며 되돌아 볼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우리 스스로도 보기에 아름답다 말할 만큼 의미있는 한해를 보낼 수 있기를 주님의 사랑으로 축원합니다! 생명의 기적이 지금 바로 여기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