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이등분

누가복음3:21-22

 

교회력에따라지난주부터우리는주현절기간을보내고있지만, 동시에오늘을주의세례주일로도지키게됩니다. 주의세례주일(Baptism of the Lord)은예수께서세례요한에게직접세례를받으신것을기념하면서, 이로부터시작할공생애의의미를다시한번되돌아보도록가르치고있습니다. 성서일과에의해선택한본문인누가복음의내용도예수님의세례에관한기록을담고있는말씀입니다. 이에대한보도를다른공관복음서에서도언급하는것을보면, 이사건이가진의미가작지않다는사실을직감할수있습니다. 

 

오늘본문의저자인누가의기록에따르면, 이미당시많은사람들이세례를받은것으로보입니다. 그중에는유대교의신봉자들도포함되어있었습니다. 물로죄를씻어내는의식이일반대중에게는일면매우편리한방법이기도했기때문입니다. 한마디로대중적방식이었다는뜻입니다. 죄를씻어버리는의식은대부분의종교에서구원을받는행위나다름없는것으로이해되는종교의식이라할수있습니다. 예컨대, 힌두교의한분파에서는그들이믿는신의형상을실은수레가지나갈때몸을던져자신을밟고넘어가면죄가사라진다고믿는이들도있다고합니다. 생각만해도끔찍한고통이아닐수없지요. 경전중심의종교에서는수만권의책을줄줄암송할정도로다이해해야구원의길에들어설수있다고믿는다고하니, 그에비해물로몸을씻는행위는매우단순한방식이아닐수없다는것입니다.  

 

적어도형식면에서는누구나할수있는방식이라는점에서대중적이라는뜻이지요. 그래서세례요한은물로세례를주는것의의미를분명하게밝혀두고자합니다. 바로세례의이유가‘회개’에있다는것입니다. 물로몸을깨끗이씻어내는행위에앞서삶의중심이변화되어야한다는사실을강조한것이지요. 나아가그변화의중심에바로그리스도예수가계시다는점을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옛사람은죽고다시새로운피조물로거듭나는것이바로세례의의미라는사실을말입니다.

 

그런데놀라우면서도논란이될만한뜻밖의상황이벌어집니다. 그리스도이신예수께서세례를받기위해사람들이모여있던요단강에나타나신것이지요. 유대교에속한이든아니면그것과전혀상관이없는사람이든, 결국인간이흠을가진유한한존재라는점에대해서는누구도부인할수없는사실입니다. 그러니까누구라도자신의죄를고백하며물로깨끗이씻김받고자나온것은자연스러운행동이라할수있다는겁니다. 문제는세례의대상이다름아닌그리스도예수라는점이었습니다. 죄가없으시고흠이없는하나님의아들이세례를받을필요가전혀없어보였기때문입니다. 오히려사람들에게의심을사거나, 세례를베풀고있던요한과비교될가능성이더커보일수있었던것이지요.

 

그럼에도불구하고, 예수께서세례요한으로부터물세례를받으려하신까닭은무엇이었을까요? 사실이러한질문을한다는것자체가아무런의미가없어보일수도있습니다. 왜냐하면그렇게따지다보면, 굳이하나님의아들인예수께서이땅에내려오셔야할이유도없어보이기때문입니다. 그것도십자가의죽음을통해하나님의뜻을완수한다는것자체가도통이해가되지않는이야기로들리기때문이지요. 전능하신하나님께서이루지못할일이없으실텐데굳이이토록논란거리가될만한방식을택한이유를쉽게납득하기가어렵다는겁니다. 그런의미에서질문은하나님의계획을성취하기위하여가능한모든방법중에서왜이런방식을택하신것인가를묻지않을수없습니다. 그리고이를통해과연하나님은어떤결과를얻고자하신것인지를질문하게됩니다. 비록우리가얻을수있는해답은그에대한작은단서를통해유추를해보는정도에그칠지도모르지만말이지요. 

 

이러한질문에관한단서가될만한부분을면밀히살펴보기위해오늘본문에기록된대로예수님이세례를받을때일어난몇가지정황을다시주목해보고자합니다. 요한으로부터세례를받고나서예수님은하늘을향해기도를올립니다. 아마도우리가궁금해하는것처럼아버지의뜻이무엇인지를재확인하셨는지도모릅니다. 그에대한아버지하나님의응답인지그순간하늘이열리는신비로운현상이발생합니다. 하늘이열린다는것은마치경계가분명하게구분된두공간을가로막고있던문이열리는상태를연상시킵니다. 하늘과땅의경계가무너져, 그구별이없어지고양쪽의소통이원활하게이루어질수있는길이열렸다는것이지요. 

 

오래전동서독을가로막고있던베를린장벽이무너질때, 사람들은– 특히여행이자유롭지못했던동독사람들은– 자유로운여행이가능한기회가열렸다고환호한바있습니다. 우리도한때금강산관광과개성공단을통해북한땅을밟게되었을때, 금단의문이열리고남북의소통이가능해졌다고기뻐한일이있었습니다. 비슷한용례를개인사에서도찾아볼수있는데, 예컨대국가고시에합격한사람에게“이제출세길이열렸다”는말을사용하는경우도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는갈수없던새로운영역으로한걸음내딛게되는길이가능해졌다는의미인것이지요.

