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바둑 용어 중에 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어로는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상태라는 뜻인데,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완전히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반대로 완전히 자기 돌이 죽었을 때는 사석(死石)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죽은 돌과 달리 반전을 통해 집을 얻게 되면 그 때 완생(完生)했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미생은 아직 완전하지 않은 미완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죠. 경우에 따라 죽을 수도 있고, 반대로 완전히 살 수도 있는 미결정의 상태라는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다 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직 살아가야 할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사석과 완생의 구분만 있을 뿐이죠.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그날은 시간의 끝, 흔히 종말을 뜻합니다. 남아 있는 시간이 더이상 없는 때입니다. 그날 미생으로 살아온 우리의 운명은 죽음(사석)이냐 아니면 영원한 생명(완생)인가가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미생으로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완생의 그날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가의 질문입니다.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 예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을 보십시오. 당대로 보면 요한은 뭇사람들에게 인정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유명인사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의 말씀은 세례요한을 결코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에 불과한 존재라고 명확히 금을 긋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보낸 목적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이 믿게 하기 위해 증거하는 도구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 아니라 단지 그 빛을 증언하기 위해 선택 받은 자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요한의 역할은 주연이 아니라 주인공을 돕는 조연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완벽하게 보였는지는 몰라도 요한 역시 우리처럼 미생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던 셈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선택입니다. 그는 결코 사석의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만일 세례 요한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던 대중적 인기에 혹하여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스스로를 빛으로 생각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결국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그를 따르는 무리 역시 참빛을 보지 못하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되었을 겁니다. 모두가 사망의 골짜기를 넘나드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비극이 일어났을테니까요. 자기 의에 사로잡혀 진리를 벗어나 잘못된 방향으로 백성을 인도한 지도자들이 역사 속에서 어떤 종말을 맞이하였는가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믿는 교만이 가져올 결과는 언제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이 도구로 선택 받은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오실 그리스도의 신발끈을 바라 보지도 못한다고 말할 만큼 스스로를 철저히 낮추고 비워서 빛이신 주님만을 높여 찬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참 빛을 증거하는 자의 모습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를 빛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마태복음 5장 14절을 보면, 주님께서 우리를 가리켜 세상의 빛이라고 지칭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도 한 사람이 혹은 주님의 교회가 그 자체로 세상의 빛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빛을 담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죠. 양초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양초가 빛을 내는 것 같지만 실상 양초 스스로는 불의 도움없이 결코 빛을 낼 수 없습니다. 똑같은 이치이죠. 우리 안에 참 빛인 주님의 말씀을 담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우리 스스로는 세상의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생인 요한이 완생이 되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빛의 증언자가 되는 것이지요. 증언은 단순히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입으로 전하는 것만이 증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나’라는 도구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 증언자의 삶입니다. 양초가 빛을 내기 위해 자기를 녹여 없애 버리듯 그리스도의 말씀을 드러내기 위해 자기 자신은 완전히 비우고 낮추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 때 세상은 나는 죽고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빛의 증언자요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완생을 준비하는 자의 진정한 삶인 것이지요. 그래서 축복된 삶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