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도

요한복음14:8-18

 

지난주USA Today에복권당첨과관련해서재미있는사례가한가지소개되었습니다.그것은노스캐롤라이나주에사는한60대남성이손녀가준포춘(fortune)쿠키에서나온번호를그대로써넣어서 3억4천460만달러(약4천59억원)가넘는엄청난금액에당첨되었다는사연이었습니다.저도중국식당에갈때마다포춘쿠키를받으면,늘그안에적힌격언이나덕담을읽는버릇이있습니다.읽고나면꽤기분이좋아지곤하는데,아주적은수의경우를제외하면언제나그글은긍정적인면만기록되어있기때문입니다.그래서인지읽으면서이것은내게주시는하나님의말씀일것이라고스스로되뇌는경우도많았습니다.아마도이이야기를들으면서,앞으로는  포춘쿠키의번호를잘점검해야겠다고생각하는분이계실지도모르겠습니다.그런데그저웃어넘길수없는분명한사실가운데하나는많은사람들이포춘쿠키에적힌행운의숫자나짧은글이자기삶에진짜복을가져다주면좋겠다는바램을대부분가지고있다는점입니다.믿거나말거나상관없이말이지요.

 

흔히“기복신앙”이라불리는신앙생활의행태가많은사람들에게영향을미칠수있는것도비슷한이유에서찾을수있습니다.사람들의내면에욕망의충족이나소원성취와같은매우극적이고현실적인성과를바라는심리상태가강하게작용하고있기때문입니다.사실메시아를기다리던유대인들의상황도세속적이고현실적인기대에서크게벗어난것이아니었다는점에서기복적신앙관과다르지않았습니다.주님의부활후승천하기바로직전의상황을기록하고있는사도행전1장6절을보면,성령의세례를통해하나님나라를말씀하시던예수께제자들은이스라엘민족에게나라를언제다시되찾아줄것인가를묻는대목이나옵니다.물론매우중요한문제인것은틀림없지만,부활을체험한이후에도이들에게하나님의나라에대한예수님의궁극적인가르침이아직완전하게자리잡지못하고있었다는사실을보여주는것이라할수있습니다.

 

하나님의나라는공간적인개념이아니라통치의개념입니다.그래서하나님의나라를물을때는어디에존재하는것이아니라어떻게행하여야하는가에관한질문이되어야한다는것이지요.예수님은이를숨은보화에비유하시면서보아야할것으로비유하시기도했습니다.엄밀한의미에서하나님나라는없는것을만드는것이아니라,이미존재하는것을가능하도록나타나게만드는것이라는뜻입니다.그래서영의눈을떠야한다고거듭강조하셨던것입니다.

 

성령의세례를받고새롭게영의눈을떠야하는데,여전히그들의시선은물세례를받고제자들이라칭함받는수준에서벗어나지못했다는증거입니다.성령의권능을받아서,땅끝에까지이르러복음의증인이되라고부름받았지만,여전히제자들의마음은어디가땅의시작이고끝인지를분간하지못할만큼신앙의중심이서지않은상황이었던겁니다.비록부활하신예수께서그들을직접찾아와주셨다해도,어디까지나이들은눈에보이는주님의임재를통해확신을얻는것이외에는확고한믿음을지켜내지못하고있었던것으로보이는까닭입니다.  

  

사실예수님이계시지않은상황에서그를따르던제자들과초기교회의신도들은영적으로고아나다름없는신세였습니다.영적, 심리적으로공황상태를겪고있었던것이지요.십자가의죽음이부활에대한소망이아니라,오히려생명에대한위협과공포로다가왔기때문입니다.그러다보니불안한현실과불확실한미래에대한두려움은많은신도들을신앙공동체에서떠나게만들거나,상실감에빠져현실을부정하고희망을잃어버린채자포자기하는이들도나타나게되었습니다.게다가부활이후에그들을다시찾아오신예수께서끝까지함께하시는줄알았는데,하늘로돌아가신다는이야기는또한번그들의마음을흔들리게만들었던것이지요.

 

한마디로철저히현실적인시각을벗어나지못한제자들과초기신앙공동체의신도들에게상실감을가져다준상황이었던것입니다.그저할수있는것이라고는골방에삼삼오오모여기약없는예수님의재림만을고대할뿐인신세가되어버린겁니다.오늘본문말씀은이런상황속에빠져있는제자들을위해미리예비하신예수님의말씀이라해도무방합니다.흔히예수님의고별설교로알려진내용인데,로마군인들에게체포당하시기직전에예수님이주신말씀입니다.그말씀의시작이“너희는마음에근심하지말라.”(요14:1)는것에서볼수있듯이,앞으로예수님의부재가운데상심을겪게될제자들을향한위로의말씀이라는것을알수있습니다.

