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사는 법

요한복음6:41-51

중국에서 전하는 이야기 중에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먹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에게는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흔히 민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통치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중국의 모택동 주석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 배경에는 이와 같은 그의 통치이념이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래 전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 사용한 슬로건도 “It’s the economy, stupid (경제가 답이다, 바보야)”이라고 했는데, 영어의 이코노미도 결국은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한마디로, 먹는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담으로 “중국 사람들은 네발 달린 것 중에는 책상,하늘을 나는 것 중에는 비행기, 물 속을 다니는 것 중에는 잠수함 빼고는 다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먹는 문화가 발달한 중국에 대해 비꼬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만큼 중국인의 세계관 속에 먹는다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반증해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무엇보다 인간의 삶 속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먹거리를 그렇게 확장시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중국의 음식문화가 가진 창의력과 발전을 함부로 이야기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먹는 것을 통해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중국인의 전형적인 세계관이야말로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문화유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니까 말이지요. 

같은 한자 문화권인 우리도 먹는 것과 관련한 생각과 가치관은 중국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예전에는 가족의 인원을 물을 때, “입이 몇이냐?”고 툭 던지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족의 수를 밥 먹는 입으로 계산한 것이지요.사람수도 우리 한자 문화권에서는 ‘인구(人口)’라고 해서 먹는 입의 수로 세지 않습니까? 요즘 식으로 따져 보면, 사람이 생각하는 동물이니 머리로 세는 것이 날 법도 한데, 희한하게도 우리는 머리를 동물의 수(마리)를 셀 때나 사용하지 사람에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신화도 재미있는게 다 먹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단군신화를 보면 동물인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뿐이었습니다. 잘 먹는 것이지요.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을 수 있는 것. 그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만 먹을 수 있는 게 또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욕입니다. 우리말은 욕도 먹는다고 표현하는데, 그야말로 욕먹을 수 있는 것도 인간만이 가진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욕을 제대로 먹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 장로 교단의 가장 큰 대형교회인 명성교회에서 일어난 담임목사의 부자세습 이야기입니다. 지난 주 명성교회가 소속되어 있는 장로교회 통합측 총회 재판국은 교단의 합의사항을 무시하고 명성교회의 목사 세습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에 많은 교인들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 조차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교회를 욕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가뜩이나 교회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더 상황을 악화시킨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를 대하는 당사자들이나 세습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발언은 굉장히 욕에 굶주린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당사자인 아버지 목사는 “이 모든 것이 다 주의 은혜”라고 말을 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싸구려 신앙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목사를 닮아간다고 그를 따르던 교인 중 하나는 “하나님도 아들인 예수에게 세습했다”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발언까지 하여 원성을 듣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속된 말로 “욕을 바가지로 퍼먹는” 대형 사고를 친 것입니다.

철학자인 니체가 “신은 죽었다”는 말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의 바로 다음에는 “신을 죽였다”는 표현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잊고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신이 스스로 죽어서 신앙이 불필요하거나 신이 없으니 믿는 것은 다 거짓이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참 신을 죽였다고 한탄한 말이었던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한국 개신교회에 이와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오늘 교회와 성도들이 참 그리스도를 죽게 한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말입니다.저는 이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보고자 합니다: “왜 먹지 않아도 될 욕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먹게 된 것일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먹어야 할 것은 바로 하늘에서 내려 준 생명의 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의 빵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지칭하는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스스로를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 생명의 빵이라는 말을 들으며 오래 전 출애굽의 역사를 떠올리던 이들은 혼란을 겪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매일의 양식이 어찌 사람일 수 있는가’라고 말이지요. 게다가 일부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 모든 것이 다 민족의 영웅인 모세가 행한 일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의 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께서 본문 앞의 35절을 통해 너희가 먹을 생명의 빵은 결코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한 것이라며 광야의 만나와 분명하게 구분을 지어 주셨습니다. 49절에서는 만나를 먹은 사람들은 이미 다 죽었다는 말씀을 통해, 생명의 빵이 가진 영생의 능력과 구별을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미 썩어 없어질 양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삶을 살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고 보면 6장의 앞부분에 기록된 오병이어의 기적도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차 가르쳐 줍니다.시간이 되면 또 배가 고플 것이고, 또 언젠가는 육신은 그 수명을 다할 수밖에 없으니 진짜 기적은 허기를 채우는 일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씀이지요. 그것이 바로 생명의 빵이 가진 진정한 의미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그 생명의 빵을 구별하여 먹을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 빵을 구별하여 먹고 그래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라는 것이지요.그것이 바로 안 먹어도 될 욕을 먹는 교회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아닐까요? 한마디로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종합하면 그에 대한 다음과 같이 몇가지 해답을 얻게 됩니다.

