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갈릴리

요한복음21:1-6

 

오래 전 한 미국 이민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밤늦게 교인들이 모여서 철야기도회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누군가 교회 현관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건장한 소방관들이 서있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어 그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동네 사람들이 교회에 불이 난 줄 알고 신고를 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한국 교인들이 큰 소리로 “주여 주여 주여” 울부짖으며 통성기도를 하는데, 그 소리가 동네 주민들에게는 마치 “Fire!, Fire!, Fire!”하는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웃지못할 해프닝이기는 하지만, 주의 이름을 간절히 부를 때 정말 성령의 불이 붙어 있을 것이라는 상상 말이지요.그래서 주변 사람들조차 느낄 수 있을 만큼의 뜨거운 신앙의 열정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을까요? 뜨겁게 불타오르는 초기 이민자들의 영적인 모습이 연상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간절했던 우리 이민 초기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오늘날 현저히 그 위세가 줄어들고 있는 한인교회의 상황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플로리다에서 열린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주류 교단에 속한 우리 한인 교회들에게 최근 주변의 여러 외적 조건은 녹록치 않은 상황입니다. 동성애 문제로 인해 발생한 교단 내부의 갈등과 분열, 그리고 이민자의 감소로 인한 한인교회의 성장 지체는 당면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총회에 모인 많은 한인교회의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며 앞으로의 대책을 구하는 시간을 가졌 습니다.  

 

그런데 저는 총회의 논의 진행과정 중에서 한 가지 염려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부의 지도자들이 한인교회의 입장을 너무 한 방향으로 몰아가다 보니, 다양한 견해를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우려가 생긴 것입니다. 앞으로의 한인교회 대표 기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어서도,위에서 일부의 지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져 일방적으로 알리는 형식(Top-down)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구성원들이 함께 토론에 참여하여 공동의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물론 교회를 앞에서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눈에 보일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겁니다. 그러나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아무리 선한 의도와 뜻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맡기고 의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이 임하기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먼저 앞서가기 전에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남의 신앙은 단순한 불장난 정도로 치부하면서, 자신의 것만 영적으로 뜨겁다는 착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불을 붙일 생각을 하기 전에, 먼저 자기 안에 성령의 불로 자기 내면을 비추어 성찰해 볼 수 있는 신앙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한인총회에서 말그대로 회의를 통해 논쟁만 벌이고 온 것은 아닙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은혜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여러 동료 목사님들의 말씀을 통해 도전도 받고 감동을 체험할 수 있어서 은혜로운 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 강사로 말씀을 전한 김영봉 목사님의 설교는 현재 여러 위기에 직면한 한인교회와 목회자들에게 매우 도전적인 질문을 던져 주었습니다. 설교를 통해 김 목사님은 오늘날 많은 교회가 ‘크리스텐덤 패러다임(Christendom Paradigm)’에 빠져 있다고 정의를 내렸습니다.크리스텐덤 패러다임이란 우리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 세상을 점령하여 다스리는 데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일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다수자의 위치를 차지하거나,믿는 이들이 힘을 합하여 기독교 국가를 세워 세상을 통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신앙이 그렇습니다. 결국은 교회의 목표가 어떠한 형태이든지 힘을 얻는 것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성장하고 물량적으로 커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미국 교회나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이러한 열망과 믿음으로 교회의 목표를 세워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패러다임의 시각으로 현재의 교회를 보게 되면, 결과적으로 위기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말그대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교회가 수적으로 줄어들고,기껏 성장한다는 교회들도 수평 이동을 통한 성장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찾는 사람보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아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 조차도 말씀을 먹고 영적으로 성숙한 제자를 길러내기 보다 겉으로만 비대해 보이는 영적 비만에 빠져버린 상황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에 갇혀 교회의 위기를 말하고,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한인교회의 리더쉽이라면 한번쯤 진정한 복음의 의미와 교회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설교의 핵심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시어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은 크레스텐덤 패러다임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전한 복음은 이 땅에 힘있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가리워진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고 그렇게 살게 하자는 데 목적을 둔 것이지, 그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자는 것 자체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지요. 

