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신앙과 종교윤리

현세적 물량주의와 문화적 문법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늘 거론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현세적 물량주의이다.[i] 물량주의는 교회의 목회기준이나 실질적인 운영방향이 질적인 수준이 아니라 양적인 측면에 치중할 때 주로 언급되는 현상이다. 교회가 외형적이고 양적인 성장에만 몰두한다든지 배금주의적 경향이 심화되는 것이 그 전형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ii] 개인의 영적 성장을 위해 올바른 지침을 제시하거나 사회적 영성의 회복을 위한 현실 참여보다는 교인의 수, 헌금 액수, 그리고 건축과 같은 교회의 외형적 성장에만 집착하는 한국 교회의 부정적 이미지는 물량주의의 폐해에서 찾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정치와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교계에서 물질숭배의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한국적 산업화를 잘 대변해주는 기치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가 하나님을 잘 믿으면 축복받아 잘살게 된다는 식의 신앙 기조로 교회에서 재해석됐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김광식은 이를 두고 ‘이신칭의’(以信稱義)라는 종교개혁의 정신이 한국교회에서는 ‘이금칭의’(以金稱義)로 둔갑하었다는 비판을 가한 바 있다.[iii] 종교의 영역이 경제의 논리에 오히려 예속되어 교회의 식민지화가 발생했다는 주장의 설득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iv]

 

이처럼 한국 개신교회가 과도한 물질 중심의 현세적 가치에 경도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기복신앙과 결부시켜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 교회의 성향을 기복신앙이라고 단적으로 정의하는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통상적 개념 규정이 실질적인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수준으로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몇 가지 선결되어야 할 요건들이 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한국인의 기복신앙이라는 정서적 개념과 기독교적 신앙 행태로서의 기복이라는 개념을 일치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기복신앙이라는 현상이 한국 교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유의미한 영향력을 가졌는지와 연관이 있다. 일반적으로 종교가 가진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를 삶의 전반적 문제에 대한 해석과 의미 부여에서 찾는다. 따라서 기복신앙이 신앙공동체인 한국 개신교회와 그 구성원들의 삶에 구체적인 가치를 제시하고 윤리적 행동 방식에 대한 의미를 재해석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앞의 선결 요건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문화적 문법”이란 개념을 분석 틀로 사용하고자 한다. 문화적 문법이란 용어는 “그 문화를 공유하는 구성원들 사이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거의 의식되지 않는 상태에 있으면서 구성원들의 행위에 일정한 방향을 부여하는 문화적 의미체계”를 말한다.[v] 정수복은 그의 저서를 통해 한국사회의 문화적 문법을 근본적 문법과 파생적 문법으로 나누고 그 문법들이 한국인들의 세계상을 어떻게 형성해가고 있는지를 진단하였다. 그가 말한 근본적 문법이란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어 쉽게 변화되지 않는 근본적인 현상들, 예로 들면 “현세적 물질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와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반면 파생적 문법은 “속도지상주의” “수단방법중심주의”처럼 한국사회가 급격한 변천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파생하여 나타난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복신앙’이라는 특수한 종교적 현상을 문화적 문법이라는 개념 틀을 사용하여 접근해 보고자 한다. 지면상 세밀한 분석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특수한 종교적 신앙 형태가 과연 한국 교회의 성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또 그것이 교회의 실질적인 역할에도 유의미한 연관성을 갖고 있었는지를 가늠해 보는 것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기복신앙의 행태가 한국 개신교회의 뚜렷한 신앙 문법으로 정의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복신앙이라는 개념정의가 한국 교회를 설명하는 도구로 적합한지, 한국적 상황에서 파생할 수 있는 특수한 의미에서 기복신앙을 재정의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에 이 글의 의의를 두고자 한다.

 

기복의 의미와 성서적 정의

소위 오순절파라고 불리는 교파의 신앙 행태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한국 교회의 현세적 복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자주 문제로 지적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가 주장한 삼박자 구원론은 세속화된 사회의 현실적 욕구를 적극적으로 대변하여 종교소비자인 대중의 요구에 영합하는 기복신앙의 대표적 사례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접근에 앞서 ‘기복(祈福)’이라는 용어에 더 세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말뜻 그대로 생각해보면 기복은 복을 비는 것인데, 이 자체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복’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을 지적하는 주장도 있다.[vi] 복을 비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복에 대한 잘못된 개념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성서를 보더라도 현세적인 복이 무시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복음서의 기록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은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마가복음 10:29~30).

 

마가복음의 이 구절은 복에 대한 정의를 이중적으로 구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부분이다. 현세적인 수준에서 받게 될 복과 내세의 영적 개념으로서의 복을 분명하게 나누고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 성서는 차별성을 두어 선후관계를 명확하게 규정지으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일례로 구약의 신명기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신명기 28:1~2).

