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맺는포도나무

요한복음15:1-8

 

지난열흘간저는북가주지역의한인코커스에서기획한종교개혁성지탐방을하고돌아왔습니다. 95개조반박문을통해종교개혁의불씨를일으켰던루터로부터쯔빙글리와칼뱅, 그리고감리교의모태운동이되었던영국웨슬리의발자취를따라가는순례의여정이었습니다. 2년전사도바울의소아시아전도여행지였던터키-그리스순례길이대개오래된유적지탐방이었다면, 이번성지순례는중세의성당과종교개혁이후의교회를방문하는길이라고말할수있을겁니다. 그래서거의여행의막바지에다다랐을무렵에는성당의위용과이채로운모습에도크게놀라지않을만큼모두가익숙해질정도가되어버렸습니다.  

물론쾰른대성당을비롯한대부분의성당과교회는유럽의찬란했던역사를그대로담고있을뿐만아니라믿음의선배들이가진신앙열정과자부심을그대로느낄수있을정도로대단한건축물이아닐수없는것이었습니다. 유럽의아름다운풍경만큼이나우리에게는이국적이면서도경이로운감정을갖게하기에부족함이없었습니다. 사진이나이미지를통해서보는것과는비교가될수없을만큼놀라운예술작품그자체였습니다.

이를달리생각해보면, 그토록중세의카톨릭교회가교회건축에열을올릴수밖에없었던이유를조금은이해할수있을것만같기도합니다. 지금도우리말로“성당”, 곧거룩한집이라고부를만큼, 교회는단순한건축물이상의의미를갖고있었기때문입니다. 일상언어로예배를드리거나출신배경과학력의수준에상관없이신앙생활을할수있는오늘날과는달리, 종교개혁이전의신자들에게신앙생활은자기방식대로쉽게행할수있는성격의것과는거리가멀었습니다.  일부사제들만이예배를독점하고있었고, 성경말씀조차읽기힘든라틴어를사용하여일반신도들은마음대로말씀을접할수도없는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성당이라하는하나님의집에서예배하고, 그곳에장식된화려하고도경이로운성상이나이미지를통해신앙생활을유지하는것이그들에게는특별할수밖에없는일이되어버린것입니다.

저역시놀라울만큼웅장하고아름다운교회건축물을보면서하나님과의신비로운관계를체험하는듯한인상을받았던것이사실입니다. 그안에있는것만으로도주님과의교제가이루어지는것만같고, 거룩한영적체험을하고있는듯한느낌을받았습니다. 아마도대부분의사람들이그와비슷한생각을했는지도모르겠습니다. 그런데시간이지나면서, 아무리좋은것이라도자주보면그감동이줄어든다는말처럼점점무뎌지는것을경험하게되었습니다. 함께순례의길을동행하던여러분들도“또성당이야”라는말을무심코하는것을목격하기도했습니다. 특히세계최고의고딕양식을자랑하는독일의쾰른대성당을방문하고나니, 나머지교회건축물들은말그대로“거기서거기”처럼느낄정도로감동을주지못하는상황이벌어지기도했습니다.

이것은아마도오랜역사를거쳐오며점차신앙의본질이흐려지게된원인과도연관이있다는생각이듭니다. 만일교회의건축물을통해신앙생활의정수를누릴수있다고생각했다면, 더더욱영향을받았을가능성이큽니다. 더높이, 더크게, 그리고더화려하게수놓은건축물을통해하나님을만나고영적인체험을할수있다고믿었던중세카톨릭교회가점차무너질수밖에없었던이유가여기에있다는것입니다. 하나님과의순수한교제를교회예배당안에있는것과동일시할때나타나는현상이자결과라는겁니다. 성령의역사를경이로운건축물안에거한다는사실을통해이룰수있다고믿는착각의산물이아닐수없습니다. 과연이런왜곡된신앙을통해참된믿음의열매를맺을수있겠습니까? 

면죄부를판매하면서까지엄청난교회건물을세우려했던중세교회가개혁의대상이될수밖에없었던까닭이바로여기에있습니다. 포도나무의비유를통해교회의본질을분명하게가르쳐주셨던예수님의말씀을생각해보면, 그이유를더욱  분명하게알수있습니다. 예수께서포도나무안에거하는지체가되라고하신말씀은결코교회의건물안에머물러있는성도의모습을가리키고있는것이아닙니다. 물론교회의예배당안에서하나님을찬양하고기도와말씀에몰입할수있다는것은그자체로도매우은혜로운모습이아닐수없습니다. 하지만우리가머물러야할포도나무는단순히형체를가진교회의예배당이나교황을중심으로하는카톨릭교회의조직처럼제도로서의교회를의미하는것이아닙니다. 예수님도스스로를포도나무라고하지않으셨습니까?

