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같은인생

마가복음10:17-30

 

지난월요일저녁몬트레이에위치한가나안연합감리교회를오랫동안섬기다가은퇴하신고박선용목사님의장례예배가있었습니다. 이미두주전저를비롯해서같은연회에소속한여러목사님들과사모님들은병상에서마지막삶의여정을지나고계시던박목사님을찾아뵈었습니다. 함께찬양하고기도하며, 목사님에게마지막응원이될지도모를임종의준비를하였습니다. 많은목회자부부들이병상에누워서제대로눈도뜨지못하고계시던박목사님을위해찬양을부를때는저도그가운데있었지만, 마치천상의소리를듣는것만큼아름다웠습니다. 저의마지막가는길이라하더라도큰위로와소망을얻을수있을것이라는확신이들정도였습니다.

 

그때목사님이저희에게유언처럼한가지부탁을하셨습니다. 본인의장례예배때모두가함께“Oh Happy Day!”라는성가를같이부르면좋겠다는것이었습니다. 고인의부탁대로지난장례예배의마지막찬양은“오! 해피데이”였습니다. 모두가일어나서박수치며, 천국가는길을기쁜마음으로환송하며노래했습니다. 지금까지봐왔던그어떤장례예배보다은혜의감동으로벅찼던순간이기도했습니다. 무엇보다다른장례예배와확연히다른점은바로장례예배의조문객에게전하는감사의말을본인이직접촬영한동영상으로대신한부분이었습니다. 미리자신의장례예배를생각하며남기고싶은말을전한것이지요. 

 

“주하나님을만나러가는것이얼마나기쁜일인가! 그리고이세상에서주님의종으로불러주셔서마지막까지복음을선포할수있는삶이얼마나감사한일인가!” 라는마지막유언과함께모두가하나님의나라에가기전까지늘감사와기쁨으로살아가기를기원하는메시지를전하였습니다. 나중에집례목사님으로부터예배에사용된주보의순서와그안에들어갈내용들도박목사님이손수다준비해놓으신것이라는이야기를전해들었습니다. 생전에자주말씀을나눌기회가없어서잘몰랐는데, 목사님에대한깊은인상과삶과죽음에대한가르침을얻는귀한시간이었습니다. 

 

장례식을생각하며지금도이런질문을스스로해보게됩니다. “과연나는사나죽으나감사와기쁨으로오늘을행복한날이라고믿고있는것이맞는가?” 라는질문을말입니다. 여러분들은어떠신가요? 날마다주님의은혜속에서감사와기쁨으로행복한나날을누리며살고있다는믿음을갖고계신가요? 그래서주님이부르시는마지막그날에도주님을만나뵐수있다는기쁨으로‘오해피데이’ 라고말할수있는믿음이여러분에게있는것이맞나요?

 

세상을나름대로감사와기쁨으로살아가면서도아직구원에대한확신을갖지못한한부자청년이있습니다. 그에게오늘은아마행복한날인지는모르지만, 앞으로주님을만나는마지막순간까지행복할수있을것인가에대해서는스스로확답을갖지못한상태였던것으로보입니다. 그래서예수께묻습니다. “어떻게해야영원한생명을얻을수있을것인가?”라고말이지요. 결국구원의그날어떻게해야행복한날이라고말할수있는지를묻는것으로바꾸어이해할수있는대목이기도합니다.

 

그러자예수께서율법의몇가지조항을예로드시며, 그것을지키는삶인가를묻습니다. 청년은어릴때부터율법에서가르치는내용들을잘지켜행해왔다는이야기를합니다. 크게나무랄데없는모범적인삶을살았다는뜻입니다. 그런데예수께서드신율법의조항은십계명의두가지큰줄기안에서하나님과의관계를규정하는계명이아니라, 인간을비롯한피조물과의관계에관한조항들입니다. 십계명을예수께서는크게두가지의계명으로요약하신바있습니다. 하나는하나님을사랑하는것이고, 다른하나는이웃에대한사랑입니다. 다시말해율법의조항을하나님과의관계, 그리고피조물간의관계로축약시킨것입니다.

 

지금청년에게물어보신것도그렇고청년의대답도하나님과의관계라기보다는피조물간의관계에대한율법조항이라고볼수있습니다. 적어도이부분에있어서청년은크게문제삼을만한일을하지않았다고스스로자평한것이지요. 흔히믿음이없어도착하게사는사람들이많다는이야기를합니다. 오히려교회다니는사람들보다더모범이될만한행동을하는비그리스도인들을볼때도많습니다. 사실신앙을이야기할때, 하나님과의관계만큼세상속에서윤리적으로도모범이되는것은그리스도인에게중요한기준입니다. 그리스도인을세상과구별되게만드는‘거룩’의참된의미는경건한교회예배에참석하는것만이아니라, 날마다매일의삶속에서도증거되어야한다는것이지요. 

 

입으로신앙은강조하면서정작현실에서의삶은가르침대로행하지않는다면누구도그의신앙을모범으로삼지않을겁니다. 많은교회와교인들이세상사람들로부터비판을받는주된이유도이것때문아닙니까?  그런의미에서적어도율법을어기지않고살고자한젊은청년의모습은오늘날욕먹는교회나교인보다는훨씬더신앙적모범이되는것처럼보이는것이사실입니다. 적어도윤리적으로문제가될만한일은하지않았으니말입니다. 

 

하지만예수님은그에게부족한것이하나있다고말씀하십니다. 바로계명의또다른한축이라할수있는하나님과의관계에대한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온전한신앙을하나님과의관계와모든피조물간의관계가균형을맞출수있을때가능하다고보았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을사랑한다하면서형제를사랑하지않는것은거짓된신앙입니다(요1 4:20). 반대로하나님에대한믿음없이세상을사랑한다고말하는것은언제나불완전한모습일뿐입니다. 왜냐하면사람의감정이나행동은언제든변할수있기때문입니다. 그러니하나님사랑과이웃사랑은언제나함께가야온전한것이될수있습니다.