 

먼저 복의 조건을 규정한 신명기의 가르침은 순종이라는 신앙의 규율이 선행되면, 모든 복은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약의 복음서는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위의 두 구절을 요약하면 성서에서 말하는 복의 핵심은 복을 받기 위한 신앙 태도에 중점이 있으며, 그것도 우선적인 복의 중심이 사랑의 실천이나 정의의 실현 혹은 생명의 구원과 같은 영적 재화(財貨)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적 전제로 기복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기독교적 신앙 행위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복신앙을 매우 현세적인 개념으로만 규정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재생산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 말의 전통적인 용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차용한 용어이기도 한 ‘기복신앙’은 한국의 전통적 샤머니즘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주로 현세적 금전과 건강 그리고 장수의 복을 비는 내용이 샤머니즘의 민속신앙 형태에서 발견되는 전형적 모습이다. 이때 현실의 삶에 직접 결부된 세속적 보상이나 물질적 재화가 복의 구체적 내용으로 제시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달리 샤머니즘은 영적인 복의 개념은 물론이고 윤리적 차원의 규정도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특징을 보여준다.[vii]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성서의 가르침과는 다른 복에 대한 관점을 가진 샤머니즘의 신앙관을 기독교의 신앙행태로 정의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질문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영적인 복을 구하는 적극적 기독교의 구원 신앙까지 부정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사회 저변에서 종교가 혼합되어 온 사실을 고려하면 기복신앙이 샤머니즘의 영향이라고 단정할 수만도 없다. 한국 사회에 전통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유교와 불교조차 현세적 성향을 농후하게 지녀왔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이유에서 기복신앙이라는 개념을 통해 한국 교회의 성향을 통칭하거나 규정짓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더불어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한국적 기복신앙에 대한 개념 정의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파생적 신앙관으로서의 기복

막스 베버의 정의에 따르면 종교는 삶의 실재적 내용을 보다 체계적으로 합리화시키는 고유의 과제를 수행한다. 문화적 문법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생각해 보면, 결국 종교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 의미체계를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근대적 노동의 개념을 소명이라는 신성한 의무로 재해석함으로써 사람들의 행위와 사고의 방향에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한 것 역시 종교의 영향력이었다. 인간의 궁극적인 삶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유의미한 것으로 해석하여 인간이 그에 합당한 행동을 취하게 하는 것이 바로 종교의 기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복신앙을 한국 교회의 지배적 신앙 행태로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해진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기독교의 ‘기복’ 개념은 일면 정당한 신앙의 형식이라 말할 수 있다. 내용 규정에 따라 성격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절대자로부터 복을 구하는 형식적 신앙 행태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문제의 접근을 기복신앙의 형식 자체에서 찾기보다는 한국 교회에서 통용되는 복의 내용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의 문법처럼 교회의 신앙생활에 영향을 주게 된 요인과 과정이 무엇인지를 추적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한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고려하여 한국 개신교의 성향을 이해하려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초기 선교사들의 종교성향과 그들의 사고구조이다.[viii] 왜냐하면, 이들의 선교활동을 통해 한국 개신교의 모체가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이 전해 준 기독교의 핵심 사상도 결국은 그들의 이해 속에서 재해석된 것이라 해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더불어 당시 서구적 유형의 사회발전을 기대하며 근대화를 추종하려던 한국의 지식인층, 소위 급진적 개화파가 선교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ix] 이전의 전통적 유교 윤리와 이를 주도하던 지식인층의 세력이 퇴조하면서 개신교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지식인층의 출현은 한국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구한말 진보적 지식인들은 서구 문명처럼 사회 진보와 발전이라는 근대화 프로젝트가 개신교의 선교와 함께 한국사회에 급속하게 유입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선교사들은 사회의 세속적 진보 과정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선교는 서구 국가들의 부흥과 성장이 곧 기독교의 강력한 영향력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믿었던 지식인층의 소망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초기 선교사들의 관심은 과학 기술을 필두로 하는 진보적 사회사상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적 태도와 훈련을 통한 인간의 도덕적 향상에 더 집중되어 있었다. 이는 초기 선교사들의 대부분이 심령부흥운동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1893년부터 1901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40여 명의 선교사는 북미 장로교 출신으로 그들의 신학교 배경은 대체로 근본주의적 신학이 지배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x]

 

