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혁명

누가복음1:46-55

 

예수님의출생과관련한이야기는복음서가운데서도마태복음과누가복음에만기록되어있습니다. 나머지마가와요한의복음서는주로예수님의공생애에관해서만다루고있을뿐입니다. 아기예수의탄생에관한내용을이야기하고있다는공통점을갖고는있지만, 마태와누가의복음서도그내용에서약간의차이가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아기예수를낳게될것이라는소식이마리아와정혼한요셉에게전달되는데반해서누가복음은마리아가직접천사로부터수태고지를듣는것으로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래도유대교의전통이강조되는마태복음과는달리누가복음은이방인이나여자와어린이, 그리고 소외된사람들에게보다관심을두고있다는사실과연관이있는것으로보입니다. 

 

이와같은누가복음의관점은예수님의출생을세례요한의출생과연결시켜설명하는방식에서도나타납니다. 오늘본문의바로앞부분은요한의출생과관련한이야기를다루고있습니다. 제사장인사가랴의아내엘리사벳이천사가브리엘로부터아이를잉태하게될것이라는이야기를듣게됩니다. 사실엘리사벳은나이가많아서임신이쉽지않은몸이었습니다. 마치이삭을어렵게가진사라나사무엘을늦은나이에출산한한나의상황과마찬가지로말입니다. 그리고얼마지나지않아친척인마리아도임신을하게되지요. 엘리사벳이나이가들어가진것과는달리, 어린소녀였던마리아는아직결혼도하지않은상태에서아이를잉태하게된것입니다. 


이기록만보면엘리사벳이나마리아모두매우특별한상태에서아이를가졌다는공통점이있습니다. 엘리사벳은가임연령이이미훨씬지난상태였고, 마리아는아직결혼도하지않은어린처녀에지나지않았기때문입니다. 둘다일반적인상태에서임신을하게된것이아니라는뜻이지요. 여기서일반적이지않다는것은사람의뜻이나의도에의해이루어진임신이아니라는말입니다.  우리의능력밖에서이루어진신비로운사건이었다는뜻입니다. 그래서보다하나님의섭리를선명하게바라보는기회가된것이지요. 

 

사람들은일반적으로자신들의뜻으로행할수있고, 또가능할수있다고생각하는일에서는하나님의개입을좀처럼받아들이지못하는경향이있습니다. 시험공부를열심히해서좋은성적을얻고, 부지런히일해서돈을모으고하는과정속에서는하나님의섭리를잘발견하지못한다는겁니다. 모든행위의주체가자기이기때문에순전히자신만의결과물로생각한다는것이지요. 물론제뜻대로안되어, 일이잘안풀릴때는하나님이나남을원망하기도하지만말입니다. 그런의미에서출애굽의과정을되돌아보면, 비록황량하고매우고단한여정이긴했어도그과정에서하나님의직접적인개입을날마다체험할수있었다는사실을깨닫게됩니다. 정말아무것도갖지못한상황속에서오히려하나님께더전적으로의지할수있었다는사실을말이지요. 

 

엘리사벳이나마리아처럼의지대로할수도없고불가능해보이는상황속에서하나님의놀라운역사를더선명하게바라볼수있었던것도마찬가지의이유라고할수있습니다. 46절에서마리아의노래가내영혼이주를찬양한다고고백하는것으로부터시작하는이유도이러한배경에서찾을수있습니다. 내입이노래하는것도아니고내머리로생각해서부르는찬양이아니라는뜻입니다. 온마음과뜻과정성을다담아혼으로부르는감사의찬양이라는뜻이지요. 이게상상이되십니까? 얼마나기쁘고감사하기에이런찬양을할수있었던것일까요? 그것도이제겨우15세가량에불과한소녀에게서어떻게이런가슴깊이묻어나오는찬양이가능할수있었던것일까요? 

 

마리아가찬양한오늘본문의구절은전통적으로교회예배에서가장즐겨부르던찬송으로“마그니피카트(Magnificat)”라고부르기도합니다. 내용적으로볼때는사무엘상2장1-10절에있는한나의찬양과매우유사합니다. 그래서어떤이들은누가의기록이구약의영향을많이받은결과라고주장하기도합니다. 물론하나님이주신생명에대한어머니의기쁨과감사의찬양이라는점에서먼저공통점을찾을수있습니다. 그러나무엇보다중요한사실은이찬양안에서당시유대사회에대한놀라운통찰력이담겨있다는점입니다. 위대한감리교선교사였던스탠리존스(Stanley Jones)는이를이렇게표현하기도했습니다. “이세상에서가장혁명적인문서”라고말입니다. 다시말해오늘본문의마리아의찬가, 곧마그니피카트는하나님에의한혁명과같은내용을담고있다는뜻입니다. 

