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비사염

<천자문>에 ‘묵비사염(墨悲絲染)’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의 원래 뜻은 묵자가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탄식했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군복무를 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군 영창에 들어가 있는 아들을 속히 귀가 시켜 준 것에 대한 답례라며, 한 단기사병 어머니가 소속 부대원 몇명을 점심 초대한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기는 했지만, 내심 간만에 근사한 식사 한끼 해야겠다는 생각을 모두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약속한 날이 되어서 한 식당으로 향한 우리 일행은 생각했던 것 보다 작고 허름한 식당 모습에 조금 실망했습니다. 게다가 식당의 음식 역시 매우 평범한 것이어서 오히려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자 그 단기사병의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는 것이었습니다. “듣기로 가족과 멀리 떨어져 근무하는 군인들에게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상처럼 제일 근사한 것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영창이라고는 하나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아들이 가장 그리웠던 것이 바로 집에서 내가 해주는 밥상이라고 합디다. 그래서 우리 아들 보다 오랫동안 나라 지키느라 고생하고 계시는 여러분들께 이렇게라도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자신의 속내를 들킨 것 같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치 늘 자신은 세상에 물들지 않은 의로운 사람처럼 믿고 살아가지만 삶의 중심에 말씀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금새 흔들리고 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진 세상이 시대의 아픔에 탄식할 줄 모르고 불의와 부정으로 얼룩질 수밖에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묵비사염처럼 주님이 죄악에 물든 시대를 탄식하며 절규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바라보시면서 똑같은 탄식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세대의 풍조를 좇아 물들어가기 보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