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같은이야기

요한복음20:1-18

 

세상에단하루만나타났다사라지는나라가있다고한다면여러분믿으시겠습니까? 만우절인4월1일하루만존재한다는그나라의이름은“우주피스(Uzupis) 공화국”입니다. 북유럽에위치한리투아니아의수도빌뉴스에있는작은마을에그나라가존재한다고합니다. 그런데딱하루만세상에모습을나타낸다고하니신기하지않습니까? 사실우주피스는작은마을의이름인데, 2차세계대전이후빈민가로전락한마을에예술가들이모여들면서, 정말거짓말같은나라를만들어보자는취지로시작한것이라고합니다. 

만우절을이용해스스로독립을선포하고, 하룻동안필요한장관들도선출하고헌법도만들었다고하니제법국가의형태를갖춘것이라볼수도있을겁니다. 그런데헌법의조항이하나같이흥미롭습니다. 누구나사랑할권리,누구나행복할권리,누구나실수할권리,누구나행복하지않을권리등등처럼무언가를금지하기보다모든생명체가소중한삶의의미를누릴수있는매력적인법을만든것이지요. 비록단하루만이라하더라도. 이로인해나머지364일을희망으로견딜수있는힘을줄테니말입니다. 이처럼가장암울한빈민촌이사람답게살아가는이상적인나라로변할수있는거짓말같은이야기가지금도우리의현실어디선가에존재하고있습니다.  저는오늘여러분과부활의의미를통해이것이더이상만우절의거짓말이아니라는사실을함께나누어보고자합니다.

오늘은부활주일이면서동시에만우절이기도합니다. 믿음이없는이들의시선으로보면둘의공통점이되는한가지단어가있습니다. 바로거짓말입니다.  거짓말같은이야기로들리거나아니면진짜거짓말이라는차이점만빼고말이지요. 예수님의부활사건을접한당시의많은사람들은아마도거짓말같은이야기로생각했을가능성이높습니다. 본문9절말씀을보면, 실제빈무덤에가서현장을목격한제자들조차부활에대해확신을갖지못했던것으로보일정도니말입니다.

안식일다음날막달라마리아가예수님을장사한무덤으로찾아갑니다. 그리고그곳에서무덤을막고있던돌이옮겨져있는것을보고는놀라서예수님의제자들에게달려와그사실을알립니다. 아마마리아는누군가예수님의시체를옮겼다고직감했던것으로보입니다. 이소식을들은제자들도한걸음에달려옵니다. 그중에베드로가무덤안에들어가보니예수님의몸을두르고있던  세마포와수건이가지런히개켜있었습니다. 그들은무덤이비어있었다는사실을눈으로확인한것입니다. 8절에서또다른제자인요한이보고믿었다고한말의의미를명확히알수없는것도바로이때문입니다.

왜냐하면무덤이비어있다는것을보고그들이믿었다고한것은도대체무엇을뜻하는것일까요? 한마디로그들은뭘믿은걸까요? 엄밀한의미에서무엇을믿었다는직접적인표현보다요한과베드로는예수님의시신을유대인들이감쪽같이빼돌리지는않았을것이란사실에안도를했던것으로보입니다. 마태복음27장64절에기록되어있듯이, 대제사장들과바리새인들이빌라도에게예수의제자들이예수의시신을도둑질한뒤에그가죽은자가운데서다시살아났다며거짓말을퍼뜨릴지모른다는말을하는대목이있습니다. 그러면서시체를몰래빼가지못하도록철저하게무덤을지키고있어야한다는주장을했습니다. 이를알고있던제자들도유대의종교지도자들이이모함을역이용하여예수님의시체를도둑질한뒤에악한짓을꾸미지는않을까노심초사하고있었습니다. 그러한이유인지는몰라도마태복음27장61절에기록된것처럼, 막달라마리아를비롯한여인들도무덤을지키고있을수밖에없었던것으로보입니다. 

때문에빈무덤에놀란것은제자들이나유대의종교지도자들이나똑같았을겁니다. 다만요한이보고믿은것은가지런히개켜있는수의를보고,적어도그들이시신을마구잡이로도적질하지는않았을것이란안심을했던부분이었을가능성이큽니다. 게다가9절의말씀에서도지적하고있지만, 제자들도아직부활에대한믿음을갖지는못했던상황이었습니다. 사실빈무덤과부활을직접적으로연결지어생각하는것이쉬운일은아니지요. 적어도부활에대한믿음이없거나믿어도잘못된이해를갖고있는이에게는말입니다. 무덤이비어있었기때문에부활을믿는다고하기에는어딘가논리적비약이라는생각을하지않을수가없습니다. 왜냐하면그것은주님의부활을마치죽은나사로가되살아나는장면을연상하듯무덤을열고나오는모습으로생각할때만가능한이야기이기때문입니다. 