다시말해, 우리가정말머물러야할곳은바로그리스도이신예수님이되어야한다는것입니다. 우리가생명을얻을수있는길이바로그분께있기때문입니다. 요한복음14장6절에도기록되어있듯이, 주님은스스로를길이요진리요생명이라고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통해우리는생명의진리를얻을수있습니다. 그분이바로우리에게영원한생명을향해가는길입니다. 그러므로나무에서떨어진가지가생명을잃어버릴수밖에없듯이, 예수님으로부터떨어진그어떤신앙의형태도결코영적인열매를맺을수없는법입니다. 

그런의미에서중세교회가무너진결정적원인도궁극적으로는교회가예수라는포도나무에서떨어져나왔기때문이라고할수있습니다. 열매맺지못한가지가되어버렸다는뜻입니다. 사실이비유는당시예수께서율법과성전의전통에얽매여있던유대사회를비판하며하신말씀이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말씀을율법의형식과성전의  권위에만국한시키려했던유대교의모습이결국열매맺지못한가지나다름없다고지적하신겁니다. 예수님은본문8절의말씀을통해이를다른각도에서설명해주시기도했습니다. 열매맺지못하는가지의모습을제자로서의삶을살아가지못하는것에견주어설명하신겁니다.

사실제자로산다는말은한마디로스승의가르침을따르는삶이라고도할수있습니다. 예수님의가르침은매우분명한것이었습니다. 바로“서로사랑하라”는계명이었습니다. 본문바로뒷구절말씀인10절에서예수님은계명을지킬때주님의사랑가운데머물수있다고하셨습니다. 이는두가지사실을알려주는말씀입니다. 하나는포도나무의열매를사랑이라고가르쳐주고있다는사실입니다. 다른하나는주님의가르침을따라제자로살아갈때비로소포도나무안에거하는지체가될수있다는사실입니다. 결국제아무리화려한건물을짓고, 율법에아무리능통하더라도사랑하지않으면그것은쓸모없는가지나다를바없다는것입니다.

유대의형식적율법주의처럼중세교회가개혁의대상이될수밖에없는이유도여기에서찾을수있습니다. 교회가세상을사랑하기보다, 오히려세상을자신의욕망과유익을위한도구로삼았기때문이라는것이지요. 이는남에게큰잘못을범하거나해를끼치지만않으면된다는소극적의미보다더강력한요구라고할수있습니다. 교회가사랑하지않으면, 결코포도나무의지체로남아있을수없다는말씀입니다. 무엇을크게잘못해서가아니라사랑을하지않는다는이유만으로도교회는반성과참회를해야한다는것이지요. 그것이바로예수님이말씀하시는포도나무의열매맺는방식이라는것입니다. 

금번종교개혁지를탐방하면서,저는교회개혁을위해자신의삶을헌신했던믿음의선각자들을떠올리면서, 동시에오늘우리시대의교회가처한현실을생각해보았습니다. ‘과연우리자신은또다른종교개혁의대상이아닌주체가맞는가?’라는질문과함께말입니다. 분명한사실은우리가개혁의대상이아니라주체가되기위해서는먼저열매맺는포도나무의가지와같은역할을행하고있어야한다는점입니다. 그리고이를분명하게알수있는기준은지금우리가서로사랑하며살고있는지그여부에달려있다고해도과언이아닙니다.

그렇다면서로사랑한다는기준은무엇을가지고말할수있을까요?금번순례의여정중에저를감동시킨것은비단역사적교회의건축물이나종교개혁가들의발자취만이아니었습니다. 여행의막바지에함께동행했던한목사님의간증은무엇보다진한감동을가져다주는순간이었습니다. 금번에함께동행하기도했던목사님의둘째아들은자폐증을갖고있습니다. 누구에게맡기고올수가없어서목사님내외는어쩔수없이아이를데려오게되었습니다. 오랜만에나온여행이었지만, 결국두부부는한순간도중증자폐증을앓고있는아들에게서눈을뗄수가없었습니다. 남들처럼탐방에집중하기가어려웠습니다. 그러니여행이라기보다는오히려더힘든순례의과정이될수밖에없었다고합니다. 

