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 going

누가복음13:31-35

 

지금으로보면청년에해당하는나이에예수님은세상과맞서하나님나라의복음을선포하셨습니다. 복음서의여러군데에서도언급되고있는것처럼머리둘곳이없을만큼바쁘게사역을하셔야했지만, 그로인해겪어야할반발과위협은오히려커져만갔습니다(마8:20). 인간적으로생각해보면, 그고충은이루표현할수없을만큼힘들었을겁니다. 겟세마네동산에올라기도하실때에, 제자들에게“내마음이근심에쌓여죽을지경이다”고고백하신것만봐도알수있습니다(막14:34). 물론모든것을아버지의뜻에맡기셨지만, 비켜갈수없는운명을받아들이기위해서인간적고뇌의과정을겪으셨던것이지요.

 

가끔씩자식을키우면서비슷한느낌을가질때가있습니다. 부모의입장에서는어떻게든자식이잘되기를바라는마음으로무엇이든아낌없이주고싶지요. 그래서사랑을듬뿍담아주기도하지만, 때로는강하게질책하며자녀가바로서기를가르쳐주기도합니다. 그런데그때마다자녀로부터받는반발이생기는경우가있습니다. 오히려관계가어색해지기도하고점점멀어지는것같은느낌이들기도하지요. 사실어떤인간관계이든누군가를사랑하려면이런고충은각오해야합니다. 오죽하면바울은사랑의모습을오래참음과인내로표현했을까요? 그만큼힘들다는증거입니다.    

 

그래서사랑은단순한감정의표출이아니라해야만하는당위성을의지로실천해내는것이라고말하는겁니다. 한마디로, 해야하니까해내는것입니다. 왜그렇게해야만하냐고요? 사람이니까, 사람답게사는것이니까그렇습니다. 사람답게사는것이무엇이냐고요? 그것은우리를창조하신하나님의말씀대로사는것이지요. 살아있는생명을아끼며사랑하며살라는것이하나님의뜻이었습니다. 이를위해예수님을참사람의모범으로보내주신것이고요. 그래서예수님도십자가의고뇌를견뎌가며, 끝까지우리를사랑하신것아닙니까?

 

가끔목회를하면서, 처음제가품었던생각을다시떠올릴때가있습니다. 오래전저희어머니가식당을운영하면서음식에대한자신의신념을저에게말씀해주신적이있었습니다. 왜냐하면재료로들어가는비용이너무많이드는데다그정성에비해가격이턱없이낮아서, 제가그이유를물었기때문이었습니다. 장사를통해이윤을잘남기지못하시는것같아노파심이들었던것이지요. 그런데그때제게어머니가이렇게말씀해주시는것이었습니다. 손님들에게파는음식을내놓을때는, 우리가족을먹이기위해만드는심정으로준비하신다고말이지요. 가족들의건강과기쁨을생각하며, 식당에서파는음식도똑같이만들어내놓으신다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소위대박이나서손님이늘어나장사가잘되었을까요?

 

안타깝게도대중적인입맛에길들여진손님들에게는그다지큰호응을얻지못했습니다. 이미조미료를통해자극적인음식을만들어판매하는식당이일반화된상황속에서, 혼자만의신념만가지고는생각처럼참쉽지않은일인지도모릅니다. 다행히도저희어머니는이에크게개의치않고본인의생각대로음식을지금도같은방식으로만들어식당을운영하고계십니다. 일부소수의단골손님들과말그대로가족처럼식탁을함께나누고있는셈이지요. 여하튼목적은이룬것아닐까요?

 

저는목회도같은맥락에서생각해보곤합니다. 성도님들을대할때, 내피붙이인가족을대하듯사랑을나누는것이좋은목회가아닐까하고말입니다. 말씀을가르치고양육을하는것도마치자녀를대하듯, 그리고내자녀가잘변화되어성장하기를바라는마음으로행해야한다는생각이듭니다. 저는우리아이들이참좋은인생의멘토를만나서삶의극적인변화를경험했으면하는바램이있습니다. 부모가줄수없는인생의의미나목적, 그리고꿈에대한이야기를대신해줄수있는그런좋은멘토말이지요. 아마도모든부모들이갖는똑같은심정이아닐까싶습니다. 마찬가지의입장에서저의목회를되돌아보곤합니다. 그러면제가얼마나부끄러운지모릅니다. 한없이부족한것만이아니라때로는책임을회피하는것이라는죄책감이들기도합니다.

 

그렇다고강하게질책하며가르침을권면하지못한모습을지적한것은아닙니다. 저는제아이들을양육하면서도자율의식을강조해왔습니다. 지난주설교를통해말씀드린것처럼, 스스로반성하는능력이없이외부로부터주입되는생각이나행동은언제나부자연스러운법입니다. 그래서저는여유를가지고기다리는방법을택했습니다. 그런데그게정말더어렵다는것을자주느낄때가많았습니다. 오래참고기다리는것처럼사람을힘들게만드는것도없기때문입니다. 내심자율적이고보다열린신앙을주장하는것이더솔직하고, 내가정말사랑하는가족과같은성도들에게할수있는최선의목회방향이라고스스로생각할때가많았습니다. 적어도진심이었으니까요. 그런데진심이다통할것같은데그게아니더군요. 음식이좋으면손님들로붐빌것같은데, 세상이다자기생각만같은게아닙니다. 현실속교회도그점에서는다를바없는가봅니다.