 

신학자인윌리엄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이를하나님에의한세가지혁명으로주석한바있습니다. 마리아의찬가를통해기독교의핵심을발견할수있다는것이지요. 첫째는마리아의찬가가개인의내면적혁명을노래하고있다는사실입니다. 51절에보면“하나님은마음이교만한자들을흩으신다”는구절이있습니다. 하나님이아닌자기스스로를  우상으로섬기고살아가는이들의삶을송두리째변화시킨다는말씀입니다. 그런의미에서기독교신앙의핵심은교만을없애는것이라해도틀리지않습니다. 그리스도를따른삶은철저히자기중심적삶을포기하는길이라는겁니다. 판단과행위의주체가‘나’에서내안에계신‘하나님’으로바뀌는것입니다. 그래서주님이나를통해역사하실수있도록자신을완전히비우는신앙의훈련을행하는것이바로그리스도를따르는신자된모습이라는것이지요.

 

둘째는마리아의찬가가세상권력에대한혁명을노래하고있다는사실입니다. 52절에서마리아는“제왕들을권좌에서끌어내리시고비천한자를높이신다”고찬양합니다. 그리스도의가르침속에서도세상의첫째가오히려하나님나라의꼴찌가될수있다는역설을말씀해주시기도한바있습니다. 세상의지위와권력이하나님앞에서완전히무력화된다는이야기입니다. 마리아의몸을통해오신그리스도께서이땅에오신까닭은모든영혼을구하기위해서였습니다. 힘있는자와지위가높은자를위해서오신것이아니라모든생명을구원하시기위해오신것입니다. 

 

이를현실에적용해보아도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세상의어떠한국가권력도국민의존엄을침범할수없다는사실을알수있습니다. 어떤한사람의국민도하찮고쓸모없는존재로여겨서는안된다는것이지요. 그리스도는특정한이들만이아니라모두를위해오신분이기때문입니다. 따라서이땅에이루어가야할하나님의나라도바로사람이사람다운정당한대우를받으며살수있는곳이어야한다는것이지요. 흔히말하는법도결국생명을지키기위한최소한의수단이지, 결코생명을넘어서는절대권력이되어서는안되는이유가여기에있습니다.

 

셋째는마리아의찬가가사회정의에관한혁명을노래하고있다는사실입니다. 53절에서마리아는“주린사람들을좋은것으로배부르게하시고, 부한사람들을빈손으로떠나보내셨다”고찬양합니다. 그리스도를통해이루어질하나님의나라는함께더불어가는세상입니다. 그것은사회혁명을통해주인이단순히바뀌어또누군가가남보다더위에군림하거나더많은것을취하는소유의개념이아니라는것입니다. 가지려는것이아니라나누는것이삶의더중요한가치가되는것이지요. 삶의목적이완전히바뀐다는점에서혁명적이라는것입니다. 행복의기준이무엇이되었든더이상더많이갖는것에있지않고, 그사람곧생명자체가소중한가치를인정받을수있는것으로변화되기때문입니다.

 

마리아가영혼으로부른이찬양이단순히자녀를주신것에대한감사의표현이아닌까닭이바로이것입니다. 가진것없는비천한소녀를통해장차이루실하나님의역사를깨달았기때문입니다. 그녀의몸을통해이땅에오실그리스도예수께서행하실일들이마리아의영혼을통해찬양되었을뿐인것이지요. 그런의미에서오늘우리가맞이하는성탄주일은우리내면과이세상에대한혁명적사건을이루기위해오실그리스도를영혼으로찬양하며예비하는시간이되어야할줄믿습니다. 이땅의교회가다함께그리스도를통해행하실하나님의섭리를찬미하며, 우리도그혁명의역사에동참할수있기를소망합니다. 그래서진정과기쁨으로구주가오신이날을맞이하는저와여러분모두가될수있기를주님의이름으로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