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인

누가복음24:45-48

 

오늘본문은부활의증거를나타내는여러에피소드중의한부분에해당합니다. 부활의아침에일어난빈무덤에서의사건과함께자주인용되는말씀이기도합니다. 이이야기도부활의날을그시점으로하고있습니다. 그날에엠마오로내려가는두제자에게예수님이동행하시며스스로를나타내보여주셨습니다. 처음에그들은다른제자들과마찬가지로그분이누구이신지를깨닫지못하였습니다. 16절을보면이를누가는눈이가려져있었기때문이라고표현하고있습니다. 영적인눈이뜨이지않아서볼수없었다는뜻입니다. 그런데엠마오에다도착한뒤함께머물기로한집에서예수님은그들에게성찬의의식을베풀어주십니다. 그러자비로소제자들은그분이누구이신지를깨닫게됩니다. 

하지만흥미로운점은31절에기록한대로예수께서떡을떼어주신것을받고나자눈이떠져그가주님이라는사실을깨닫게되었는데, 정작보이지는않았다는기록입니다. 예수님을알아보지못한이유가눈이가려져있었기때문이니까, 눈을뜨게되면서주님을알아보게되는것은매우당연해보입니다. 그런데예수님이보이지않는다고하니재밌는표현아닌가요? 이말은결국부활의주님을보는것은육안으로확인하는수준이아니라결국은영적인깨달음과연결되어있다는사실을분명하게알려주는대목이아닐수없습니다.    

오늘본문은바로이에대한설명부분이라고해도무방합니다. 곧부활하신예수께서제자들이깨달아야할부활의진실이무엇인가를분명하게제시해주는말씀이라는것이지요. 그것은이미성서에서도기록되어있는말씀이었습니다. 본문은이를이렇게요약합니다: “그리스도께서육신의몸으로이땅가운데오시어우리의죄를대속하시기위해십자가의고난을지셨습니다. 그리고죽음으로아버지하나님의뜻을완성하시고, 우리를향한그사랑을확증시켜주셨습니다. 이와함께죽은자가운데다시살아나시므로그리스도를믿는자마다멸망치아니하고영원한생명을얻을수있다는사실을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통한하나님의사랑이이제우리에게부활의소망을안고사는은혜까지이르게된것입니다.”

이것이바로부활을설명하는핵심입니다. 예수님이제자들에게가르쳐주신부활의진실이라는것이지요. 그러니육안으로본다해서이진실이깨달아질리가없는겁니다. 오직믿음의눈외에는받아들일수있는내용이아니기때문입니다. 그래서영의눈이뜨이면, 오히려보이는것만가지고믿으려들거나진실이라고생각하지않는법입니다. 그런의미에서진짜눈을뜨는순간은예수님이말씀하신것처럼, 보지않아도믿을수있는바로그때라는것이지요.

그렇다고부활의증거가아무흔적도남기지않는법은아닙니다. 예수님은그흔적을발견할수있다고말씀하고계십니다. 바로증인들을통해서가능하다는것입니다. 본래증인이란말은헬라어로”μάρτυς martys” 입니다. 법적인용어로사용할때는, 어떤사건의진실을알거나, 그사실여부를증명해줄수있는사람이란뜻입니다. 일반적으로목격자란의미와동일하게사용할때가많지요. 그런데헬라어martys는영어로순교(martyr)의어원이되는말이기도합니다.  단순히목격하고증거했다는의미가아니라, 순교의십자가를짊어지는사람이되었다는뜻입니다. 

따라서예수님이제자들에게증인이되라고하신말씀은단순히부활을목격했으니그것을사람들에게알리라는좁은의미로만해석할것이아니라는것이지요. 다시말해, 증인이되라는것은예수님의순교를너희도함께동참해서, 그것을통해나타내보라는보다적극적인의미로하신말씀이라는것입니다. 우리도자기의십자가를짊어질수있을때, 비로소그리스도의부활을증거할수있다는뜻입니다. 무엇보다이것만이우리가확인할수있는진정한부활의증거라는의미이기도합니다.

어떤의미에서이땅의교회가부활의증거가되어야한다는뜻이라할수있습니다. 성도가그리스도의뜻에동참하는거룩한제자로서의삶을살아가는것, 그게바로부활의증거가되는길입니다. 교회가세상의빛과소금의역할을감당하기위해세상과는구별된거룩한신앙공동체로바로서는것, 그게바로부활의증거가되는것이지요. 이제그누구도예수님을육안으로보는것은불가능합니다. 그리고진짜눈이뜨이면보이지않는게당연해집니다. 그러니부활의증거로볼수있는것은오직그리스도의살아있는지체가되어살아가는교회와이에속한성도들의삶말고는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눈으로볼수있는모든것이다증거가되는것도아닙니다. 화려한예배건축물이부활의증거가될수는없습니다. 수많은사람들이모여활발하게돌아가는교회의프로그램들로증거를삼을수도없습니다. 하나님의말씀과뜻이교회와성도를통해오롯이증거가될때비로소진정한증인의자격을얻을수있는것입니다. 증인으로서의삶을우리가살아갈수있을때, 그것이바로주님께서명령하신증인의소명과역할을다하는것이라말할수있습니다.