비록 선교사들을 통해 활발한 의료활동과 근대교육의 기반이 마련되기는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교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이들에게 진정한 선교는 복음을 선포하여 많은 사람을 개종시켜서 교회 공동체를 부지런히 세워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한국의 일반 민중들이 겪고 있었던 전쟁의 상흔과 그로 인한 정서적 폐허는 왜곡된 형태로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xi] 그들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상처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무질서와 도덕적 합리성이 모자란 각성의 대상에 가까웠다. 이를 위해 선교의 화두는 죄로 물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영적 회개운동에 집중하는 것에 머물렀다. 문제의 근원을 당시 역사적 사회현실과는 단절한 채로 오직 개인의 영혼 구원을 위한 신앙훈련에만 관심을 둔 것이었다. 이는 개신교가 한국 사회에 일상적 삶의 방식을 종교적 의미에서 체계적으로 합리화시킬 기회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한마디로 한국인들의 생활에 주도적 역할을 할만큼의 근본적 문법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히려 개신교가 사회를 조명하는 문화적 문법의 역할을 한다기보다 역으로 사회적 영향에 따라 신앙의 성향이 규정된다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협소한 의미에서 교회의 신도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일종의 신앙적 문법으로만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교회는 사회적으로 볼 때 많은 한국인에게 근대적 공간으로서의 상징성을 부여받았을 뿐이었다. 이로 인해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교회는 성공과 성장이라는 이미지를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 교회가 스스로 이미지를 창출하여 양적 팽창을 주도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도시화와 개발의 과정에서 ‘잘 먹고 잘사는’ 번영과 성공의 길이 바로 신앙 행태에 있다는 논리가 정착한 것이다. 신앙을 종교윤리로 재생산시킨 것이 아니라 세속적 보상 개념으로 특이하게 이해한 결과였다. 개인의 영적 상태가 사회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보상이 물질적 재화를 통한 복의 획득이지 결코 윤리적 공의의 실현과 같은 구원관으로 확립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두로 제시한 한국 개신교의 기복신앙은 교회의 자생적 신앙 문법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파생된 신앙관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문화적 의미체계로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만한 종교윤리의 기능은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히려 한국 사회의 특정한 역사적 조건들이 빚어낸 파생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는 기복신앙에 대한 성서적 의미와 정의가 명확하게 강조되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나아가 번영과 성공을 갈구하는 파생적 기복신앙이 하나의 문법처럼 교회와 신도들에게 삶의 문제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기준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럴 때 비로소 한국 교회와 기복신앙이 하나의 동질적 관계로 오해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i] 최재건, “한국교회의 역사의식 - 물량주의를 중심으로,” 청암논단 45회 (2004).

[ii] 이대윤, “한국교회의 물량주의에 관한 문제,” 뉴스파워, 2003년 9월 6일 자 기사.

[iii] 김광식, “종교개혁에서 본 부흥회,” 기독교사상, 1997년 10월호, 27.

[iv] 박영신, “한국기독교와 사회의식,” 기독교역사문화연구소 편, 한국의 기독교 (겹보기, 2001).

[v] 정수복,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생각의 나무, 2007).

[vi] 김진규, “기복신앙의 문제인가, 번영신학의 문제인가,”뉴스앤조이, 2016년 4월 13일 자 기사자료.

[vii] 김성례, “기복신앙의 윤리와 자본주의 문화,” 종교 연구 27 (2002): 61~86.

[viii] 차성환,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종교성향과 근대적 삶의 형성,” 한국 종교사상의 사회학적 이해 (문학과 지성사, 1995).

[ix] 이광린, “개화파의 개신교관,” 역사학보 66 (1965). 차성환의 윗글에서 재인용.

[x] Sydney E. Ahlstrom, A Religious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 (New Haven, 1972), 차성환의 글에서 재인용.

[xi] 김진호,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미국 복음주의를 모방한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 역사와 정치적 욕망 (평사리, 2006).

규율과 욕망: 경계에 갇힌 이민교회의 딜레마

1.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근대 일본의 대표적 정치사상가인 마루야마 마사오는 서구 자본주의의 핵심을 인간이 가진 욕망추구가 사회적으로 배척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는 사회구조에서 찾은 바 있다.[1] 물론 욕망의 무한정한 향유가 허용된다기 보다는 합리적 규율의 방식 안에서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개념은 이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막스 베버가 사용한 용어이기도 했다.[2] 그에 따르면 근대 이후 서구사회에서 이윤추구나 부의 축적과 같은 인간의 욕망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특수한 조건 하에서 규율화된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통사회처럼 돈을 벌기 위해 투기나 고리대금, 혹은 약탈과 편법 동원도 마다않는 탐욕적 경제행위가 아니라 노동의 합리적 운영방식이나 근검 절약과 같은 개인의 생활규율에 의해 이윤과 축적의 욕구도 정당화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본능적인 무한정 욕구 충족이 아니라 규율에 의해 매우 절제된 욕망의 허용이 서구 자본주의를 가능케 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끊임없이 구성원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경쟁의 세계에서 개인이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고 탁월한 경쟁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욕망의 추구는 어느 정도 필연적인 것처럼 보였다. 이를 원활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윤을 추구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영리행위의 욕망 자체가 적극적으로 정당화될 필요가 있었다. 자본주의가 이전 사회와 다른 독특함이 바로 여기에서 발견된다. 노동에 대한 개념만 하더라도 근대 이전까지는 천한 신분의 사람들이 담당해야 할 부담스럽고 고된 일로 여겨지던 것이[3],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하늘이 부여한 성스러운 의무로 자연스럽게 인정되기 시작했다. 노동 자체가 삶의 중요한 목적으로 그 의미가 전이된 것이다.

