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Castle

느헤미야 8:1-3, 누가복음 4:16-21

 

최근 한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중에 “SKY캐슬”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한 번도 드라마를 본 일이 없어서 아주 자세한 극의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여러 기사를 통해 대략적인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의 영어 이니셜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자녀를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일반인들은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상류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스카이 캐슬은 세상에서의 성공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셈입니다. 남들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잣대를 가진 그들만의 성을 쌓아 올리는 것이지요. 물론 성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는 한번쯤 올라가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이기적 탐욕과 비인간적 가치관은 욕망의 말로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바벨탑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시지푸스(Sisyphus)의 신화’는 결국 다시 굴러 내려오게 될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계속해서 밀어 올리는 것이야말로 무서운 형벌이라고 말합니다. 더 높이 오르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이 가진 허무함이 사실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형벌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지요. 다만 그것이 벌인지도 모르고 사는 것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아무리 높아지려고 쌓으려 한들, 그것은 언젠가 무너지고 말 허무한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그 근원을 죄에서 찾습니다. 여기서 죄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일체의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인간의 욕망이 곧 죄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에게 사망, 곧 허무한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리는 죽음이라고 경고합니다.

 

결국 치열한 입시경쟁과 출세의 욕망으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을 가져온 드라마의 이야기처럼,여전히 피라미드 같은 경쟁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 현실도 수많은 죽음을 양산하고 있지요. 많은 이들은 마지 못해 살면서, 마치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영적인 죽음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회는 이러한 현실을 오히려 더욱 부추기는 듯한 모습입니다. 교육의 목적이 언제부터인가 경쟁에서의 승리가 된 지 오래고, 잘 사는 것의 기준도 비교우위에 있는가의 여부가 되어 버린 현실입니다.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가 있는 게임같은 현실에서 누군가는 절망과 암울한 결과를 언제나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이 참담할 뿐입니다. 그것이 정녕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실 때 뜻하신 모습일까요?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진정 만들어 가길 원하시는 “하늘의 성”, 이상적인 ‘스카이 캐슬’은 어떤 모습인지,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인 느헤미야서부터 살펴보겠습니다.사실 느헤미야의전체 핵심내용은예루살렘성곽의재건과신앙부흥이라고할수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말하는예루살렘성이 뜻하는 바에 주목해야 합니다.그것은 특정한 민족의 도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장차하나님나라를나타내주는 하나의 징표로써,하나님의백성들이거하는도성을의미하는것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성곽의재건은단순히건축물을고치는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궁극적으로신앙의기초를세우는것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것이지요.당시총독이었던느헤미야도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그래서 바벨론의 포로귀환후성전재건을위해 치밀하게계획을세우고, 온갖 이민족의 방해 공작과 술책,그리고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과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겁니다. 

 

