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부자가 되는 법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세상이 모두 내 것이라는 듯 주먹을 쥐고 있지만, 세상을 떠날 때에는 ‘보아라, 이렇게 빈손으로 가지 않느냐’는 듯이 손바닥을 편다.” 이와 비슷한 뜻으로 우리 옛말에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사실 이 말은 고려시대 명승 중 하나인 나옹화상(懶翁和尙)의 누이가 그에게 읊었다는 부운(浮雲)이라는 선시의 일부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이것이 인생이다 
태어남은 어디서 오며 죽음은 어디로 가는가
태어남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인데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實)함, 고정된 형태가 없나니, 태어남과 죽음도 모두 이와 같다네
여기 한 물건이 항상 홀로 있어, 담연히 생사를 따르지 않는다네"

이 시는 살고 죽는 것을 마치 한조각 구름이 일고 사라지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자체로는 쉽게 꺼지고 말, 꿈같은 것일 뿐인데 여전히 사람들은 그 당연한 이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헛되고 허망한 일이라 고백했던 전도서의 고백 역시 이러한 이치의 연장선 속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인생을 현명하게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내일이면 꺼져버릴 화려한 욕망의 빛을 좇는 불나방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는 참된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현명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어느 날 예수께 한 사람이 나아와, 형제간의 재산 상속 문제로 겪는 어려움을 고백합니다. 그리고는 올바른 판단을 자기 형제에게 내려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가르침의 핵심이 현실에서 얻고자 하는 재산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말씀은 죽어서는 한 줌도 쥐고 가지 못할 물질적인 부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쌓게 될 숨은 보화에 관련된 것을 강조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한 부자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소출을 올린 부자가 배부른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넘치도록 풍부한 수확물을 창고에 보관하고서는 어떻게 즐기며 살 것인가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마치 사업이 잘 되서 은행 잔고가 늘어나고, 투자한 주식이 소위 대박이 나고 구입한 주택시장이 때아닌 호황을 누릴 때, 부푼 가슴을 누르며 이 넘쳐나는 이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희망하는 순간이 이 때가 아닙니까?

그런데 맥빠지게 거기에 대고 주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쌓아두고 즐길 것 생각하면 뭣하나? 오늘밤 네 운명이 끝이 날터인데.’ 자신을 위해서 쌓아 둔 재물, 운명이 오늘로 그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제목이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그렇다고 부를 누리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 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만일 더 많은 수확을 거두고 그것을 위해 더 많은 땀과 노력을 흘리는 이윤창출 행위까지 부정해 버린다면 아마도 세상은 넝마주의나 회의주의 같이 태만과 방종으로 가득차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때문에 이 비유의 핵심은 부자가 되고 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부자가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곧 어리석은 부자인가 아니면 현명한 부자인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부자에 대한 정의도 담겨 있습니다. 부자를 규정하는 현명함과 어리석음의 기준이 부를 쌓는 목적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위해서 유한한 이 세상에 쌓아 두는 부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쌓는다면 분명 그것은 현명한 선택임을 밝혀 주고 계십니다. 비록 세상에 화려하게 비치는 모습은 아니지만, 하늘 나라에 쌓는 숨은 보화야말로 영원을 살아가는 현명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한치앞도 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오직 죽어 없어질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사는 삶이라면, 그것보다 허망한 것도 없을 겁니다. 공수래 공수거의 한조각 구름같은 삶을 깨닫지 못한 결과입니다.그러므로 참 지혜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보이지는 않으나 숨은 보화처럼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보화를 심는 일이란 게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나 자신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교회와 공익을 위한 곳에 자신의 재산을 환원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 문제가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차라리 자식한테 물려주는 한이 있어도, 힘겹게 벌어들인 재산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나눠 준다는건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인생의 순례자입니다. 여행길 얻는 모든 것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대로 사용하다가, 때가 되면 다시 돌려주고 떠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모두가 인생의 동반자들입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덕목이 바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리 모두가 그 뜻 가운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아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현명한 부자로 살아가는 법임을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