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침을 넘어서

요한복음20:24-29

 

지난주우리는부활의기쁜소식을함께나누었습니다.그리스도의부활을믿는것은기독교신앙의핵심입니다.다른종교는물론이고세상과그리스도인들을구별시키는가장중요한차이라고할수있습니다.물론부활은십자가의죽음을전제합니다.신앙적으로적용해보아도,자기를부인하지않고거듭날수없는법이지요.역으로부활의소망이없는죽음은의미가없습니다.사람들의비아냥처럼부활이없는십자가의죽음은어리석고,오히려사람들을시험들게만들뿐입니다.그런의미에서그리스도의십자가죽음과부활은우리에게생명의가치를제대로알려준사건이었습니다.우리를향한하나님의지극한사랑을확증한구원의역사라는것이지요.이를믿는자마다죽어도죽지않는영원한생명을얻을수있으니말입니다.

 

그런데문제는많은이들이이러한부활의진정한의미를받아들이기힘들어한다는사실입니다.그것은예수님의제자가운데하나인도마도마찬가지였습니다.사실본문에등장하는도마는십자가처형과부활을직접목격할수없었던모든시대의사람들을대표하는인물이라할수있습니다.처음, 부활하신예수께서죽음의공포에사로잡혀문을걸어잠그고숨어있던제자들을찾아가주셨을때,도마는그자리에없었습니다.말하자면체험을통해증언한사도들과다른입장에있었던이들의상황을보여주는것이지요.실제로요한복음이기록될시기에는이미예수님의행적을직접체험한세대가세상을떠난지한참지난때였습니다.그러니까이전시기와달리눈으로보고믿을수있는신앙이불가능한시점이었던것이지요.이러한상황속에서흔들림없이신앙을유지하고,부활의소망을지키는것은아주중요한문제가아닐수없었을겁니다.오늘본문말씀은이러한배경하에서기록된것이라할수있습니다.

 

물론사도라통칭되는제자들도처음부터부활하신예수님을알아보았던것은아닙니다.예수께서직접보여주신증거를눈으로확인한뒤에야인정할수있었던것이지요.사도들은예수님을직접본제자들이었습니다.그러니까예수님의상처를보고확실히부활을믿을수있었던것이지요.초대교인들에게이부분은매우중요했습니다.왜냐하면대부분의사람들은이증인들을통해부활의확실한증거를삼아믿을수있었기때문입니다.비록많은사람들이본문의가장중요한구절로“나를보지않고도믿는사람은복이있다”고도마에게하신예수님의말씀을언급하지만,분명한사실은기독교신앙의뿌리인부활의증거는사도들이직접보고전한것에서시작했다는점입니다.이들이보고체험한부활의증언은기독교신앙의뿌리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는것이지요.

 

사실예수께서제자들을처음부르실때도, “와서보라”는말씀을하셨습니다(요1:39).직접보고자신이메시야라는사실을깨달으라고하신것이지요.그러니까보고믿는다는것을무작정비난할수도없는노릇입니다.어쩌면거꾸로보고믿는게더어려울수도있을것이란생각을해봅니다.예컨대, 우리가예수님당시시대를살았거나아니면오늘이시점에예수님이찾아오신다고가정해보십시오.오히려눈으로보고나서더믿음이가지않을수도있지않을까요?그래서당시많은유대인들이예수님을업신여기고반대했던것아닐까요?

 

그렇다면도마에게“나를보지않고도믿는사람이행복하다”고말씀하신이유는무엇일까요?바꾸어말하자면,요한은어떠한의도로이런말씀을전하고자한것일까요?이미언급한대로초대교회를비롯해오늘날까지부활에대한그리스도인들의믿음은직접보고체득된것이아닙니다.베드로전서1장8절말씀에도,“여러분은그리스도를본일이없으면서도그분을사랑하고그분을보지못하면서도믿고있으며또말할수없는영광스러운기쁨으로넘쳐있습니다”라는구절이나옵니다.보고서야믿을수있다는생각과거리가먼이야기입니다.사실상그런믿음은불가능한일이기때문입니다.오늘날우리그리스도인들의신앙이다보지않고도믿는믿음아니던가요?우리는그시대의사도처럼예수그리스도의부활의흔적을본적은없지만,그들의증언과신앙고백을통해부활을확신하고있는것아닙니까?

