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중심

마가복음6:1-6

우리몸의중심은어디에있을까요? 여러분은자신의몸에서어느부분이중심이라고생각하십니까? 대개의사람들은배꼽이나허리부분을꼽는경우가많습니다. 요즘처럼균형잡힌몸매나건강을중요하게생각하는시대일수록몸의중심을신체의일부기관에서찾을가능성이높습니다. 그런데정말그럴까요? 가시에손가락을찔려본일이있을겁니다. 혹은다리를삐끗해서멍이들거나근육이상해서제대로걷지못한경험을가져보았을겁니다. 만일지금그와똑같이신체의일부중어느한부분이상처를입은상태에서과연몸의중심이어디냐고묻는다면어떤대답을내놓을까요?

이에대한해답을제시해주는시가하나있습니다. 정세훈이라는시인의<몸의중심>이라는시입니다. 시인은말합니다. 몸의중심은바로아픈곳이라고말이지요. 어루만져주지않으면안되는곳.그곳이바로몸의모든신경을움직이게만드는몸의중심이라는겁니다. 그러니까몸의중심은특별히어느한기관이나신체의어느특정한부분이아니라아파서우리의신경을온통집중시키는그곳이될수밖에없다는뜻입니다. 

그런의미에서지금여러분의중심이되는곳은어디인가요? 아마도각자의상태에따라여러곳이될수있을겁니다. 그런데우리의중심을바라보시는하나님의눈에비친우리의상처는단지눈에보이는곳이아니라는겁니다. 생명의근원이요, 삶의평강과은혜를주시는하나님과의관계를무너지도록만든범죄한우리의심령이야말로가장아픈몸의중심이라는것이지요. 이로인해하나님은우리의아픈상처를어루만져주시기위해커다란희생을치루셔야만했습니다. 

독생자그리스도예수를통해우리의죄를대신지게하신것입니다. 그래서어떤한신학자는우리몸에도중심이있는것처럼하나님이창조하신우주에도중심이있다고말한바있습니다. 그것은바로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는가장아픈곳으로남은상처와같은곳이기때문이라는겁니다. 따라서십자가는우리의상처를낫게만든구원의상징이면서동시에, 우리의죄를위해흘려야만했던하나님의가장깊은상처를보여주는고난의상징으로남게되었다는것이지요.

오늘본문말씀은왜하나님께서십자가의고난을안으셔야만했는지, 그리고우리인간들이가진가장큰상처가어디에있는지, 그몸의중심을적나라하게보여주는한사건을우리에게전하고있습니다. 그이야기는예수께서자신의고향인나사렛을방문했을때일어난사건을기록한말씀입니다. 복음서전체를통해유일하게기록된고향방문때의이야기입니다. 그배경은안식일에회당에서사람들에게말씀을전한이후에일어난사람들의반응을다루고있습니다. 

예수께서회당에들러아마그곳에모인사람들에게하나님의말씀에관한여러이야기들을가르친것으로보입니다. 그러자이를듣고있던사람들이놀랍니다. 그들이놀란이유에대해서마가는크게두가지를들었습니다. 하나는지혜에관한것이고, 다른하나는기적에관한것이었습니다. 당시유대인들에게지혜라고하는것은하나님의말씀, 곧율법그자체를말하거나아니면이를이해하는능력에관한것과관련이있는말이었습니다. 예수께서공생애를행하시며많은사람들에게하나님나라의복음을선포하셨는데, 이것이유대인들에게는지혜에관한질문과직접적으로연관이되는문제였던것입니다. 그리고유대인들에게이것은궁극적으로무엇이진리인가라는질문을하게만들었던것이지요. 정말예수가전하는지혜의말씀이사실인가라는의심을하게만들었다는겁니다.

유대인들이놀란다른하나의이유는바로기적에관한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이곳저곳을돌아다니시며여러기적의능력을베푸셨는데, 그것이어떻게가능했던가를묻는질문이었습니다. 한마디로이해할수없는일이이루어진것에대해서의문을제기한것이라할수있습니다. 무엇보다이모든일이과연하나님의뜻가운데서이루어진것인가를그들은모두가의심하고있었던것으로보입니다. 말하자면이방신의농간이나특정한목적을가지고벌인거짓술수정도로폄훼시켜생각하고있었던겁니다.