벌써15년간을그렇게지내다보니참으로어려움이많았던것으로보입니다. 아무리부모라하더라도, 보통아이들과는다른행동을보이는아들을쉼없이지키고돌본다는것은말처럼쉬운일이아니기때문입니다.그런데목사님이종교개혁지를탐방하는도중에이런간증을하는것이었습니다. 우리가각양각색의다양한교회건물과주택들을보면서감탄하지만, 사실은우리자신도각기개성이다양한집의모양을갖고살고있는것이라고비유한겁니다. 그러고보면목사님의자폐아아들도다만일반적인사람들과는다른형태의집에머물고있는것에불과하다는것이지요. 그속에서자기만의세계를사는것뿐이라는겁니다.

하나님은특정한집이나보편적인어느형태를가진이들만을위해세상을창조하시지않으셨습니다.생명이있는모든것들을창조하시고,이름을붙여주셨습니다. 이를통해모든것은그나름대로의의미와가치를갖게되었습니다. 생명이있는존재마다모두그자체로목적이되는축복을주신겁니다. 모두가사랑받을만한충분한이유를다부여해주신것이지요.그래서그목사님은만일하나님께서지금그아들을다시선택할것인가라는선택권을주신다하더라도, 결국자폐증아들을선택할것이라고힘주어말하였습니다.

저는그목사님의간증을들으며이런생각을해보았습니다.우리가사랑하고또사랑받는것은그럴만한이유나조건이충족되기  때문이아니라는사실을말이지요. 거기에있다는사실만으로도사랑받고사랑할충분한이유가되는것입니다. 따라서서로를사랑하는것은나아닌다른이를그대로받아들이고인정하는것에서부터시작하는것임을알수있습니다.예수님의말씀처럼내몸처럼다른사람을대할뿐만아니라, 설사나랑완전히다르다하더라고그것을이해하고포용하는것이바로서로사랑하는모습이라는것을깨달을수있습니다.

지난27일분단된한반도의상황을상징적으로보여주는판문점에서역사적인사건이있었습니다. 남북한정상이만나한반도의평화와화해,그리고통일에대한합의문을발표하게된것입니다. 약10cm밖에되지않는경계를두고지난65년의시간을반목과갈등으로보낸우리민족에게역사적변화를알리는신호탄이되는사건이아닐수없습니다. 물론여전히갈등과분열의씨앗이남아있다하더라도, 일단평화의길을열어가기위해첫발걸음을성큼내디뎠다는사실만으로도매우의미있는감격적순간이라말할수있습니다.

저는종교개혁지탐방을마치고돌아오는길에,이소식을접하며이런생각을해보았습니다. 예수님이아니라교회의제도와의식에머물러개혁의대상이되었던중세교회의가장큰오점은바로서로사랑하기보다생명을도구로삼았다는점이었습니다.비록나와는다르다할지라도, 모든생명은충분히사랑받아야하고, 따라서서로사랑하는것은당연한의무입니다.그것이바로예수님의계명이기도했습니다.그러나교회는한생명의소중한가치보다물질과권력에눈이멀어사랑을잃어버렸습니다. 오직자신의유익만을구하며예수의사랑가운데머물기를포기해버렸습니다. 그것이바로청산의대상이된이유였습니다.

남북한이갈라져반세기이상을반목하며살아온남과북도이제는 너무나도다른체제와환경, 그리고생활방식을갖게되었습니다. 이제는다시함께산다해도그과정이쉽지않을만큼그간격을좁히는것은여간어려운일이아닐겁니다. 그렇다고해서우리가다르다는것이서로를향한사랑과배려도무의미하다는것을뜻하는것이아닙니다. 여행을하며다른문화와환경에감동하는것은말그대로익숙했던나의것과는다른것을있는그대로받아들일수있었기때문입니다. 다르다는것을인정하고,그것의가치를그대로존중할수만있을때비로소여행도참의미를갖게되는겁니다.

바라기는남북한의평화와화해, 그리고통일의노력도이와같이서로의다름을인정하며받아들이는것에서부터시작할수있기를소망합니다. 이를통해서로를존중하고상생의길을모색할수있어야합니다. 그것이바로서로사랑하는포도나무의열매를맺어가는길입니다. 그때비로소우리는하나된포도나무의모습을회복할수있을것입니다.  급격하게변해가는환경과정세속에서오늘우리의교회가그리스도예수의가르침을따라열매맺는삶을살아갈수있기를소망합니다. 서로사랑하며그리스도의몸된교회로모두가  열매맺는포도나무의지체가될수있기를간절히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