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누가복음23:33-43

 

오늘본문에는십자가에달린예수님을향해조롱과비판을행한세부류의사람들이등장합니다. 첫째는유대교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정말하나님이택하신자가  틀림없다면, 자신이나구하라며비아냥거렸습니다. 둘째는로마의병정들입니다. 그들은예수님에게신포도주를주면서“만일유대인의왕이틀림없다면자신을구해보라”고조롱하였습니다. 셋째는예수님과함께십자가형을당한두죄수중의한사람입니다. 십자가형이주로정치범들에게행해지던당시의식민지체제상황을고려해보면, 아마도로마제국에저항하던독립운동가가아닌가유추해볼수있습니다. 그는예수님에게“진정그리스도라면, 너와우리를구원하라”고비난하였습니다. 세사람모두예수님을향한태도가부정적이었다는점에서는다르지않습니다. 그들은한결같이예수님을그리스도로인정하지않았습니다. 그래서정말그리스도가맞는지확증해보이라며조롱했던것이지요. 이는예수님이광야에서사단에게받은세가지시험과거의다를바없었습니다. 


그런데이세부류의사람들은당시초대기독교교회가맞서싸워야할특정한세력들을상징적으로보여줍니다. 복음서전반에걸쳐묘사되고있는것처럼유대교는예수님을그리스도로받아들이지않았습니다. 오히려하나님의가르침에어긋나는문제거리정도로밖에여기지않았습니다. 그래서예수를따르던당시많은이들에게정말그가그리스도가맞다면, 과연이런십자가사건이가능할수있겠는가반문했던것이지요. 반면병정으로대표되는로마제국은세속적힘을과시하며예수에게그에상응하는능력을요구했습니다. 정말왕과같은권력을가지고있다면힘으로증명해보라는것이지요. 사실많은식민지유대백성들도이를기대하고있었던것으로보입니다. 옛다윗왕시대의부흥을다시되찾을수있을것이라는기대를가지고있었던겁니다. 


죄수로묘사된세번째사람의입장이이를잘보여주고있지요. 유대의민족적시각에서보면그는어쩌면영웅으로추앙받을만한애국자인지도모릅니다. 그에게구원은로마의식민지배로부터민족의해방을이루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죽음을무릅쓰고로마정권에저항하다가결국십자가사형을받는처지가되었는지도모릅니다. 그의입장에서생각해보면, 예수님의행적은도대체이해하기힘든것이었습니다.  예수님만큼많은민중의지지를받고영향력을가지고있는사람이그힘을제대로써보지도않고십자가에달려있다는사실이도저히납득이가지않았던것이지요. 너무나비현실적이고허무한주장만늘어놓고, 정작무고하게죽어가는사람들을그저바라보고만있는그가원망스러웠을겁니다. 


입장의차이에따라내용은약간다르지만, 결국이들의주장속에서찾을수있는한가지공통점이있습니다. 그것은그리스도의능력이현실적으로나타나야한다는사실입니다. 그것이힘이든아니면기적이든당장눈으로볼수있는형태로드러나야한다는것이지요. 표적을구하던유대인들이나, 힘으로지배관계에놓여있던로마제국과식민지유대민족이납득할수있으려면그만한능력을보여주어야만예수를그리스도로인정할수있다는뜻입니다.  유대인의왕이라고쓰인십자가의죄수명패는이들의생각을단적으로보여주는대목이아닐수없습니다. 그호칭은예수가 유대인의왕을사칭하고민중을호도한죄수라는뜻이니, 당시예수를조롱하며비판하던이들의판단이어느정도인지를아주명확하게보여주는것이지요. 


사도바울은당시의상황을이렇게묘사하기도했습니다. 십자가사건은유대인들에게거리끼는것이고, 이방인들에게는미련한것이라고말입니다(고전1:23). 하지만믿는사람에게그것은하나님의능력이라고주장했습니다. 비록세상에보여지는모습은한없이초라하고무능력해보일지모르지만, 믿음의눈에그것은온인류를구원의길로인도하는놀라운능력의사건이라고본것이지요. 


그런의미에서기독교신앙의핵심은언제나역설적이었습니다. 공생애기간동안예수님이선포한복음의핵심도세상의논리와는다른‘모순투성이’었던것처럼말입니다. 십자가의고난과죽음을통한생명의완성은이를극적으로보여준사건인것이지요. 그래서구원을이야기하면서도예수를믿으라고하지, 그능력을보고아는것이라하지않았습니다. 예수님이행하신기적을보아야믿을수있다는태도는진정한믿음이라고보기어렵다는것이지요. 율법을지키거나선지자의행실을본받는것도믿음의본질이라고생각하지않았습니다. 오직예수를믿는그믿음만이기독교신앙의정수라고가르쳤습니다. 