 

부와 재산의 축적에 대한 이해도 큰 변화가 있었다. 전통적 사고로 볼 때 돈을 벌고 모으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자랑스러워하거나 격려할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한계를 넘어서는 소유욕은 죄스런 것이라 여겨져 기독교 신앙인들은 세속적 이익을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프로테스탄트는 남을 희생시키고 얻은 비겁한 욕망으로 여겨지던 영리행위조차 소명이라는 의무감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윤리적 정당성을 제공해 주었다. 나아가 개신교 윤리는 지속적인 이윤의 축적을 위해 더 열심을 다해 움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추구해 나가도록 요구했다. 근검절약과 근면, 계산과 계획적 태도, 금욕과 절제와 같은 덕목이 체계적인 삶의 중요한 태도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베버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사회에 정착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의 종교적 금욕주의라고 주장하였다. 이윤추구와 자본축적을 위한 활동이 단순한 욕망의 발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게 소명의 성취를 위한 구원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개신교의 금욕주의적 규율이 이윤축적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합리적으로 가능하게 만든 사건은 욕망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명확한 구별을 강조하던 이전 사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서구 자본주의만의  특이한 사항이었다.

 

2.     유교적 윤리와 거세된 욕망

 

유교적 세계관의 지배적 영향을 받아온 한국 사회는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삶의 가치로 여겨져 왔다. 인욕(人欲)이나 자기의 사욕(私欲)을 막는 것이 곧 하늘의 이치(天理)를 이루는 행위라는 주장은 그 실천윤리의 핵심이었다.[4] 소인과 군자를 구분하는 차이도 욕망의 제어 여부에 달려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욕망의 제어는 단순히 법적제재나 규율에 의해 금지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심성의 존재여부 자체가 결코 인정되지 않았다. 어떤 조건 하에서도 욕망은 거세되어야 할 대상이며, 이를 드러내는 것은 하나의 죄악처럼 부정되었다.

 

예를 들어 유교적 전통사회의 이상적 관료상인 청백리(淸白吏)의 위상이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예나 지금이나 청백리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기준은 ‘지공무사(至公無私)’이다.[5] 이는 단순히 공적인 의무에 충실하고 사적인 욕구는 자제하라는 뜻이라기 보다 공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사적인 욕망이 없어야 한다는 해석으로 적용되어왔다. 그러다 보니 실제 관료의 성실성이나 업무에 대한 적합도 보다 그가 얼마나 청빈한 삶을 사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경제적 무능력으로 인한 빈곤조차 관료의 도덕적 자질을 높여주는 웃지못할 상황이 발생할 때도 있었다. 공적인 업무 수행능력이 형편없는 경우에도 만일 그가 청렴한 삶을 추구하고 적어도 공무에 대한 마음이 없지 않다고 판단되면 충분히 청백리의 자격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문화의 일반적 정서라 할 수 있다.

 

국가나 기업을 운영하는 관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개인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가의 여부처럼 지극히 인격적이고 내적태도에 머물러 있다는 건 이윤의 욕망추구가 적극적으로 용인되는 자본주의 시대에는 오히려 장애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개인의 이윤욕에 대한 규율의 방식에 있어서 서구의 기독교적 세계관과는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금욕주의적 규율은 인간의 사욕을 적극적인 직업노동의 개념으로 합리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반면에 유교적 세계관은 심정적으로 개인의 욕망을 거세하는 순수한 금욕주의로만 작용하였다. 그 결과 이윤추구와 같은 욕망이 합리적 경제활동을 위한 긍정적 동력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지게 된 것이다. 다만 공적인 이익을 추구한다는 명분하에서만 모든 이해추구와 욕망의 실현은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 주도하의 경제개발이 효과를 거둔 것이나 IMF 경제위기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희생정신 등은 이를 뒷받침 해주는 현상이다. 유독 ‘가진 자’와 ‘튀는 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강한 우리 사회의 특성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개인은 공적인 규율 속에 묻혀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서구의 자본주의 정신에 견줄만한 그 무엇이 전혀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근거이기도 했다. 뚜 웨이밍 하버드대 교수는 이를 ‘유교적 윤리’라고 명명한 바 있다.[6] 개신교의 금욕주의적 전통처럼 아시아의 유교 전통 속에서도 절약, 근면, 교육 그리고 금욕생활을 이끄는 규율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유교윤리의 전통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맥락과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을 동일시한 것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무엇보다 서구의 자본주의를 보편적인 현상으로 규정하여 모든 것을 끼워 맞추려는 시도는 서구 중심적 편견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1990년대 이후에 불어닥친 동아시아 경제 위기 상황을 유교적 전통가치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는 모습은 이를 반증해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국민 개개인의 근면함과 절제하는 생활태도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의 원동력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유교적 금욕주의는 기업의 적극적인 이윤추구와 자본축적을 위한 합리적 추동력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라 기존 체제와 집단의 목적을 위해 개인의 욕망을 자제하는 수동적인 방식으로만 사용되었다. 고도 성장기 한국의 경제발전이 사기업이 아닌 권위주의적 정부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기간 동안 국가라는 대의 앞에 개인의 욕망은 당연히 억제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는데, 유교윤리는 이를 정당화하는데 필요한 규율의 근거가 되었다. 개인의 희생과 헌신의 미덕은 결국 산업화 과정의 어두운 단면을 덮기 위해 강요된 규율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이것은 이윤추구와 축적으로 대변되는 세속적인 욕망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여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기업활동으로 재생산해낸 서구 자본주의 정신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유교윤리의 금욕주의적 형태가 한국인들의 의식구조에 남아 있다는 증거는 경제위기의 주된 원인을 도덕적 해이와 같은 심정적 요인에서 찾으려는 경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위의 청백리와 관련된 이야기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유교적 세계관의 실천윤리는 개인의 욕망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에 핵심이 있다. 이 말은 반대로 사욕을 채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그 행위의 내용이나 결과는 크게 문제를 삼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명예나 위신처럼 개인의 명분때문에 공적인 규범이나 기업의 경제활동에서 얻게 되는 실리가 무시되고 간과되는 상황에 비교적 관대한 사회의 정서도 이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책임소재가 개인의 수준에만 머무르게 되면, “나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얼마든지 가능해 질 수 있다. 이것은 신이라는 객관적 초월자와의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개신교 윤리와 큰 차이를 보여준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관점 하에서 행하는 행동규율과 자기 스스로 알아서 통제를 해야 하는 것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신탁의 개념을 통해 서구의 기독교적 전통은 근대의 합리적 법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반면 신이나 법처럼 객관적 심판자가 없이 스스로 완전을 추구하는 유교윤리의 전통은 자기규율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다른 사람의 판단에 따라 평가받는 길 이외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 때문에 유교윤리의 대부분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치와 덕목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삼강오륜과 같은 유교의 핵심윤리는 타인에게 행해야 할 덕목을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역으로는 상대방으로부터 받게 될 평가를 대비한 처세의 원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구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비인격적인 규범에 따른 규율을 강화시켰던 것과는 달리 유교적 세계관은 매우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규율의 방식을 정착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연줄과 인맥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이민교회의 딜레마[7]