 

때문에 복음의 능력은 권력이나 물질적인 돈의 힘으로 나타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은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 요소일 뿐만 아니라 교회를 아프게 하는 원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힘으로 강요하고 돈으로 유혹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낮아지고 희생하며 헌신하는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강압이 아니라 감동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이지요.이러한 시각으로 오늘 교회의 쇠퇴를 바라보면, 어쩌면 지금이 더 정상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모습이 그 증거입니다. 비록 핍박 받고 철저히 소외되었지만 그들은 복음의 능력을 믿고 교회다운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교회를 키우거나 역량을 기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부활의 증거를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리스도인다운 신앙을 지키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지요.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성도의 신앙을 지켜내는 교회의 모습. 그것이야말로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현실을 과연 위기로 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회로 볼 것인가의 질문을 하게 됩니다.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처럼 성장과 물량주의의 시각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오히려 지금은 복음의 진정성을 찾아가기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완성을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조차, 누가 더 높은 곳에 앉을 수 있는가를 따지던 제자들의 어리석음을 가르쳐 준 바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교회가 추구하는 목표를 양적 성장에만 두고,이것이 어렵게 된 현실을 위기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을 나무라듯이 말이지요.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라고 명하신 곳은 높거나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가라 하신 곳은 바로 갈릴리였지요. 갈릴리는 당시 유대 사회의 계층구조로 본다면,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갈릴리로 제자들을 부르신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디베랴 바닷가가 바로 갈릴리 호수입니다.디베랴는 후에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따서 부른 지명인데, 이는 이미 갈릴리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예수님의 말씀처럼 가장 낮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곳이 아니라,이미 황제의 논리, 곧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물고기를 낚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마4:18-24)고 하신 말씀대로, 교회의 사역들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고 있었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물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명확합니다.크리스텐덤 패러다임에 빠진 신앙으로 교회는 결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당시 많은 제자들은 여전히 강성한 유대의 왕국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그 시작이라고 생각했지요.그 모습을 요한은 마치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부재한 교회, 말하자면 예수님의 말씀이 교회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었던 것이지요.

 

이로 인해 아무리 사람을 낚는 노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교회는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었던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갈릴리로 돌아간 이유, 곧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사랑으로 품을 수 없다면 교회는 어떤 결실도 맺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물량적 성장과 화려한 외면을 목적을 목적으로,예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힘과 능력에만 의존하여 사람을 낚으려는 교회의 모습은, 결국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한 빈 그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빈손으로 있던 제자들에게 "그물을 오른쪽으로 던져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이것은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그 방향을 따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쪽이든 던지라 하는 쪽으로 던질 수 있는 순종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인교회의 어려움 속에서 교단을 탈퇴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조직을 구성해서 버틸 것인가 라는 방향도 중요한 문제인건 분명하지만, 그보다 오늘 우리 교회들이 더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갈릴리로 가라는 말씀에 순종했던 제자들처럼, 교회의 본질적 목적을 지키고 있는가 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교회의 위기가 아닌 기회로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며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가야할 갈릴리로 향해 가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은 어린이 주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보면서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그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많은 한인교회가 앞으로 미래 세대를 고려하지 않고,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위기에만 시선을 빼앗겨 근시안적인 대책을 세우고, 지금 누리고 있는 권리와 이해관계만 따지려 드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교회에 주님이 가라고 명하신 우리의 갈릴리는 어쩌면 지금 교회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지금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는 미래 세대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시선은 앞으로 주님의 뜻을 따라 교회의 사명을 이어나갈 그들에게 향해 있어야 합니다. 보다 멀리 시선을 두고, 조금은 더디게 가는 한이 있더라도 천천히 주님과 함께 그물을 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 때 비로소 교회가 거두어야 할 열매가 차고도 넘치는 풍성한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