 

세상에서의율법적행실에문제가없던청년에게부족한것하나가바로하나님에대한사랑이라고지적하신이유가여기에있습니다. 사실청년의마음이어디로향해있는가를묻고자하신것입니다. 하나님과맘몬을함께주인으로모실수없다는점을재확인시켜주고자하신것이지요. 그래서가지고있는모든것을나누어주라고하신겁니다. 빈손으로돌아가라는청렴정신을강조하신것이아니라, 청년이자기삶의궁극적인주인으로과연돈이아닌하나님을모시고있는것이맞는지를확인하고자질문하신것입니다.

 

오늘날교회가점점교세를잃어가고있습니다. 이미유럽의교회는거의명맥만유지할뿐그영향력은매우미비한수준입니다. 가끔씩방송을통해굵직한사회적이슈에관한교황의메시지가사람들에게전달되는정도입니다. 청교도의나라인미국도더이상교회가성장하는시대는지나쳤다는분석이타당성을얻고있습니다. 한때지속적인성장을보이던한국교회도정체기를지나벌써쇄락하고있는상황입니다. 서구사회에서는신앙이생활속에스며들면서긍정적효과를보여주기도했지만, 지금은주인없는껍데기만남은신세가되었습니다. 세상의이야기는곧잘하는데, 정작하나님에대한믿음은인정을받지못하는시대가되어버렸습니다. 그빈자리를물질주의가차지해버렸다고해도과언이아닙니다. 그것은한국교회의상황도크게다르지않습니다.

 

얼마전세습문제로사회적지탄이되었던한국의한대형교회가800억이넘는비자금과2000억대의부동산을전국각곳에매입해놓은증거가언론을통해보도된바있습니다. 기자와의인터뷰에서재산을그토록많이가지고있는이유에대해교회관계자들은만일의사태를대비한것이라고대답하는것을들을수있었습니다. 도대체교회가무엇을예비하기에그토록많은돈과땅을축적해놓는다는것인가요? 오히려지금세상에필요한이들에게나누어주며살아야하는것아닌가요? 그것이바로예수님이가르쳐주신소금과빛과같은교회의본질적역할이아니던가요? 

 

이는마치가진재산을다팔아서가난한사람과나누라하신주님의말씀에도불구하고, 결국지금자신이가진 재산을놓지못하고주님을떠나가버린부자청년을연상시키게합니다. 예수님의이야기가더이상비유가아닌현실의실제상황이되어버린것이지요. 너나할것없이돈을숭상하는세속적가치가지배하는시대를목전에두게되었다는뜻입니다. 

 

이를보시며예수께서는재산을가진자가하나님의나라에들어가는것은낙타가바늘귀를통과하는것만큼이나어려운일이라고비유의말씀을전하셨습니다. 물론이말씀은잘새겨들어야합니다. 낙타가바늘귀를통과한다는말자체는불가능하다는점을부각시키기위한비유적표현입니다. 그와마찬가지로재산을가진자도사실은하나님이아닌재산을자기삶의주인으로삼은이를지칭하는표현에가깝습니다. 한마디로세상의모든부자로통칭할수있는특정계층을이야기한것이아니라하나님의말씀이아닌물질을주인으로믿고삶을살아가는사람들에대한이야기라는것이지요. 하나님이아닌맘몬을숭배하는이에게하나님의나라는주어지지않는다는사실을지적해주신말씀입니다.

 

또하나, 예수께서낙타라는특정한동물을비유로드신이유를생각해보게됩니다. 낙타는늘등에남의짐을지고가는동물로묘사됩니다. 사실바늘귀라는단어도당시성문의작은쪽문을가리키는말이었다고합니다. 낙타가그작은쪽문을통과하기어려웠던이유가운데하나가바로그짐때문이었습니다. 등에진짐을내려놓지않고서는그문을못지나가는것이지요. 그러고보면우리의삶이꼭낙타인생같아보이지않습니까? 무언가소유하기위해무거운짐을짊어지고살아가는모습처럼말입니다. 그것이마치삶의유일한낙이자목표인것처럼짐을막쌓아올리며살아간다는것이지요. 

 

이처럼낙타같은인생을살아가는우리에게예수께서이런말씀을하신바있습니다. “수고하고무거운짐진자들아, 다내게로오라. 내가너희를쉬게하리라(마11:28)” 그것이무거운짐인줄도모르고마치인생의유일한목표인것처럼생각하는이에게하나님의나라는지나가기어려운매우좁은문과같아보일겁니다. 그러나주님을믿고의지하는이들에게바늘귀와같은문은그저천국으로가는통행로에지나지않습니다. 무겁게진짐을내려놓고가는길이니늘기쁘고감사한길입니다. 무엇보다천국으로향해가는그순간에는정말“오해피데이”가절로나오지않을수없을겁니다.  

 

여러분은지금이순간행복하십니까? 영어의식당을가리키는단어restaurant은쉼을뜻하는rest에서유래한말이라고합니다. 오늘이자리는무거운짐을주님께맡기기위해나온쉼의자리입니다. 여러분이지금앉아계신교회는하나님의말씀을행복하게먹는‘영의식당’입니다. 오늘주님이주시는말씀을맛있게먹고, 삶의평안을회복하시기바랍니다. 그리고저문을나설때는낙타가바늘귀를통과하듯무겁게지나가는것이아니라, 날마다행복을느끼며감사와기쁨의찬양을드리는복된순간이될수있기를주님의이름으로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