 

여러분은어떠신가요?확실히그리스도의부활을믿고계십니까?예수님의말씀처럼우리도그날에부활의역사를통해영원한생명을얻게될것을믿고계신것이맞나요?

 

지금그렇다고하신분들중에대부분은보고믿는신앙을가지고대답한것이아닙니다.이미하나님의말씀을통해예언되고예수님의선포를통해알려진그사실을믿는것이지요.그리고이를눈으로확인했던사도들의증언을통해확신을갖게된것입니다.그것은오늘날소위말하는과학적증거와는다른의미입니다.검증이불가능하기때문입니다.요즘처럼검증되지않으면,믿지못하는세상에서불신의대상이되는이유이지요.그렇다고이것을말그대로믿을만한것이못된다고말할수없습니다.과학적증거라는것은보통경험을통해보편적인타당성을얻는것을의미합니다.쉽게말해, 1+2=3이라는공식은누가해도똑같이나오니검증이나예측이가능하지요.반복속에서도동일한결과를가질수있다는것이바로그특징입니다.

 

그런데예수님의십자가죽음과부활은일회적인사건이었습니다. 2000년전그리스도를통한대속의은총으로이미우리는죄로부터자유함을얻게된것이지요.그분의핏값으로우리는용서를받았고,그분의부활로우리는생명을얻은것입니다.그러니현실적으로이사건이반복적으로이루어질필요가없는것이지요.과학적증거없이는부활을믿을수없다고하는사람들에게이사건은,그래서우연적인것으로간주됩니다.어쩌다한번일어난우연적인사건일뿐이라는것이지요.그것도확실하지않은.그렇다면예수님은우리에게“어쩌다마주친그대”라는말이됩니다.아무의미없이지나칠수도있는마주침의대상이라는뜻이지요.

 

사실우연적인마주침이라는말안에는믿음과불신을가르는한가지단서가담겨있습니다.예를들어보겠습니다.우리는길을걸으며하루에도수많은사람들과마주칩니다.그중에기억에남는사람들은실상손에꼽을만큼적지요.기억에없다고해서보지않은것은아닐겁니다.그러니까마주침이‘본다’는우리의감각적경험을확신시켜주는것은아니라는뜻이지요.다만우리가마주침속에서기억하는것은본것에의미나가치를부여하기때문입니다.잘생겼다거나아니면우연히마주침의순간어떤생각이떠올라서그것을통해그사람이기억되는것이지요.

 

과학적검증을요구하는사람들의말처럼부활을우연한마주침이라고한다해도,한가지변함없는진실은그것이보지못했다는사실을증거해주거나아무의미가없는일회적사건이라고말할수없는이유가바로여기에있습니다.보았다는증거는사도들의경험을통해증언이되고있고,부활의의미는지난2000년동안수많은그리스도인들의신앙고백을통해반복되고있기때문입니다.

 

저의개인적신앙고백도마찬가지입니다.우연히도저는기독교신자인부모님의아들로태어나신앙을가질수있었습니다.일회적인것으로보자면,그것도우연적인마주침이고검증불가능한사건입니다.하지만부모님의증거를통해,저역시신앙을고백하게되었습니다.그리고이제는더이상이모든것이그저우연한마주침이아니라,저에게는매우의미있는사건이되었습니다.십자가의고난처럼자기를부인하는삶이얼마나고귀한것이며,부활에대한확신이얼마나삶의소망이되는가를깨달았기때문입니다.

저는도마에게말씀하신보지않고도믿는믿음은어쩌면실제눈으로보고안보고를의미하는것이아니라는생각을해봅니다.애초부터그것은중요한문제가아니었으니말이지요.우연한마주침속에서의미를갖도록만드는것은눈으로보는것이아니기때문입니다.따라서예수께서오늘우리에게도전하는이믿음의의미를다시한번곰곰히생각해볼수있기를바랍니다.보지않고도믿는믿음은단순히지나치는우연한마주침을넘어서,그리스도의부활의의미를우리삶속에되새길때가능한것입니다.그리고그말씀가운데살아가는믿음입니다.그것이바로2000년전우연한마주침처럼우리를찾으신그리스도의부활이지금도우리의삶속에여전히실현되고있는이유가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