 

한인이민자의 약 60%정도가 교회와 관련이 있다는 통계 보고가 있다.[8] 그 중 30%정도는 이민 이후 교회에 출석하게 된 새로운 교인들이라고 한다. 이민교회가 단순히 종교활동을 위한 신앙공동체의 역할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민생활의 필요를 제공하고 도와주는 봉사단체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면서 생긴 상황이다. 한인이민교회의 성격을 종교 기관임과 동시에 한인 이민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민속적(ethnic) 조직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9] 특히 한국의 정치상황과 주변의 정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현실참여적 성향을 띠던 초기 이민교회와 달리 1965년 이후 이민자들에게 교회는 생존에 필요한 물적, 정서적 자원을 제공하는 공급처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이민교회는 구성원의 요구에 부합하는 종교소비자 중심의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교회의 성장에 대한 관심과 욕구, 이민교회 수 증가, 그리고 이민교회간 경쟁은 이를 부추기는 요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민교회의 종교적 성향이 점차 개인의 구원문제에만 초점을 두는 사사화(Privatization)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10] 주변부로 고립된 이민공동체를 주류사회와 연결시키는 고리의 역할을 하기 보다 오히려 게토화(ghettorization)된 공동체의 삶을 합리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회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청교도 정신에 기반한 공적윤리가 교회를 통해 이민사회에 접목될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한인이민교회가 이민자들의 필요에 맞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에 머물게 됨에 따라 종교의 중요한 역할인 욕망의 규율방식에 있어서도 한계를 갖게 되었다. 한인이민공동체가 공적인 영역에서 고립되어 있다는 것은 결국 정치영역에서 시민으로서의 위치가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의미이다.[11] 때문에 대개의 관심은 사적 영역인 경제적 생존의 문제에만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민생활의 성공적인 모습을 경제적 안정과 자녀들의 교육에서 찾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종교소비자인 이민자들의 수요가 생존과 교육의 문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공급자인 이민교회의 서비스 제공이 매우 사적인 영역에 집중될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따라서 개인적인 경제활동의 욕구가 가족이라는 범위 안에서 신앙적으로 정당화되는 상황을 이민교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출애굽의 여정이나 가나안에서의 정착과정을 통해 얻은 신앙의 교훈을 이민자의 삶과 연관시키는 경우에 언제나 축복의 결실이 안정된 가정생활과 자손의 번영으로 귀결되는 것은 그 일례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개인의 이윤추구와 자본축적의 욕망을 정당화시킨 것에 있어서는 서구 개신교 윤리의 규율방식과 일면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사적인 경계 안에서만 허용된 욕망이라는 점을 빼면 말이다. 반면 공(公)을 위해 개인의 욕망을 철저히 규제했던 유교윤리에 비해 규율은 다소 약화된 모습이다. 주류사회로부터 다소간 고립된 이민공동체에게 공개념은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을 지배할만큼 크게 작용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욕망의 규제가 어디까지나 가족이라는 사적영역에 국한되었던 결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소명’이라는 직업윤리 보다는 ‘운명’이라는 현실순응의 방식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이민공동체가 주류사회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고 글로벌화된 시대의 흐름에 부합한 시민의식을 고취하는데 있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민사회가 가족이라는 경계를 넘어 전체 공동체로 확장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는 욕망을 규율하는 방식에서부터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상이 이민교회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1] 마루야마 마사오(丸山 眞男)/김석근 역, <일본정치사상사연구> 통나무, 1995

