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길

우리 말에 ‘살림’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말 뜻 그대로 살린다는 의미의 명사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를 잘 해결하는 행위에서 기업이나 국가를 경영하는 것까지 다 포괄하는 말입니다. 경제적 의미에서 볼 때, 살림은 필요를 효율적으로 잘 채워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먹고 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면서 그로 인해 피해가 발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흔히 살림을 잘 한다는 표현이 이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살림을 잘 못하면, 지금 당장 먹고 사는 문제는 물론이고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처지에까지 놓이게 될 겁니다. 예컨대, 최근 한국의 국가부채가 640조가 넘어갔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것은 국가의 살림살이가 방만하게 운영되어왔다는 지표이고, 또 이런 식으로 계속되다보면 결국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해 집니다.

살림살이를 못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개인의 생명이나 가계에 위협이 되듯, 기업이나 국가도 잘못된 살림살이로 인해 궁극에는 붕괴의 위험에 빠지게 되는 법입니다. 결국 살림이 아니라 죽임이나 멸망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대개의 경우 살림을 잘 해서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는 판단을 잘 해야 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비용과 수익, 곧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잘 관리하는 겁니다. 꼼꼼히 따져 보고 그 명분과 실익을 잘 계산해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너무 많거나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대개 소비나 지출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삶의 대부분 영역에 다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사람들은 손해 보며 밑지는 일을 하려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렇게 해야 보통 잘 사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교육에 대한 투자가 그렇습니다.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수입보다 많아서 살림살이가 빠듯한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녀교육에는 공을 들입니다. 교육열이 높은 까닭도 있고, 또 언젠가는 투자한만큼의 결실이 맺어질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OECD 국가중 학자금 대출 이자가 가장 비싼 한국의 대학진학률이 거의 80%에 이른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 주는 증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수지타산 맞지 않는 상황조차도 세상을 잘 사는 법 중의 하나라고 믿고 있는 결과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실의 살림살이에는 그렇게도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왜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일에는 그토록 인색한 것일까요? 왜 세상 일에는 그렇게 과도할만큼 관심을 두면서 생명을 다루는 신앙 문제에 대해서는 남의 일처럼 방관하고 지내는 것일까요? 사실 누가복음 14:25-33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은 결국 이 질문에 관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살림살이를 다른 말로 제자가 되는 길이라 표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우리에게는 곧 영원한 생명의 길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누군가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것은 그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살림의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의 옷으로 입히고, 말씀으로 생명의 양식을 먹임으로 사람을 살게 만드는 살림살이와 같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살림살이가 그렇듯, 하늘의 생명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 속에서 행하는 살림살이 역시 지혜롭게 운용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방만하고 무분별한 살림살이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살림이 아니라 죽임 혹은 멸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살림을 위해 치루어야 할 비용이나 대가가 무엇인가 입니다. 보통 일상의 삶은 자기 자신, 자기 가정, 자기 기업, 혹은 자기의 국가와 민족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비용을 치루고 살림살이를 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살림살이는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자기와 관련된 모든 것을 댓가로 내놓아야 합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자기와 자기 소유를 다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세상과는 완전 딴판의 살림살이입니다. 이렇게 살면 세상에서는 살림 못한다고 핀잔이 아니라 죽는다고 아우성일텐데, 주님은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살림살이라고 말씀합니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그래서 자기와 자기 소유를 버리는 것을 주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 표현하셨습니다.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입니다. 만일 이렇게 살림살이를 하지 못하면, 그 끝은 죽음과 멸망 뿐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 이유를 주님은 우리에게 토기장이와 질그릇의 관계를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질그릇은 토기장이의 작품입니다. 진흙을 빚어서 만든 도구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생기를 불어 넣어 우리를 살게 하셨습니다. 그 분의 영이 우리를 살리는 힘입니다. 먹고 마시며 입는 것은 육신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은 흙에서 온 것처럼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면 그 뿐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그 분의 영으로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분명 우리의 생명은 그 분의 손 안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살림의 길은 영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것 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육신에 속한 자기 욕망의 십자가를 내려놓고 영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 나서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우리에게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주님께 두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가족과 자기가 가진 소유를 그저 포기하라는 현실부정의 말씀이 아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 자신을 살리는 살림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