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길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해 놓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의 양식인 말씀은 우리가 완전히 받아 먹은 것처럼 내 안에 소화를 시켜 버리면 없어져 버려야 합니다. 먹은 음식은 소화가 되어서 영양분이 되면 그만입니다. 비우면 우리 영육이 채워지는 이치가 바로 이것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먹은 사람은 입에 말씀으로 가득차 내뱉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잘 먹고 소화시켜 잘 사는 사람입니다. 잔에 물을 채우려면 먼저 비워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사람이 걷기 위해서는 발이 땅에 고정되어 있어서는 안됩니다. 땅에서 발을 떼어 공간을 비워야 움직일 수 있는 법입니다.

노자 도덕경 48장에 보면 “爲學日益 爲道日損” 이란 구절이 나옵니다. 풀이하면 지식을 쌓는 일은 하루하루 쌓아가지만 길을 가려면 날마다 덜어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매일 공부하면 분명 우리 가운데 지식은 축적될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앎의 길이란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워낼 수 있을 때 얻는 것이란 뜻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제자가 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을 자기 비움이라고 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고향, 자기 친척, 자기 집에서 ‘자기’를 다 비워내는 겁니다. 소유하려는 욕망을 다 내려놓는 겁니다. 그저 주님께 맡기는 믿음만 있으면 족하다는 것이지요. 제자들을 떠나 보내시면서도 예수님은 비움의 길을 강조하셨습니다. 대신에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생활은 소유하기가 쉽지 않은 나그네 여정이지만, 대신에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힘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자기 능력, 자기 지혜, 자기 물질에 의지하다 보면 주님의 권능과 기적이 임하는 것을 보기 어렵습니다. 주시는 이도, 행하시는 이도 주님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진정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신앙도 결국은 비움의 길입니다. 우리가 채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채우실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비워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같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자기를 비우는 연습을 날마다 행하게 하소서. 그리고 저희를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빛과 소금을 담기 위해 먼저 저희를 깨끗이 비우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비움의 길을 묵묵하게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