[2] Max Weber,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Stephen Kalberg ed., Routledge, 2001

[3] 노동의 헬라어 번역인 “포노스 πόνος”는 고난과 불행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낱말이다. 노동이 타락한 인류에게 부과된 신의 징벌이라는 성서의 내용은 전통적 서구사상에서 노동을 부정적이고 부차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4] 이황, “성학십도” <한국의 유학사상>, 삼성출판사, 1991

[5] 차성환, “글로벌 시대 한국인의 숙명적 비극: 전통과 현대의 모순”, <글로벌 시대 한국의 시민종교> 삼영사, 2000

[6] Tu Wei Ming, “A Confucian Perspective on the Rise of Industrial East Asia”, Confucianism and the Modernization of China, v. Hase & Koehler Verlag, 1994

[7] 미국 한인 이민공동체의 경제윤리나 규율방식의 특성에 대해 일반화시킬 만한 연구자료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이민자들이 서구의 윤리적 가치나 한국의 전통적 세계관과 구별되는 특정한 사회문화적 동기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근거를 제시할 자료는 거의 전무하다. 따라서 이민교회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할만큼 특정한 종교적 신념을 이민사회에 제시했을 것이란 가정만 가지고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검증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민교회의 성향과 이민자의 현실조건을 가지고 둘 간의 연관성 속에서 발견되는 사회학적 함의를 살펴보는데 의미를 두고자 한다.

[8] 김찬희, “미국으로 이민 오는 한인의 수와 한인교회의 전망”, <미주 한인교계 연감>, 크리스천헤럴드, 2014

[9] 김계호, “미주 한인교회 백주년 기념 회고와 전망: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청암논단>, 2009

[10] 김계호, 위의 글

[11] “Pew 재단 2012년 보고서(2010 센서스와 퓨 재단 서베이 종합)를 보면 재미 한인중 64.7%가 시민(40.6%가 귀화시민, 24.1%는 미국태생)으로 아시안계의 평균 귀화율 74.1%보다 훨씬 떨어진다. 무엇보다 아시안 이민 그룹 중에 미국 정착에 성공했다는 주관적 평가나 미국에 동화한 지표는 한인이 가장 낮은 편이다.” 이윤모의 “한인 미국 이민 110주년과 도전” <새로이포럼> 자료참조

직업으로서의 목회: 섬기는 지도자상

1. 직업과 소명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Max Weber)는 1917년과 1919년 세계1차대전의 막바지에 접어든 시기 뭔헨대학의 진보학생단체인 ‘자유학생연합’을 대상으로 ‘직업으로서의 정신노동’에 대한 두번의 강연을 한 바 있다. 첫번째 주제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이었고, 두번째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1] 학문과 정치라는 두개의 주제를 통해 베버는 당시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진단과 처방을 내렸다. 이는 시대적 문제에 대한 타개책과 방향제시에 갈망하던 젊은이들에게 냉철한 학술지침서이자 예언자적 선언문과 같은 것이었다.

두 강연의 주제가 공통적으로 “직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도 이러한 시대적 갈망과 무관하지 않았다. 원문인 독일어로 ‘직업’은 ‘Beruf’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알려진대로 독일어의 ‘Beruf’는 외적인 생계활동으로서의 직업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적인 ‘소명의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신에 의해 부여된 과업이라는 의미에서 직업은 노동과 일이라는 행위에 윤리적 의무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베버는 두번의 강의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학문과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다는 말은 ‘그것들을 위해 산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들로 먹고 산다’는 뜻인가?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목회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집단이 형성되었다. 오늘날 성직자로 구분되는 직업분류에 속한 이들이다. 교회라는 작업장에서 종교행위와 관련된 특정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베버의 질문처럼 현대의 전문 목회자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 보면 어떨까? ‘직업인으로서 성직자 혹은 목회자는 목회를 위해 사는 것인가 아니면 목회를 생활수단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인가?’ 이 글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을 제시하고자, 막스 베버의 소명윤리라는 개념을 통해 직업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지도자로서의 덕목을 살펴 보는데 목적이 있다.

