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같이

마가복음10: 13-16

  

모든종교마다추구하는이상이있습니다. 구체적인모습은다를지몰라도그형식은거의대동소이합니다. 단순하게보면, 크게현세에서의안녕과내세에서의생명이라는말로요약할수있습니다. 이를한마디로복이라고부르기도하고구원이라는말로바꾸어이야기할수있을겁니다. 신앙도단순화시켜생각해보면, 결국은복과구원을구하는삶의모습이라고해도무방합니다. 다만각각의종교가복과구원에대한해석과함께, 그것을어떻게얻을수있는가에대한방식에서차이가난다는점만다른것이지요.

 

지금도많은그리스도인들이하나님의축복과영원한생명에대한소망을안고살아가고있습니다. 그중에서도장차맞이하게될하나님의나라에대한기대는그리스도인들을다른종교인들과구별하게만드는가장특별한모습이아닐수없습니다. 왜냐하면하나님의나라가현세와내세의구원을모두설명하는기독교만의개념이기때문입니다. 따라서어떻게하면하나님의나라에들어갈수있는가의문제는그리스도인들에게는가장중요한문제라고해도틀리지않습니다. 그것이곧우리의신앙생활전체를한마디로정의내려줄수있기때문입니다. 

 

그런의미에서오늘본문말씀은하나님의나라에들어갈수있는기준에대해  정확한해답을제공해준다고말할수있을겁니다. 예수님이하신말씀이기에이보다더분명한답을구하기도어렵습니다. 예수님은어린이와같이하나님나라를받아들이는자만이그곳에들어갈수있다고분명하게말씀해주셨습니다. 들어갈수있는자격만이아니라예수님은아예하나님의나라가어린이와같은자의것이라고단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나라가어린이와같은자에게속한것이라는말씀을하신것이지요. 

 

물론이것은단순히땅의소유권처럼하나님의나라가그들의소유라고하신말씀은아닙니다. 오히려하나님나라에속한이들이라고표현하는것이더정확한의미를보여주는것이라고이해할수있습니다. 왜냐하면하나님의나라는소유개념이라기보다는통치개념으로이해해야하기때문입니다. 말하자면하나님의나라가누구의것이되는게아니라, 하나님의나라는하나님의말씀대로통치되는것을의미하는개념입니다. 따라서하나님나라에속한다는것은결국하나님의말씀에의해온전히통치받고산다는뜻이라할수있습니다. 결국어린이와같은자의것이란말도바꾸어해석하면, 하나님의말씀을온전히따르며살아가는이들의모습이바로어린이와같은자와같다는뜻이지요.

 

그렇다면지금우리에게중요한것은‘과연누가어린이와같은자인가?’ 라는질문입니다. 단순하게만생각해보면, 어린이처럼순수한사람을지칭하는말로이해할수도있습니다. 물론동심의세계처럼순진한생각을하는사람이아무래도세상에물든사람보다는천국에더적합해보이는것도사실입니다. 그런데그자체가사실은순진한생각일수있습니다. 요즘아이들을잘몰라서하는이야기일지도모릅니다. 알고보면아이들도본능적으로꽤선하지만은않은모습을보일때가있습니다. 무엇보다함께살아가는공동체안에서늘애처럼사는이들과더불어산다는것자체가많은이들에게는엄청난재앙일수도있다는점을기억할필요가있습니다. 그럴때는동심이순수의세계로보여지기보다는오히려정제되지않은본능처럼느껴지는것이사실입니다. 

 

그래서한동안많은신학자들은어린이와같은모습을단순히순수함이라는말이아니라, ‘아이의수용력’이라는의미로이해하기도했습니다. 쉽게말해, 모든것을스폰지처럼잘받아들이는특성이바로어린이를가장잘표현해주는모습이라는겁니다. 신앙도그런차원에서어린이들일수록더쉽게받아들이는경향이있다는것이지요. 그것이믿음을더욱견고하게만드는힘이되어서하나님나라에들어가기적합한자격을만들어준다고생각했던겁니다. 하지만이러한수용력을맹종과혼동해서는안됩니다. 이성적판단능력을완전히잃어버리고무조건적으로받아들인다는것은올바른신앙의태도가아니라는것이지요. 