 

이를잘보여주는예시로본문의마지막에한인물이등장합니다. 예수님과함께십자가에달린두죄수가운데또다른사람입니다. 그는예수를비난하던다른죄수를나무라며예수님께주님의나라에들어가실때자신을기억해달라고간청합니다. 예수님이구원의길이라는믿음의고백을행한것이지요. 마치믿음이란이런것이라고보여주는것처럼말입니다.


지난한주간뇌출혈로의식을잃고중환자실에누워계신장모님을뵈러한국에다녀왔습니다. 매일장모님을보기위해대학병원중환자실을오가며, 그곳에서고통으로신음하는이들과사경을헤매는여러환자들을볼수있었습니다. 주말에도응급환자들은끊임없이들어왔고, 그중에어떤이들은회복되지못하고싸늘한주검으로병실을떠나기도했습니다. 우리가의식하지못하는순간에도고통받고아파하는이들이그렇게많다는사실에새삼놀라지않을수없었습니다. 

 

중환자실의면회시간이저녁1시간으로정해져있었기때문에, 그시간이되면환자를보기위해가족들이초조한마음으로중환자실이열리기를기다리며문앞에대기하곤했습니다. 모두가주어진시간이되면일제히뛰어들어가, 지난하루의시간동안환자에게어떤호전이있었는지를먼저살펴보게됩니다. 특히저의장모님처럼전혀의식을찾지못한응급중환자의가족들은초조하면서도간절한마음으로환자를찾습니다. 저와가족들역시매일간절한마음으로찾아가말씀과기도로하루의만남을시작하곤했습니다. 감사하게도여러성도님들과주변지인들의기도덕분에위독한상태는잘넘어선상황입니다. 그런데아직까지도의식을회복하지못하셔서, 저희는하루빨리눈을뜨실수있도록하나님께서역사하시기를매일간절히기도했습니다. 

 

물론기대한것만큼눈에띠는변화가있었던것은아닙니다. 기적과같은일이눈앞에벌어지기를바라는마음이야간절하지만, 아직하나님의뜻은아닌가봅니다. 앞으로더길고도험난한과정이있을지도모릅니다. 어떠한경우에는우리를시험에들게할만큼힘든상황이벌어질수도있습니다. 염려와걱정에서완전히자유로울수없다는사실도알고있습니다. 그런데도저희에게한가지믿음이생겼습니다. 그것은보면서알게된체험이아닙니다. 성경에나오는기적이야기처럼병상을갑자기일어서게하실것이란확신도아닙니다. 그런바램이없는것은아닙니다. 한번만이라도눈을마주치고앉아이야기를나눌수있으면좋겠다는소망이야간절하지요. 그러나저희가갖게된믿음은그런것이아니었습니다. 오히려앞으로일어날어떠한기대가아니라, 지금이순간에도주님이저희와함께하고계시다는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그믿음으로하나님앞에간절히기도합니다. “들으시고응답하여주시기를” 말이지요. 그응답은오늘예수께서하신언약의말씀이면족합니다. “너는오늘나와함께낙원에있을것이다.” 이말씀이큰위로와힘이됩니다. 이렇게라도병상에서어머님을오랜시간보면서저희가족이그동안못다한만남을갖게하신것에감사할수있었기때문입니다. 이번일을통해긍휼한마음으로저희를위해기도로중보하시는많은분들의사랑을새삼깨닫게하셨기때문입니다. 무엇보다지금주어진모든것의소중함을다시돌아보게하신것에감사를드립니다. 

 

오늘고난주일을맞이하여, 우리를위해자신의몸을십자가위에서찢기신그리스도의살과피를함께나누고자합니다. 죽음으로우리를생명의길로인도하신가장극적인역설의사건에함께참여하는것입니다. 성찬의예식에참여함으로써“오늘나와함께낙원에” 있을것이라는주님의언약을온몸과마음으로체험하는여러분모두가될수있기를바랍니다. 감사하는마음으로나오십시오. 그리고언약의말씀을통해힘과위로를얻으십시오. 예수가우리의길이요진리요생명이라는믿음으로구원의놀라운기적을체험하는저와여러분모두가되시기를주님의이름으로간절히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