 

진심이라는게, 서로통할때까지정말참길고도지루한과정을거쳐야한다는사실을깨닫게됩니다. 때로는속상하기도하고, 한계를느끼게만들기도하지요. 그래도내가족이니까, 그리고내자식처럼소중한이들이니까맘대로안될걸알면서도계속하게만드는겁니다. 마종기시인의<우화의강>이라는시에보면이런대목이나옵니다. “사람이사람을만나서로좋아하면 두사람사이에물길이튼다. 한쪽이슬퍼지면친구도가슴이메이고  기뻐서출렁거리면그물살은밝게빛나서 친구의웃음소리가강물의끝에서도들린다. 처음열린물길은짧고어색해서 서로물을보내고자주섞여야겠지만한세상유장한정성의물길이흔할수야없겠지. 넘치지도마르지도않는수려한강물이흔할수야없겠지.” 정말진심이통하고, 서로가족처럼, 때론친구처럼지내기위해세월의인내가필요하다는것이지요.

 

우리개인의삶도이럴진대, 모든인류의죄를위해오셔서짧은시간동안자신의모든것을내어주셔야했던예수님의마음은얼마나힘들었을지말하지않아도짐작이됩니다. 무엇보다사랑의표현을받아들이려하지않았던당시세대의풍조와사람들에게는그저도전과반발만낳을뿐이었으니더힘이드셨을겁니다. 오늘본문을보면, 차라리이곳을떠나라고하는바리새파사람들의우려를볼수있습니다. 물론분봉왕인헤로데의위협때문이기도했지만, 사실은자신들의입장도크게다르지않았던것으로보입니다. 예수님이전한복음의소식은당시지배세력이었던유대의종교지도자들이나정치지배층에게는심각한도전으로받아들여졌기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단순한종교문서를넘어서그자체로하나님의말씀의권위를가지고있던율법을훼손하는듯한언행을일삼는예수님이눈에가시같은존재였을겁니다. 가는곳마다놀라운기적을행하면서예수님의주변에수많은사람들이몰려드는것을보면서정치권도위기감을느꼈을겁니다. 게다가왕중의왕이라불리니, 지배층의입장에서는도저히그대로내버려두기어려운성가신존재로보았을가능성이크지요. 그래서떠나라고조언같은위협을한것이아닌가라는의구심이듭니다.

 

하지만정작예수님을힘들게만든것은지배세력의끊임없는죽음의위협이아니었을지도모릅니다. 오히려하나님의나라, 그기쁜복음의소식을전하고가르쳤음에도불구하고이를깨닫지못하고오히려반발하며대드는우매한사람들과그렇게만든현실상황이아니었을까요? 아무리사랑을베풀어도마음을열지못하는사람들과그들의마음을그토록굳게만든세상의현실이마치변화되지않는벽처럼여겨지지않았을까요? 


그러나예수님의대답은매우단호했습니다. 오늘도내일도그다음날도내길을가겠다는굳은다짐이었습니다. 끝까지이길을가겠다는의지를표명하신것이지요. 이부분을영어번역본에서는“Keep going”이라는표현을사용했는데, 지속적으로주어진소명을이루어나가시겠다는뜻이보다강하게전달이되는것을알수있습니다. 지속적으로행하여나가실길에대해서예수님은귀신을고치고병을치유하는일이라고말씀하셨습니다. 이는예수님이전하시는복음을가로막는시대의가치체계와인간의삶을병들게만드는모든악그리고이를통해고통받는사람들을다대상으로하신말씀이라고볼수있습니다. 복음의성취를위해이러한모든방해세력에끝까지맞서싸우시겠다는결의를다지신것이지요. 

 

러시아의대문호인톨스토이는기독교적세계관을바탕으로많은작품을쓴것으로잘알려져있습니다. 특히그가주목했던생각가운데하나가바로“Keep going”하는삶의끊임없는변화와성장에대한것입니다. 성장한다는것은멈추지아니하고지속적으로변화되는것을의미하는데, 기독교신앙이바로이를강조하고있다는것이지요. 바울의고백처럼날마다자신이죽는경험은결국새롭게되기위한끊임없는변화의과정과다르지않다는뜻입니다. 그래서오늘도내일도, 또그다음날도우리는계속“Keep going”해나갈수있는것이지요. 톨스토이가“죽음을기억하라”고강조한까닭도이와연관이있습니다.   


그는작품을통해죽음을기억하는만큼오늘을소중하게여길수있는방법도없다고역설하였습니다. 죽음을통해현재의매순간이삶의소중한선물로다가올수있기때문이라는것이지요. 그때비로소삶의변화를받아들일수있으며, 주어진시간을풍요롭게채워나갈수있다는겁니다. 그래서그는영원하다는말도단지시간의길이를뜻하는것이아니라얼마나시간이풍족하게채워지는가의문제로바꾸어생각했던것입니다. 

 

예수께서전하고자한복음의메시지도다르지않다고생각합니다. 오늘도내일도그리고또그다음날도끊임없이그길을계속해서나아가겠다고하신말씀은결국주어진현재의매시간을하나님의뜻을따라풍요롭게채워간다는것을의미하는말씀이라는것이지요.  그러니쉽게포기하거나주저앉지마시기바랍니다. 우리의인생은Keep going 해야합니다. 매순간을주님이주신복음의능력안에서채워나가시기바랍니다. 오늘도내일도그리고또그다음날도그길을쉬지말고가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