 

사실15절에서하나님나라를받아들인다고할때, 받아들인다는말의원어인“데코마이(δέχομαι)”는‘온정성을다해영접한다’는의미에가까운단어입니다. 그러니까무조건적으로수용한다는말이라기보다는마음을다하여주님을모신다는뜻이라할수있습니다. 따라서이러한행동은사실어린이보다교육받고세상을좀아는어른에게서더쉽게찾을수있을지도모릅니다. 예수님의말씀이단순히철모르는(childish) 아이같은모습을지칭한것이아니라는사실을이것만보더라도알수있습니다. 

 

본문에서말씀하신예수님의의도를보다분명하게이해하려면, 이이야기가시작된도입부분을유심히살펴볼필요가있습니다. 사건의발단이바로어린이들이예수께오는것을제자들이막았던것에서부터시작하고있습니다. 이것은어린이들에대한당시사회적시선을여과없이보여주는부분입니다. 성경에서자주언급되고있는것처럼어린이는가난하고헐벗은자와과부처럼가장무력하고소외된계층으로묘사되고있습니다. 인격적인대우를받지못하는대상이었던겁니다. 오늘날과같이어린이를대하던때는인류의역사에정말얼마안되는순간일뿐이었습니다. 어린이가그자체로생명을지닌소중한인격체로인정받은것은지금도발달된사회에서나이루어지고있는극히제한적모습이라는겁니다. 언제나어린이라는한인격체가아니라어떤배경을지닌어린이인가가항상세상에서는더중요한문제였다는뜻입니다.

 

당시유대사회에서도어린이는스스로를지키지못하는연약하고, 누군가의도움을필요로하는의존적인존재로간주되었을뿐입니다. 오늘우리가읽은마가복음의문맥도이를배경으로예수님의말씀을의도적으로전하고있습니다. 이미두주동안살펴보았듯이마가복음의9-10장은하나님나라를이야기하면서누가더큰자인가라는공적을두고평가를하는내용들이지속적으로등장합니다. 그때마다예수님은꼴찌가되고낮아지는것이결국하나님나라를가는자의기준이될것이라고말씀해주셨습니다. 더욱이예수님은십자가의길에앞서제자들에게그이유를가르쳐주시고자했지만, 제자들은그저높아만지려는세상의길에서한발자국도물러서지못한모습을보여줍니다.

 

그런맥락에서어린이에대한예수님의언급은여전히사회적가치에만눈을두고있는사람들에게그와는반대로살아야할이유를보이고자드신또다른낮은자의사례라고할수있습니다. 따라서15절에서‘받아들인다’는말의또다른의미는어린이처럼세상의가치로바라보는것이아니라있는그대로존재자체를인정하라는의미로이해할수있습니다. 어떤사람인가를보는것이아니라, 그저그사람을있는그대로바라보는것이지요. 비록사회적으로는인정받지못하는어린이라할지라도, 하나님의나라는그존재자체를소중한대상으로받아들이는곳입니다. 따라서그곳에갈수있는자들도당연히있는그대로사람을바라볼수있는이들일수밖에없다는것이지요. 제자들처럼어린이들을가리고막아서는행위는세상의가치처럼사람을구별하는장벽과같은모습입니다. 반면예수님은어린이들을안으시고안수하며축복하여주심으로서하나님나라의축복은모두에게주어진은혜의선물이라는사실을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하나님의나라는어린이와같은자에게주어진복이라고분명하게말씀하셨습니다. 먼저어린이같은자는하나님의말씀을온전히받들기위해주님을자기삶의주인으로모시는사람입니다. 그런데그복은세상에서말하는잘먹고잘사는모습으로나타나는것이아닙니다. 어린이같아서하나님나라에속한자로산다고해서이땅의삶도편하고충족된모습이라는의미는아닙니다. 그러니현실의삶이편안하지못하고, 충족되지않은것같을뿐만아니라누군가의도움없이는일어설수도없을만큼절대의존적인형편이라하더라도좌절하지는마십시오. 오히려낮고작은자에게하나님나라의복이있습니다. 무엇보다그들을통해하나님의나라를만들어가십니다. 세상의가치관에눈을두기보다, 가장낮고작은자의소중함을볼줄아는어린이와같은자들을통해하나님은역사하십니다. 

 

오늘성만찬의공동식사에여러분이초대된이유도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세상에서누구보다높고훌륭한사람이어서가아니라, 작고보잘것없는것하나에도마음을주시는주님의한량없는은혜로부르신것입니다. 이성찬을어린이처럼기쁜마음으로온정성을다해받아들이시기바랍니다. 하나님의나라가바로여러분의것이될줄믿습니다. 우리주예수그리스도께서이자리에임재하시어우리를안으시고, 각심령을친히안수하며축복하시기를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