 

2.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제도적 교회의 정착은 종교지도자들이 점차 목회를 생업으로 하는 직업 목회자의 유형으로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목회자가 소명의식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갖지 않는다면 이전에는 없던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그만큼 목회자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목회라는 직업적 행위에 대해 일종의 의무감을 지닐 필요가 생긴 것이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근간을 이러한 소명의식에서 찾은 바 있다. 곧 신의 부름에 응하고 그것에 복무하는 것을 종교적, 윤리적 의무로 생각하여 헌신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신교의 핵심 윤리로 보았다.[2] 마찬가지 논리로 <직업으로서의 정신노동 강연>에서는 한 사람의 지도자에게 무엇보다 요구되는 자질을 바로 이러한 신교 윤리에 부응하는 소명의식에서 찾고자 했다. 그렇다면 과연 소명의식이란 무엇을 지칭하는 말일까? 베버는 이를 두 가지 의식으로 개념화시켰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의식의 결과로 인해 행위의 윤리적 지향성은 타협하기 어려운 상반된 원칙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3]

그 하나는 내면적 신념에 기초한 소명의식이다. 소명은 밖으로부터 주어진다기 보다 신앙 혹은 신념을 통해 스스로 갖게된 내면적 믿음이라는 생각이다. 때문에 자신의 행위에 대해 외부로부터의 어떤 보상이나 제재를 고려하지 않고도 당연히 해야한다는 윤리적, 도덕적 의무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로부터 베버는 신념윤리의 원칙을 도출해 내는데, “기독교도는 올바른 행동을 하고 그 결과는 신에게 맡긴다”라는 의식 속에서 책임 보다는 순수한 신념에 기초한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 그 특징이라는 것이다. 행여 순수한 신념에서 나온 행위가 의도하지 않은 나쁜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그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 혹은 신에게 돌리려는 태도가 이에 해당한다.

반면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신념을 외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에 대한 책무로 받아들이는 소명의식이다. 신념윤리가 행위의 결과보다는 선한 내면의 의식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에 반해서, 책임 윤리는 예측할 수 있는 행위의 결과에 대한 엄중한 책임에 더 집중한다. 때문에 행동의 결과가 초래할 현실의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신앙을 개인의 내면적 영성에서 바라보는 것이 신념윤리의 소명의식이라면, 책임윤리의 원칙은 현실의 세속적 요구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베버 스스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신념윤리는 무책임하고 책임윤리는 무신념과 동일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소명의식의 지향이 다름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차이를 개념적으로 구분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소명의식 가운데 이렇게 서로 다른 윤리적 원칙이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직업으로서 목회를 해야하는 전문목회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직업이라는 소명의 의미 속에는 “왜 목회를 하려하는가?”라는 신념의 문제와 “어떻게 목회의 목적을 성취하여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라는 책무의 서로 다른 질문을 동시에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라는 신앙공동체의 지도자로서 목회자에게 이 질문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것도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 아니면 보완과 절충의 길을 선택하는가는 오직 목회자 자신에게 남겨진 몫이다. 문제는 신념과 책임이라는 상반된 윤리적 원칙이 대립할 때 발생한다. 지도자가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신앙공동체의 성격에 심연과 같은 깊은 차이가 생겨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교정책과 관련된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몇년 전 한 선교단체는 특정 지역에 대한 국가의 해외여행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선교에 대한 하나의 원칙만 고수하여 선교여행을 강행한 일이 있었다. 당시 선교단체는 기독교가 자리 잡지 못한 지역에 선교하는 것은 당연한 교회의 소명이고, 따라서 다소간 위험의 요소가 있을지라도 우선되어야 할 기독교인의 사명이라는 신념을 천명한 바 있다. 과연 국가의 요청을 배제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선교를 감행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신념윤리를 따르는 사람에게 이 질문은 매우 불신앙적이거나 도전을 두려워하는 비겁한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법준수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고, 선교 목적에 대한 수단의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어떠한 윤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생명을 위해 생명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끝없는 논쟁만 낳을 뿐이기 떄문이다. 선한 신념에서는 오로지 선한 것만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은 순진한 발상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도자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공동체는 언제나 불안의 요소를 안고 갈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에만 집중하게 되면 방향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거나 정체될 가능성이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변함이 없는 원칙주의자들만이 득세하는 세상은 베버의 말대로 “쇠창살 없는 우리”와 다름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암울한 시대를 거슬러 가슴으로 자신의 순수한 열정을 제시하는 신념의 지도자가 없다면 그처럼 불행한 것이 또 있을까? 위험과 고난의 순간을 견디고 이겨낸 선교사들의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날 교회의 위기를 논하는 것 조차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소명의식의 두가지 서로 다른 윤리적 원칙들 간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하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 때문에 목회를 소명으로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능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윤리적 역설의 자각이라는 점은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 한 발자욱 더 나아가 베버는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 만이 소명을 가진 리더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목회자에게 필요한 소명의식은 무엇이며, 지도자로서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길은 무엇일까?

