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현정(破邪顯正)

누가복음 2:22-35

 

이제 2017년을 단 하루 남겨 둔 이 시점에 여러분과 한 편의 시로부터 말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된 시인 도종환의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이라는 시의 일부분입니다.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한 해 여러분이 걸었던 길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시인의 말대로 인생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을 가는 여정이라면 여러분은 그 길을 어떻게 맞이하시겠습니까? 어떤 마음가짐으로 순간순간 다가오는 길을 준비하며 걸어가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금년 한해를 되돌아 보며, 앞으로 가야할 새로운 한 해의 길을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년 교수신문을 통해 대학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는데, 금년에는 ‘破邪顯正’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합니다. ‘파사현정’은 사악한 것을 부수고 사고방식을 바르게 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입니다. 한국의 지성인들은 올 한해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면서, 한국사회에 요구되는 정신 가운데 하나로 적폐청산을 꼽았다고 합니다. 잘못된 주장과 정책, 그리고 부정부패의 고리가 된 다양한 사회적 적폐 현상들을 뿌리 뽑아서 보다 정의롭고, 다양한 사람들의 권리가 인정받을 수 있는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사실 파사현정이라는 말을 그대로 교회와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시킨다 해도 어색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일컬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요, 부패한 세상을 막는 소금이라고 비유하신 바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적폐를 청산하고 참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파사현정은 교회의 기본적 책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는 길입니다. 물론 교회가 파사현정의 역할을 잘 수행하려면 먼저 교회의 지체들인 우리 자신 스스로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변화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동양 고전인 <대학>의 8조목도 이와 비슷한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결국 세상의 평화와 나라의 정치도 개인의 변화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과 세상, 혹은 성도와 교회가 함께 변화해 갈 때 완전한 평화와 정의로운 모습도 실현가능하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파사현정”하는 변화가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는 뿌리 뽑아야 할 사악한 것과 반대로 삶 속에서 실현시켜야 할 옳은 것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알면 분명하게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에 대한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 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결예식을 위해 아기 예수를 안고 온 요셉과 마리아에게 전한 시므온의 말을 통해서 말이지요. 본문은 시므온을 의롭고 정결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부패한 사회 환경 속에서 그는 구별된 자로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 이유에 대해 본문은 그가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 라는 말은 식민지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민족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로 쓰인 말입니다. 하지만 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이 받게 될 위로는 한 민족에게만 국한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완성되는 완전한 구원을 뜻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추상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도 결국은 각 사람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성령이 임하여 함께 하고 계신 상태를 뜻하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민족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개별 신앙인의 변화와 함께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시므온처럼 성령의 임재를 통해 주님과 함께하는  의롭고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세상의 공의도 기대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그런데 시므온이 요셉과 마리아에게 그 의와 거룩의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들이 안고 온 아이가 바로 사람들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할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여기서 넘어져야 할 것은 적폐의 대상을 뜻하는 반면 일어서야 할 대상은 바로 의롭고 거룩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곧 파사현정을 위해 사악한 것과 정의로운 것을 구별하시어 악을 멸하고 정의를 세우실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라는 사실을 증거한 겁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아이가 장차 비방받는 표징이 된다는 시므온의 고백입니다. 그로 인해 부모의 마음이 칼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경고합니다. 물론 이것은 비극적인 결말을 예고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세상의 잘못된 것들을 나타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그는 증거합니다. 앞으로 장차 나타나게 될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핍박과 고난을 예언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빛이신 그리스도를 어두운 세상이 온갖 모욕과 멸시로 비방할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통해 사악한 것을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신다는 믿음을 그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는 비극적 운명의 피해자가 아니라 파사현정을 통해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실 구원자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2017년의 마지막 주일이자 단 하루를 남겨 둔 이 시점에 우리도 지난 한 해를 되돌아 보며 스스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 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과연 의롭고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는가? 이 질문이 아직 피부에 잘 와 닿지 않는다면, 이렇게 바꾸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칼처럼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찌른 적이 있었는가? 만일 찔림이 없었다면, 혹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할 만큼 굳어진 것은 아니었는가? 바라기는 이제 다가 올 새로운 한 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살면서 파사현정을 실현하며, 하나님 나라의 공의를 각자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