 

그런데그때,제자가운데하나인빌립이예수께한가지요청을하지요.그것은바로아버지하나님을보여달라는부탁이었습니다.만일그럴수만있다면예수님이자신들을떠나신다해도안심할수있을것같다는생각이었던겁니다.그러자예수께서“나를본자는아버지를보았거늘어찌하여아버지를보이라하느냐(요14:9)”고대답하셨습니다.이미주님은아버지하나님과한몸을이루고있다는사실을여러번이야기해주셨습니다.그러니믿고기다리라는뜻이었지요.무엇보다예수께서행하신일들을통해아버지하나님이함께하고계시다는사실을증거했으니말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제자들은그믿음을확신할수있는표징을원했던것으로보입니다.대부분의신앙인들이바라는것처럼말이지요.눈에보이거나손에잡히는것혹은수긍이갈만한어떤현상을통해서라도믿음에대한확증을얻고싶은마음이었던겁니다.기복신앙이나번영신학과같이확실한믿음의근거가필요했던것이지요.사실오늘날처럼시각적인비주얼(visual)이강조되는사회에서보지않고도믿는신앙의깊이를이야기하는것은어려운일이되었습니다.그러다보니많은사람들에게복음을전하는것자체가힘든시대가되어버렸습니다.교회를다니는사람들조차보이는겉모습에더관심을갖고판단하는경우가많습니다.물질의축복과성공,그리고출세라는세속적가치가십자가의고난에서피어난생명의가치보다더중요한신앙생활의목표가되어버린것이지요.

 

그래서인지보여달라는요구를하던제자들에게전하신예수님의대답은오히려제자들을향한질문에가까운것이었습니다.제자들에게되물은것이지요.베드로에게마지막으로물었던그질문과같은것이었습니다. “바로나를사랑하느냐?”는질문이었습니다.물론그에대한대답은계명을준수하는지그여부만보아도알수있다는것이예수님의생각이었던것으로보입니다.행함속에서진실한믿음의근거를확인할수있다는뜻이지요.이건마치세속적인가치에물든오늘이시대의교회를향해던지는질문처럼들립니다.정말주님을사랑하는교회가맞는지다시한번돌아보라는겁니다.오늘우리교회가주님을사랑해서주님의말씀대로사는교회가맞는지를먼저확인해보라는것이지요.교회안에하나님이계신지를주님께보여달라고구할것이아니라,우리스스로하나님이계신교회인것을증명해보이라는말씀입니다.

 

저는이말씀을묵상하며이런비유가떠올랐습니다.갈급한시대를살아가는사람들이사랑에목말라합니다.그래서사랑을구합니다.누군가로부터사랑을받고싶어하는것이지요.그래서그사랑을확인하고싶어합니다.그런데진정한사랑은그렇게볼수있는것이아닙니다.또보여지는것이전부일수도없는일이고요.오히려사랑은보는것이아니라행하는것입니다.누군가해주기를바라는것이아니라누군가를위해적극적으로행하는것.그게사랑입니다. 이런사랑이없으면결국누구도확인할수없는법이니무엇이먼저가되어야할지는자명한일입니다.

 

하나님을보는것도마찬가지의상황입니다.그꿈같은일은이루어지기도힘들지만,보여준다해도볼수없는것이유한한우리의한계입니다.그러니까보려하지말고,하나님과함께동행하라고성경은말씀합니다.다시말해하나님의말씀을따라살아가라는것이지요.믿음은볼수없는것을보아서확인하는것이아니라,보이지않는것에대한신념을가지고사는신앙의힘에서나오는것입니다.마치받은것없이도줄수있는사랑처럼말이지요.그것이바로하나님의일을행하는것입니다.그때비로소하나님이나와함께하고있다는확증을얻을수있는것아닐까요?하나님을보여달라는제자들의요청에대한예수님의대답은바로이것이었습니다.

 

물론우리에게만모든것을맡기신것은아닙니다.네가알아서하라는식의방임이라기보다는이미길을예비해놓았으니그길을따라오라는인도하심에가까운말씀이었습니다.그래서구하라고말씀하신것이지요.그러면다들어주신다고말입니다.원하는것아무거나다들어주신다는막무가내식응답이아니라,하나님의말씀을따라가며보이지않을때마다그길을구하면인도해주신다는약속입니다.보혜사성령을통해끊임없이인도해주시리라는약속인것이지요.

 

오늘은성령강림주일입니다.우리를향한주님의약속이이루어진날입니다.성령은하나님을보기위해무작정기다리는것이아니라하나님의일을행함으로자기안에계신증거를나타내고자하는이들에게주신선물입니다.주님을사랑하는마음으로오늘도믿음대로사는이들에게주신은혜입니다.때로힘에부치고잠시머뭇거리며주저앉고싶은우리들을향해끝까지함께하신다는약속을주신것입니다.우리가운데성령을보내어주셔서가야할길을미리예비하시고인도해주시는주님의은혜가크고놀라울뿐입니다.이는하나님의일을끝까지감당하며거룩한책임을지고자한걸음더나아가는우리교회에주시는말씀이기도합니다.다소불확실하고불안한상황이오는순간이있을지라도,하나님의일을믿음으로행하는교회는언제나주님이우리의간구에응답하시며,성령을통해인도하여주시리라는믿음을잊지마시기바랍니다.성령이오늘우리와함께하시며인도해주실것을믿는거룩한주님의교회와성도들이될수있기를주님의이름으로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