아마이것이제자들을그냥자기집으로돌아가게만든이유인지도모릅니다. 이때까지도그들은예수께서이미예고하신부활을직접적으로떠올리지는못했던것이지요. 그런데이러한상황을표현한본문10절의말씀이흥미롭습니다. 말씀에의하면제자들이그냥자기집으로돌아갔다고기록되어있는데, 여기서사용된자기집이라는단어의원어“ἑαυτοῦ (heatou)”가“자기자신”이라는뜻으로도사용되고있기때문입니다. 한마디로제자들은자기자신에게로되돌아가버렸다는뜻입니다. 본래제자의길이란자기를부인하는것입니다. 그런데이들은지금다시원래자기에게로돌아가버렸다는것이니, 제자로서의본분을잃어버린것이나마찬가지의상태가된것이지요. 그리스도를자기안에모시지않은상태가되어버린겁니다. 정작빈무덤이된것은바로제자들의마음상태였던겁니다.

이러한영적인공백상태가가져올한가지질문은매우분명합니다. 그것은바로“주님어디에계십니까?”라는질문입니다. 빈무덤에찾아간막달라마리아나제자들의질문도똑같은것이었습니다. 어디계신지모른다는것이었죠. 그리고그질문은여전히우리삶속에서부활하신그리스도를자기안에모시지못하고살아가는모든사람들의똑같은질문이기도합니다. “도대체주님지금어디에계십니까?”

정말거짓말같은이야기는예수님이부활하셨다는그말이아니라, 오히려믿는다고하는사람들조차사실은주님이어디에계신지모른다고하는모습이아닐까요? 자기안에계셔야할그분을모시지못한것, 아니더정확하게말하자면자기안에이미함께계신그분이어디있는지모른다고잡아떼는것이야말로거짓말같은이야기가아닐까요? 그런의미에서오늘날우리시대의비극도“예수없는시대”를살고있다는사실아닐까요? 도대체어디서예수님의흔적을찾아야될지도모르는현실, 그래서교회에서조차예수를찾지못하는거짓말같은이야기가실재처럼벌어지고있는것은아닐까요?

결국예수님을찾아야할제자들이떠나간것처럼교회도오히려제갈길로만가고있었던것은아니었는가되돌아보지않을수없는현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놀랍게도예수님의부활을깨닫게된순간역시제자들의노력이나자각에의한것이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직접그들을찾아와불러주시기전까지그들은전혀알아보지못했습니다. 울고있던마리아가예수님을알아보게된것도주님이직접찾아와그를불러주었을때였습니다. 두려움에떨고다락방에몸을숨기고있던제자들이예수님을알아보고부활을믿게된것도주님이그들을먼저찾아주신이후였습니다. 한마디로자기중심적삶으로돌아간제자들스스로주님을다시모신것이아니라예수님이직접그들의마음에찾아와주셨다는뜻입니다. 

이것이야말로정말거짓말같은이야기가아닌가요? 믿으려하지않을뿐만아니라, 오히려배신까지서슴지않았던자들을위해다시찾아와구원의길로인도해주셨다는말이세상의시각에서보면이해가가지않기때문입니다. 살아서도세상의눈에는정말이해하기어려운모순된말씀만전하시더니, 죽기까지우리를향한한없는사랑을끝까지보여주신것이지요. 열가지잘해도하나만못하면뒤틀려버리는인간관계를살고있는현실의우리에게는정말거짓말같은이야기처럼들립니다. 하나잘해주고그것을이자부쳐서돌려받지못하면억울해하는우리에게한없이불합리해보이는거짓말같은이야기가아닐수없는것이지요. 

그런의미에서부활은이거짓말같은이야기가현실로실현된사건이라할수있습니다. 우리를향한끝없는사랑의완성입니다. 결코우리를 포기하지않으시겠다는, 정말믿기힘든사랑을한없이베풀어주신은혜의사건입니다. 그리고이를통해주님은그의자녀들이다시주님께로되돌아오기를요청하셨습니다. 그것이바로희망을잃어버린시대에죄악과어둠을이기고생명을살리는희망의길임을가르쳐주셨습니다. 더이상희망이보이지않는다고생각하는그순간에도사람답게살아갈희망을발견할수있다는정말거짓말같은이야기를우리에게가르쳐주신것입니다. 오늘부활의소망을품은우리교회와성도들에게도똑같은요청을하고계십니다. 예수님이우리와함께하는공동체를만들어나가야합니다. 이를증거하며살아야합니다. 부활을통해우리를찾으시고불러주신것처럼, 우리도그리스도의발자취를따라서로를찾아불러주는사랑의공동체가되어야합니다. 그래서거짓말같던이야기가이땅에서더이상거짓말처럼들리지않는참하나님의나라를이루어가는우리모두가될수있기를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