 

그런의미로예수님의세례후나타난신비로운현상을이해해볼수있습니다. 하늘과땅의경계가무너지고, 이땅의사람들이하나님의나라로향해갈수있는길이열린사건이라는겁니다. 그리고그길이어디있는가를분명하게가르쳐주신것이지요. 바로이땅에육신의옷을입고낮고낮은베들레헴의말구유에서나시고, 요단강의수많은군중들사이에서함께머물러세례를받으신그분. 가난하고소외된자의고민과아픔을들어주시고그들의친구가되어주신참벗. 그리고사람들의온갖모욕과왜곡을뒤로하고온인류의죄를홀로지시기위해무거운십자가를짊어지고그위에피를흘려돌아가신어린양. 하지만죽음의권세도물리치시고사흘만에다시살아나셔서영원한생명의길을직접보여주신부활의주님. 그래서내가곧길이요진리요생명이라고말씀해주신예수그리스도를통해우리는하나님의나라를향한열린통로를얻게되었다는뜻입니다.

 

그런데이지점에서모든것을계획하신하나님은‘왜이초역사적사건의배경을세례의식이열린강가로정하신것일까?’라는또다른질문을하지않을수없습니다. 우선그이유를물이만물의뿌리이자생명의원천이라는사실과연관시켜찾게됩니다. 사람뿐만아니라생명이있는모든동식물은반드시물을필요로합니다. 특히사람의몸가운데70%가물이라고하니, 흙으로만들어졌다고하는말이무색하게느껴질만큼생명의근원으로서물의중요성을다시생각하지않을수없습니다. 물론현실의시장가치와는커다란격차가있는것이사실입니다. 생명에없어서는안될중요한것이지만, 물값은거의없지요. 그런데금은사는데없어도큰지장이없지만, 값은물과비교도할수없을만큼큽니다. 

 

그도그럴것이물은왠만한곳을파다보면나오는반면, 금은정말운좋은사람들의눈에만발견되는희소성을갖고있기때문입니다. 그런데반대로물을금처럼찾기힘들다고생각해보십시오. 생각만해도끔찍해지지않을수없습니다. 과연지구상에 존재하는생명체중에얼마나살아남을수있을까요? 그럼에도불구하고시장의가격으로물질의가치는물론삶의기준에까지적용시키려하는현대사회가얼마나위험한상태에이르렀는지다시생각해보지않을수없습니다. 그만큼생명의보편성이갖는의미보다물질의가치를중요시여기며사는세상은하나님이창조하신생명우선의원칙에서많이동떨어진상황이라는것을직시할필요가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생명의원칙이약화되는만큼많은것이오염되고고갈되어가고있는현실을마주하게됩니다. 그흔한물도이제는제법돈을치뤄야마실수있는대상이되어버린것이지요. 아마물질에대한가치를지금처럼무차별적으로추구하다보면, 언젠가가장보편적인생명의원천이던물마저고갈되는상황에처하게될지도모르겠습니다. 노아의시대에죄에빠져타락한세상을물로심판하셨던하나님의뜻이새삼그중요성을떠올리게합니다. 그런데이제는그마저도어렵게되었습니다. 더이상물로심판을행하지않으시겠다고약속까지해주셨으니말입니다. 대신하나님은이땅에독생자그리스도예수를보내주셨습니다. 그를통해생명의가치를다시살려주신것입니다. 바로그의눈물을통해서말이지요.        

 

일본의기독교사회운동가이자빈민촌의성자라고불리던가가와도요히꼬목사님의시가운데“눈물의이등분”이라는글이있습니다. 가가와목사님은러일전쟁이후극심한경제난으로힘들어하던고베의빈민굴에서소외된사람들을돌보며, 세상을변화시키는사회운동에도적극참여하고있었습니다. 그런데당시일본에는‘고가에시’라고해서, 아이를다시하늘로반품한다는의미로양육할수없는아이를제손으로죽이거나돈을받고남에게떠넘기는일들이비일비재한상황이었습니다. 그중에살아남은아이들이마지막으로연명할수있는곳이바로빈민굴이었습니다. 가가와목사님은그렇게맡겨진아사직전의아이하나를데려다기릅니다. 하지만영양실조로인해끝내아이가죽고말지요. 그래서죽은아이를끌어안고목사님은눈물을하염없이흘렸다고합니다. 그때눈물방울이아이의얼굴에떨어져서마치죽은아이가흘리는눈물같더라는겁니다. 이를두고그는‘눈물의이등분’이라는말을사용한것입니다.     

 

이제처음제기했던질문으로돌아가볼까요? 왜하나님은예수께서굳이거치지않아도될물의세례를받도록이끄신것인가. 오래전노아의홍수가세상의죄를씻기위한물의심판이었다면, 요단강에서행하신주님의세례는이땅을구원하기위해흘리신하나님의눈물과같습니다. 죽어가는생명들을향한한없는사랑의눈물이었던것이지요. 그런의미에서예수님의물세례는하나님의눈물을세상속에나타내신사건이라할수있습니다. 그눈물로죽어가는생명들을살리고자하는하나님의끝없는사랑의표현인셈입니다. 그래서하늘도울고땅도우는눈물의이등분과같은사건이일어난것이지요. 

 

생명의원천물마저천대받고점차고갈되어가는현실속에아직희망이남아있습니다. 그것은바로생명을변화시켜살릴수있는물이있기때문입니다. 바로눈물이지요. 이미그리스도를통해하나님은자신의눈물을보여주셨습니다. 이제남은것은그눈물의값을제대로치르며사는우리의몫만남았습니다. 그런말이있지요. 눈물은거짓말을하지않고, 눈물은매로도다스리지못하는변화의힘이있다고말입니다. 오늘그리스도의세례를통해진정한눈물의힘을보았다면, 여러분에게주어진앞으로의삶속에서그눈물에어긋나지않는생명력넘치는삶을그리스도안에서사시는저와여러분모두가될수있기를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