첫째는, 빵의 출처에 관한 것입니다. 생명의 빵은 인위로 만들어진 가공 제품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 준 빵입니다. Made in Heaven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제조방식이나 먹는 법 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이 메뉴얼(Manual)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은 소위 말해 “짝퉁”이라는 이야기입니다.유효기간도 한정이 없습니다. 영원합니다. 변함없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맛있는 빵이 주는 감동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지만, 생명의 빵이 주는 은혜는 결코 변함이 없는 법이니 이를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빵의 유통 방식과 판매 목적에 관한 것입니다.생명의 빵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이 땅으로 직접 보내신 현지 직통 제품입니다. 그것도 아무 대가를 치룰 필요가 없는 공짜입니다. 한마디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은혜라고 부르는 이유이지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위해 보내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선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이에게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뿐입니다.그렇다고 값없이 주셨다 해서 아무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여 결국 생명의 빵을 짓밟는 악행을 저지르고 만 것이지요. 신을 죽이는 끔찍한 범죄를 행한 겁니다. 오늘날 교회가 욕을 먹는 이유도 바로 먹어야 할 생명의 빵을 먹지 않고 경시한 결과가 아닐까요? 참된 선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여, 그것이 하나님이 직접 주신 은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를 욕 먹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는, 빵을 먹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35절을 보면 생명의 빵을 먹으면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빵을 먹는 방법을 두가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내게로 오는 것과 나를 믿는 것의 두가지 방식입니다. 생명의 빵을 먹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 예수께로 향해 가는 것입니다.한 걸음 더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를 믿는 것입니다.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셨고, 그를 통해 구원을 얻게 하신다는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빵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세상의 빵은 먹어버리면 사라져 버리지만, 생명의 빵을 먹으면 오히려 더 풍성해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세상의 빵은 누가 먹어버리면 없어져 버리니 함께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것으로 인해 서로 먹기 위해 분쟁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빵을 먹으면 먹는 이는 사라지고 그리스도 만이 살아서 그로 인해 나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자기의 입장과 유익을 구할 필요가 없으니, 함께 서로 살아갈 수 있는 화해와 평화의 길이 열립니다.사실 이것이 오병이어 기적의 핵심이기도 했지요. 함께 나눔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말 기적은 그들이 빵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은 것 보다,사실은 생명의 빵, 곧 그리스도 예수를 내 안에 모실 수 있었다는 사실 아닐까요?생각해 보십시오. 적은 물량으로 여러 사람 먹이는 것이 기적인지 아니면,모두가 정말 한 마음처럼 주님을 진심으로 영접할 수 있는 것이 기적인지 말입니다.

무엇보다 생명의 빵을 먹음으로 살아있다는 생명의 기쁨이 찾아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기쁨입니다. 함께 하시니, 두려움과 좌절감이 아니라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냥 기대어 의지하라고 말씀하시니,힘도 되고 여유도 생겨납니다. 그러니 살맛이 나는 것이지요. 요즘 말대로 잘 먹고 잘 사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조금은 입에 쓰고 때로는 귀찮고 주저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생명의 빵을 먹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진짜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으신 생명의 사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