 

3. 지도자의 덕목

현대 개신교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는 대개 교회가 정한 교리와 장정의 절차적 원칙에 근거한 민주적이고 합리적 성향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시스템이나 조직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소규모의 개교회에서는 여전히 전통이나 관습 혹은 선례를 중요시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작 교회 내부의 실질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 보다 중요한 부분은 바로 목회자와 교인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교회내 지도자인 목회자와 교인의 관계는 베버의 구분에 의하면 카리스마적 리더쉽의 유형에 가깝다. 카리스마적 목회자가 자신의 신념을 성도들에게 호소하고, 교인들은 이에 대해 반응하는 형식이 그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를 배출하고, 권위를 얻은 지도자의 유능한 리더십이 얼마나 큰 성과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주목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야 할 부분은 지도자의 권위가 아무 조건없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목회자가 교회 안에서 성도들로부터 권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베버는 정당성을 위한 기초를 세가지 이념형으로 구분한 바 있는데, 첫째는 전통에 의한 정당성, 둘째는 법의 절차적 원리를 중심으로 한 합리적 정당성, 셋째는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자질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정당성이 그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베버가 민주적 리더십을 카리스마적 권위의 한 유형으로 보았다는 사실이다.[4] 민주적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 흔히 법과 절차적 정당성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베버는 오히려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이를 추종하는 대중의 관계 속에서 보았던 것이다. 그 결과 지도자가 어떤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는가와 지도자의 리더십이 공동체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관심 대상으로 남게 된다. 따라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내면적 정신과 윤리적 태도가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베버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세가지 요소를 열정(Passion), 책임감(Sense of Responsibility), 균형적 판단(Judgment)이라고 정의내린 바 있다.[5] 이는 종교지도자인 목회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가능하다고 믿는다. 열정은 소명의식을 가진 지도자가 목회를 하는데 필요한 심리적 원천이라 말할 수 있다. 영어로 열정을 뜻하는 Passion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 얻은 예수의 고통’과 일반적으로는 ‘이성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감정’의 두가지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 결국 예수의 고통을 감정이입하여 스스로 공감하고자 하는 강력한 감정이 바로 열정이다. 때문에 열정은 개인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적 충동이라기 보다 오히려 종교적 신념이나 교리에 의해 규율되는 차가운 열정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같은 맥락에서 목회자의 열정은 단순히 목회적 신념이나 이상을 추구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과 그 결과까지도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만큼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자질 가운데 책임감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베버는 목표의 설정이나 목적의 가치는 언제나 수단과 방법을 통해 조정되고 재평가되며 재설정되어야만 한다고 보았다.[6] 지도자가 가져야 할 소명의식은 신념에 헌신하되, 그것이 미칠 결과와 그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성과를 고려하여 타협과 재조정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계시라는 분명한 목적의식과 정당성을 무기로 대다수 교인들과 재조정이나 타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려 하거나 무시해 버린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지도자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목표나 신념 그 자체도 언제나 결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일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 때문에 지도자의 책임감은 단순히 결과에 대한 책임 만이 아니라 신념의 도출과정으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실현되는 전과정에 이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흔히 민주적이거나 도덕적이라는 말은 신념의 선함이나 결과의 성취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과정 중에 얼마나 자유로운 조정과 타협이 가능했는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책임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가를 분명히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지도자의 균형적 판단이다. 이는 내적인 집중력과 평정심 속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능력이자, 베버에 따르면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다.[7] 만일 지도자가 스스로 모든 것에서부터 객관적으로 거리두는 능력을 상실해 버린다면, 공동체에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베버는 지도자의 허영심을 가장 큰 내면의 적으로 지적한 바 있는데, 허영심은 대의를 향한 헌신은 물론 지도자가 스스로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하는 욕구처럼 공동체를 해치는 강력한 힘도 없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균형적 판단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의 가르침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마 16:24)’ 제자의 도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동안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8] 사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요 10:10)”는 예수의 가르침은 지도자의 자질을 지탱해 주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소명의식을 가진 지도자의 자질과 덕목은 섬기는 지도자가 되기 위한 요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회를 소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현실은 순수한 신념의 실현과 책임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이상적 현장이 아니다. 개인의 삶과 결부된 생활의 문제로부터 공동체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그래서 현실과 타협하거나 아니면 현실로부터 도피하라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스스로 목회에 대한 소명을 갖고 있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명의식은 잊어버리고 목회로 먹고 사는 직업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바라보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소명에 대한 진지한 질문으로 현실의 두터운 벽과 마주 선 목회자들도 있다. 그들 중에는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장벽에 한없이 작아져서 낙심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베버의 말을 빌면, 목회는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균형적 판단을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과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매우 더디고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래서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지도자를 베버는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자신이 가진 것에 비해 현실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놓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외칠 수 있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다.[9] 바로 이런 사람만이 목회에 대한 ‘소명’을 가진 자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1] 막스 베버/전성우 역, “탈주술화 과정과 근대: 학문, 종교, 정치”, <막스베버 사상선집 1>, 나남출판, 2002.

[2] Max Weber,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and Other Writings, Penguin Books, 2002

[3] 막스 베버/최장집 역, <소명으로서의 정치>, 후마니타스, 2011

[4] 막스베버/최장집 역 (2011), 25

[5] 막스 베버(2002), 337

[6] 막스 베버/최장집 역(2011), 90

[7] 막스 베버(2002), 338

[8] Robert K. Greenleaf, Servant Leadership: A Journey into the Nature of Legitimate Power and Greatness, 2002, Paulist Press

[9] 막스 베버(2002), 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