3절에서이를한마디로잘요약한표현이등장합니다. 바로달갑지않게여겼다는말입니다. 당시예수님을바라보는유대인들의평가를매우노골적으로나타내주는표현이아닐수없습니다. 그런데유대인들이그토록예수님을달갑게여기지않았던까닭은무엇때문이었을까요? 참어이없게도, 그이유는다름아닌예수님의출생신분과연관이있었습니다. 요즘흔한말로가진것없는“흙수저출신”이라는사회적편견이만들어낸결과라는것입니다. 예수를마리아의아들이라고부르는데서사실상그를비꼬는듯한어감을느낄수있습니다. 유대사회는전형적인가부장적사회로누구의아들이라고할때는대개아버지의이름을사용하는데, 마리아의아들이라고칭하는것은그만큼그의출생신분을낮게보려는유대인들의심리가작용한것이라볼수있습니다.  

목수라칭한예수님의직업도당시경제사회적인피라미드의계층구조에서하층부에속하는비천한그의신분을의도적으로나타내려는것으로이해할수있는대목입니다. 결국예수의별볼일없는출신성분을들어, 그가특별한능력을지닌사람일리없다는불신을노골적으로나타낸것이지요. 이를두고예수님은'예언자가자기고향에서존경을받지못한다'는유대의속담을인용하셨습니다. 이말은단순히가까운사람들일수록뛰어난사람의진가를몰라본다거나남의떡이더커보인다는뜻으로하신말이상의의미를내포한것이라이해할수있습니다.

흥미로운사실은예수께서언급한자기고향, 자기친척, 자기집은창세기에기록된아브람의이야기속에서그가하나님의부르심을받고떠날때다두고온것들이라는점입니다. 하나님의자녀가되기위해포기한일종의자기소유의대상이었다는것이지요. 여기서중요한점은소유의대상이되는고향이나친척, 집을포기했다는것이아니라사실은그마음에관한것이라할수있습니다. 결국믿음이라고하는것은마음의중심을자신이소유하려는욕망의대상에서부터하나님이지시한것으로바꾸는행위라는것입니다. 다르게표현하자면, 자기중심적사고에서하나님중심으로마음의중심이이동하는것이바로믿음이라는것이지요.

그렇게본다면지금예수님을달갑게여기지않아서그가행한모든것에반발하고의심부터하려는이들이가진가장큰문제는여전히자기중심적사고에서벗어나지못하고, 모든것을자기맘대로평가하려는태도에머물러있다는점이라는것입니다. 믿음의눈으로주님을제대로바라보지못하고있는이유가사실은여기에있다는말씀이었던것이지요.

그러니예수께서전하시는지혜의말씀도제대로들릴리없고, 이땅에서우리를위해행하신기적조차인정하려들지않았던겁니다. 이미자기중심적인고정관념과편견으로가득차모든것을왜곡되게바라볼수밖에없었던것이지요. 6절에서이러한상태를믿지않는것이라표현한이유이기도합니다. 자기중심적태도에서하나님중심으로마음의중심이이동하는것을믿음이라고한다면, 그들의모습은전적으로믿음이없는것에지나지않았다는겁니다. 

결국그곳에서매우손길이필요한병자들을치유해준것말고는별다른기적을행하지않은이유이기도합니다. 그것은예수님이능력이없거나마음이내키지않았기때문이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불신이만든결과라는것이지요. 혈루병걸린여인에게"네믿음이너를구하였다"고한말씀을생각해보면, 기적도사실은일방적행위라기보다는우리와함께만들어가는상호적성격을띠는사건이라할수있습니다. 기적은위에서일방적으로내려주는시혜가아니라, 믿음으로함께만들어가는하나님의은혜라는것입니다. 왜냐하면믿음이아니고서는기적을진정으로깨달을수도없기때문입니다.

이이야기를통해우리는우리가가진몸의중심이어디인가를다시한번확인하게됩니다. 그것은바로우리의심령을가장아프게만든자기중심적불신앙에서찾을수있습니다. 그것이예수님을달갑게여기지않게만들고, 하나님과의관계를가장멀게만든원인이되었으니까요. 그리고그결과가기적을만들지못하는불행한현실을갖게된것이라는사실을깨닫게됩니다. 우리의아픈상처를어루만져주시는하나님의능력을보지못하게만드는것역시우리자신의불신앙때문인것이지요. 그런의미에서오늘우리가믿음의시선으로직시해야할우리몸의중심이어디인지분명하게깨닫게되기를소망합니다. 그리고이를통해우리의상처가회복되고그리스도안에서놀라운삶의기적들을체험할수있게되기를주님의이름으로간절히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