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변화

마가복음 9:2-8

오늘은 교회력에 따라 산상변모주일로 지킵니다. 오늘을 지나면 돌아오는 재의 수요일로부터 부활절 이전 40일 동안 사순절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지난 주까지는 주현절이라고 불렀는데, 교회력은 주현과 변모, 그리고 수난이라는 진행 과정을 따르게 됩니다. 이처럼 교회의 전통은 예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셔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도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결국 그리스도 예수의 발자취와 함께 우리 자신의 신앙 여정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먼저 주현(epiphany)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직접 자신을 보여주신 사건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것은 예수님을 만난 역사적 체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변모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산에 오르신 뒤에 거룩한 모습으로 변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만방에 알리신 사건이 바로 변모 사건의 핵심입니다. 이것도 예수님이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된 것처럼 묘사하였지만, 실제 변한 것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바뀐 것 뿐입니다. 결국 변모사건의 핵심은 우리 자신의 영적인 변화에 있다는 말입니다.

변모 사건 이후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여정은 사순절이 의미하듯 고난의 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신앙의 여정을 매우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수를 알고 시선이 변화되는 것은 어쩌면 이후의 영적 성화의 과정에 비하면 쉬운 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고 변한다는 것은 단순히 입술로의 고백으로만 그치는 일이 아닙니다. 믿음은 모르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씨앗이면서 동시에 맺어야 할 열매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제자의 길은 참 고통스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변화의 과정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한 구절이 바로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한 사도 바울의 고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고백은 대략 세가지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매일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여기고 살겠다는 결단의 의미입니다. 둘째는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 수 있으리라는 소망의 표현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부활의 생명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영적인 변화는 날마다 새로와 지려는 믿음의 결단과 소망 그리고 이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이지요.

거룩한 변화는 이러한 신앙의 여정을 통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갑작스럽게 일어난 놀라운 변화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생각같아서는 예수님처럼 짠하고 한 번에 거룩하게 변화되면 좋겠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반복된 훈련과 내려놓음, 그리고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통해서 다가갈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신앙은 자랑할 것도 못되고, 마치 정복할 수 있는 목표로 삼아서도 안됩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한 여 검사가 법무부 핵심 선배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를 하여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해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미투(Me Too)” 운동을 한국사회에 촉발시킨 기폭제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을만큼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피해자인 여검사가 성추행을 당하고서도 8년 동안이나, 조직의 보복과 사회적 시선을 두려워하여 숨겼던 일을 밖으로 폭로하는 데에는 하나의 비디오 영상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추행 검사의 간증 영상이었습니다. 문제의 성추행 검사는 작년 10월에 한국의 한 대형 교회에서 세례를 받으며, 세례받은 이들 중에서 대표로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50여 년의 인생을 되돌아 보면서, 늦게라도 주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된 것을 감사한다는 고백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내용은 그가 자신을 공직자로서 늘 "깨끗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떠나게 되었다고 말한 대목이었습니다. 이제 세례를 받고 주님이 이러한 억울함을 다 이겨낼 수 있는 위로와 힘을 주셨다는 간증을 한 것이지요.

결국 지난 8년 동안 성추행으로 인한 고통을 억누르며 참아오던 여 검사에게 이 장면은 견딜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피해자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가해자는 마치 모든 죄과를 씻어 낸 사람처럼 말하고 있으니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여 검사가 침묵을 깨뜨리고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리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된 것이지요.

몇 해전 “밀양”이라는 한국 영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일이 있었습니다. 살인자가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전에 세례를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는 문제의 장면이 그것입니다. 피해자는 여전히 8년이라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마치 모든 것이 다 깨끗하게 씻김 받았다고 자평하는 가해자의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혹 가해자인 그 검사도 세례와 함께 스스로 산상에서 변화하신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변화되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요?

저도 비슷한 착각을 한 일이 있습니다. 안수를 받을 때였는데, 저는 목사로 안수를 받으면 제 주변에 아우라라도 생겨날 줄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저절로 거룩해 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는 세례나 회개에 대한 우리의 오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세례나 회개는 변화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의 변화를 뜻하는 말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변화는 두가지의 과정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세례나 회개를 통해 나타나는 첫번째 변화는 자기 중심적 삶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시선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예수를 모르고 살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 삶의 전향을 고백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예수를 믿게 되는 이 순간에 우리는 거듭남으로 구원의 확신을 얻는다고 배워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변화는 바로 그 다음에 나타납니다. 세례를 받고 회개를 하는 순간이 결코 구원의 종착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믿음을 통해 구원이라는 선물을 얻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자녀로써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혼이 사랑의 종착점이 아니라 이제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인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교인이 다 교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교인다와야 진짜 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았다는 확증은 성화된 삶을 통하여 구원 받은 증거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에게서나 찾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간증을 통해 보여준 가해자 검사의 신앙고백은 아직 미완성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변화된 자로써 용서를 구하고 잘못에 대해 응당 책임있는 태도를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변화를 향해 가는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이 거룩한 변화의 과정은 우리 모두가 가야할 신앙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는 이미 그 변화의 첫 발걸음을 뗀 분들입니다. 적어도 이 자리에 거룩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기 위해 나온 믿음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예배는 제 설교나 찬양단과 성가대의 찬양을 듣기 위해 온 자리가 아닙니다. 오직 살아계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거룩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갖기 위해 모인 이 예배의 처소가 바로 우리의 변화산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거룩한 변화는 단지 이 예배를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찬양, 섬김과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화를 우리 삶 속에서 함께 실현시켜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의 생각과 태도, 말과 행동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겉사람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속사람까지 완전하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도바울처럼 우리도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때로는 죽을 듯 힘든 길이지만, 그것만이 살 수 있는 길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예배를 통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서 희망의 내일을 맞이하는 거룩한 변화를 체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로와지는 믿음의 확신과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