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깬 사람들 The Silence Breakers

누가복음 1:46-55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매년 말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에 성적인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린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이 선정되었습니다. 타임은 이들을 가리켜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Me Too)'는 지난 10월 초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메가톤급 성 추문이 터진 이후 미국 연예계를 비롯하여 정계와 사회 곳곳에 빠르게 퍼져나가 지금은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피해자이면서도 침묵해야 했던 여성들이 잘못된 세상의 폭력과 남성중심적인 전통적 관행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그 반향은 점점 커져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불평등한 세상의 불의에 맞서 침묵을 깨고 “미투”라 고백할 수 있는 그들의 용기가 우리 시대를 변화시키는 또 하나의 동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말이지요. 바라기는 이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실현되어, 더 이상 누군가로부터 원하지 않는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이와 같이 침묵을 깨고 미투 운동의 선구자가 된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주인공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마리아가 부른 찬미의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흔히 마리아의 찬가로 알려진 이 말씀은 초대교회이래로 예배찬송으로 가장 애창되었던 찬양이기도 했습니다. 신앙의 고백을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해서도 그렇지만 찬가의 내용이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마리아의 찬가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아무나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절대자 하나님은 아무나 입에 담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선택 받고 훈련된 서기장이나 제사장, 그리고 율법 교사들 만이 그의 말씀을 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마리아처럼 정혼을 한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갖게 된 비천한 여인이 언급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아들을 나을 것이라는 마리아의 고백은 제정신이 아닌 미친 사람 취급을 받거나, 아니면 죽음으로 다스릴 만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불경한 일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고백을 지금 마리아는 행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마리아에게는 성령의 기쁨이 충만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 앞 구절인 41절을 보면,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도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천사를 통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듣고 난 뒤, 이들의 심적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 48절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모든 세대가 자신을 행복하다고 여길 만큼 마리아는 지금 현실의 어떤 장벽도 누를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큰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에 대해 마리아는 추호도 의심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마리아의 찬가는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놀라운 사실들을 담고 있습니다. 52절을 보면,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노래한 것입니다. 53절에서는 가난을 해결하고 부유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경제정의를 찬양한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신분과 부의 소유에 따라 분명한 위계 질서가 정해진 시대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사회정의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고 부정적인 시선을 갖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더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8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셔서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양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입니다. 사실 마리아 자신이 바로 그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천한 몸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았고, 이제 하나님께서 이루실 정의로운 세상이 마리아를 통해 증거되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이러한 하나님의 크신 뜻을 확고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뜻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실 것이란 믿음을 마리아는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찬가는 단순히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감사의 고백과는 구별이 됩니다. 나아가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지극한 모성과도 구별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모성이라는 것도 달리 생각해 보면 자식에 대한 소유욕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인간에게 욕심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무욕(無欲), 곧 욕심이 없다는 것도 타고나는 본성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성처럼 본능적인 사랑 조차 인간에게는 하나의 욕망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자식도 하나의 소유로 보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애착심이 생겨나는 이유인 것이지요. 반면에 마리아의 찬가는 이 소유욕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51절을 보면 마음이 교만한 자를 흩으셨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마음이 교만하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 있는 상태가 바로 교만입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욕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와 연관이 있습니다. 결국 교만이란 하나님이 아닌 자기 중심의 상태라는 뜻이니, 인간은 신앙을 갖지 않는 한 본능적으로 욕심을 타고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마리아는 지금 그 마음을 흩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말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자식에 대한 욕심도 다 흩으셨다는 뜻이지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소유욕이 아니라 자식조차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맡기겠다는 신앙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자식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는 순종의 믿음을 보여준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 마리아가 보여준 신앙의 모범은 세상의 가치와는 전혀 상반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좋아 보이는 것과 실제로 우리 마음 속에 욕심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순결한 성령의 사람으로 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처럼 세상을 변화시킬 근본적인 생명의 힘이 열매 맺고 자라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부, 그리고 편견과 억압이라는 장벽에 갇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침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여인 하나가 그 침묵을 깨고 생명의 기적과 그것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초대합니다. 미투(Me Too). 우리도 침묵을 깨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행하실 생명의 기적을 함께 찬양하자고. 그래서 이 땅에 참된 평화와 정의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쁨으로 노래하자고. 더불어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사의 영광을 올려드리자고 말입니다. 할렐루야! 진정한 메리 크리스마스의 노래가 이 땅을 가득 채울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