느헤미야 뿐만 아니라 학자 에스라를 비롯한 많은 유대 백성들도 재건과보수를 통해 세우고자 한 성이결국은하나님에의해 이루어질SKY Castle, 곧 하나님의 나라라는믿음을 가지고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를 잘 보여주는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요.예루살렘 성벽보수가완료된이후에,유대 백성에게는한가지커다란숙제가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은 성벽의 재건 완공으로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외부의건축물이완성되었지만,사람들의영적인내면문제까지완벽하게해결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에스라에게 하나님의말씀을선포해 줄 것을 부탁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백성들의 갈급함은자발적으로율법의말씀을듣고자모두가 한마음으로모여서, 말씀한구절한구절에감동하며하나님앞에엎드려영광을올려드리는 데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보이는 것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성이 완전해 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진짜 스카이 캐슬을 완성하는 것은 외면적인 성벽의 보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면의 영적인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집이라 말하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외적인 건축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교회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중심이 될 때 비로소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습도 마찬가지이지요.교회를 다니는 모습이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중심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될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묘사한 것처럼 우리가 사는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변화되어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도전이 될 때가 많습니다. 믿음만 가지고 살기에는 만만치 않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물론 어떤 이들은 예배를 할 때 만큼은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잠시 현실의 근심을 잊는다 해도그건 어디까지나 임시적 현상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명확하게 응답을 받기도 쉽지 않지요.현실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이들에게 분명한 응답을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장 큰 기도의 열매는 자기가 구하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다 받았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신앙의 문제’로 돌릴 수 있는 걸까요?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에피소드를 신약의 본문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안식일에 회당에 가신 예수님이 이사야61장에 선포된 내용을 읽으시면서 오늘 이것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신 대목입니다.  당시 예수님이 읽은 이사야의 말씀은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포로된 사람에게 해방을, 눈먼자에게 눈뜸을, 억눌린 자들에게 자유를"주신다는 예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진정한 SKY 캐슬은 높고 낮음이나 귀하고 천함, 또는 소유의 많고 적음의 구별이 없는 그런 세상이라는 것이지요.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적어도 인간의 욕망으로 쌓아가는 모래성 같은 세상과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아마도 성벽을 재건하고 모인 백성들이 듣고 싶었던 말씀도 이와 같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경쟁에서 승리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들 조차 이 말씀에 대해서 이의를 달지는 못할 겁니다. 사실 학교 윤리나 도덕 교과서에 쓰여진 대로만 산다면 세상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옳은 일을 하고 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렇게 사는 것이 언제나 다른 일었다는 점이 문제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것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느냐는 질문이지요.사랑, 나눔, 정의, 평화. 이런 말은 하지만, 정작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될 것 같으면 가차없이 상대방을 비난하고, 내 이익을 위해서는 상식과 기준조차 무시해 버리고,내게 불편한 일에는 아무리 불공평하고 불의한 일이라도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 우리의 실상이 아니던가요? 한마디로 신앙적인 부조리가 만연한 모래성 안에 우리가 갇혀 사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우리의 주목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이사야의 선포는 어쩌면 장차 이루어질 소망에 가까운 일들이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을 듣는 순간 회당에 있던 사람들 중에는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감격하는 이들도 있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황당하게 생각한 이들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마치 지금 삶의 숙제와 무거운 짐을 교회로 가지고 와서 진심으로 기도하는데,이루어졌다는 응답을 받으면 여러분도 똑같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일단 기분이 좋기는 한데, 대체 뭐가 이루어진 것인가 되묻지 않을까요?

 

제가 유학을 오기로 결심했을 때,제 스승 중의 한 분이 이런 말을 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진짜 공부는 유학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그 과정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입니다. 학과 공부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진정한 인생의 교훈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의 정의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믿으면 그 댓가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말하자면 믿음도 열매가 따로 있을 것이란 기대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속상해 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믿음은 그 자체가 열매입니다. 대가를 바라며 행하는 믿음은 순전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조건을 달고 하는데 어떻게 그걸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믿는 것 자체로 열매를 얻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예, 사랑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그 자체로 열매이다. 그래서 첫사랑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짝사랑하던 사람으로부터 확답을 얻는다고 해서 열매가 이루어 졌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결혼이 열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뒤에 엄청난 재앙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내고 병자를 고친 것을 복음의 완성이라고 생각하려면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예수 믿고 변했다고 성공 사례를 간증하던 이가 어느 날 나락에 빠진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옥에 갇힌 몸이 해방이 되었다 해서 정말 자유로운 삶을 얻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나요? 세상이 창살 없는 감옥 같다고 여기는 사람은 어디서든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좋은 성적과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받거나,남부럽지 않은 직장이나 직책을 얻고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소망을 가지고 나온 청년들 있나요?자녀들이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 가고 훌륭한 직업을 갖기를 바라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나온 부모님들 있나요?돈을 더 벌어서 좋은 차에 근사한 집에 사는 것이 인생의 재미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지 않나요? 

 

그런데 한가지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지금 구하는 기도의 제목이 응답을 받는다고 해서 다 이루어진 것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진짜 SKY Castle,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뿌려야 할 씨앗은 따로 있다는 것이지요. 의미없는 씨앗은 결코 의미있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법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씨앗은 허무한 모래성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성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그렇다고 현실의 문제는 다 잊고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다 더하시리라는 말씀이 그 증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예수께서 하신 선포의 말씀은 장차 앞으로 얻게 될 열매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품어야 할 씨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무언가에 붙들리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소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그리고 자기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씨를 뿌리라고 가르쳐 주신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허무한 모래성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집을 위해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믿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무엇보다 그 믿음 안에서 씨앗을 뿌릴 때 그것으로도 이미 열매는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진짜 SKY 캐슬에 초대된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