따라서증인이되기위해우리는십자가의순교자가되는길을걸어갈수있어야합니다. 그것은자기를십자가위에스스로못박는자기부인의길입니다. 그리고자기의십자가를짊어지고세상의풍조와는구별된삶을살아가라는뜻입니다. 소금처럼짠맛을내기위해먼저자신이녹아지듯부인되어야하고,  이땅의어둠을밝히기위한빛을내기위해먼저자신을태워버려야만합니다. 

자기를부인하는순교자와같은증인이되는길을보여주는단적인사례가운데하나가바로시선입니다. 자기의눈으로만보지않는것이지요. 요즘유행하는말가운데“내로남불”이라는말이있습니다. 내가하면로망스인데남이하면불륜이라는말입니다. 왜그런일이벌어질까요? 그것은모든것을자기중심적으로만보기때문입니다. 그래서자기자신을성찰하기보다는다른사람을비판하고자기생각대로만판단하게되지요. 저도가끔그런경험을하는데, 이상하게시선이흐릿하면잘들리지도않는경우가많습니다. 남의말을듣지않고자기할말만하게되는이유가이것입니다. 교회가세상을비추는빛이되지못하면, 거꾸로세상으로부터비판을듣게되는상황이옵니다. 그런데그때듣지않으면잘못된시선도고칠수없습니다. 그러니세상으로부터그런비판이오기이전에먼저순교하는마음으로자신을버리고복음의증인이되어세상을향해빛과소금이될수있어야하는것이지요.

우리한국의대표적사상가중한분인함석헌선생의말중에“자기로부터의혁명”이라는것이있습니다. 예전에한창학생운동이활발한때가있었는데, 당시많은청년들이정의와도덕적선으로잘무장이된것처럼보였다는겁니다. 그런데이들이사회로진출하고나서도그만큼세상이정의롭고도덕적으로선한상태였는가하면그렇지않았다는것이지요. 적어도양으로보면그래야하는데, 전혀그렇지못하더라는겁니다. 그이유를함석헌선생은사회의혁명을주장하는개인들이정작혁명되지않은채혁명을하고있었기때문이라고지적하였습니다. 쉽게말하면세상의변화를주장하지만이를주장하는개인은변화가되지않은결과라는것입니다. 나만빼놓고남만변하라고소리친꼴이된것이죠. 한마디로“내로남불”의전형이었다는겁니다. 

지난주한인총회에서도비슷한경험을하고돌아왔습니다. 모두가교단전체의변화된모습을한결같이주장하면서앞으로닥치게될위기를넘어서야한다는주장들을여러관점에서제시했습니다. 그런데다른한편으로교단의변화를주장하는우리자신은과연변화하고있는가라는질문을하게되었습니다. 혹시우리도내로남불하고있는것은아닌가라는의문을갖게된것이지요. 

우리가한가지잊고있는사실이하나있습니다. 그것은십자가의사건이결코우리와무관한남의일이아니라는점입니다. 결국주님을십자가의길로이끈것은바로우리자신이었습니다. 나는그자리에없었다는변명은비겁한주장일뿐입니다.  그것역시증인이아니라는것을스스로증명하는변명일뿐입니다. 2000여년이나지났으니우리는사실상그논란에서자유로운것이아닌가생각할수도있습니다. 하지만여전히부활을믿는교회와신앙인들에게십자가의사건은여전히진행형입니다. 지금도우리는어쩌면예수님의손에, 그리고그의가슴에상처를주는못질을하고있는지도모릅니다. 

당시예수를따르던제자들은변화된세상을꿈꾸었습니다. 하지만세상의변화를꿈꾼것은일부제자들만이아니었습니다. 모두가서로다른모습으로제각각의변화를꿈꾸었죠. 나름대로모두가삶의혁명가였던셈입니다. 하지만예수님은분명하게말씀하십니다. 모두가증인이될수있는것은아니라고말이지요. 변화된세상, 곧부활의세상을목격할수있는축복은그냥얻어질수있는것이아니라는겁니다. 스스로십자가를짊어질수있는자. 자기를부인하고하나님의자녀로회개하며시선을돌이킬수있는자. 자기의생각으로가득차내로남불하는것이아니라자기로부터변화와혁명을일으킬수있는자. 바로그들만이진정한부활의증인이될수있는것입니다. 

과연오늘저와여러분은이시대의진정한부활의증인이맞을까요? 오늘우리의시선을다른누군가에게던지기이전에자기자신을되돌아볼수있기를바랍니다. 부활의시작은바로지금여기, 우리자신에서출발한다는사실을잊지마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