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율과 욕망: 경계에 갇힌 이민교회의 딜레마

1.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근대 일본의 대표적 정치사상가인 마루야마 마사오는 서구 자본주의의 핵심을 인간이 가진 욕망추구가 사회적으로 배척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는 사회구조에서 찾은 바 있다.[1] 물론 욕망의 무한정한 향유가 허용된다기 보다는 합리적 규율의 방식 안에서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개념은 이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막스 베버가 사용한 용어이기도 했다.[2] 그에 따르면 근대 이후 서구사회에서 이윤추구나 부의 축적과 같은 인간의 욕망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특수한 조건 하에서 규율화된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통사회처럼 돈을 벌기 위해 투기나 고리대금, 혹은 약탈과 편법 동원도 마다않는 탐욕적 경제행위가 아니라 노동의 합리적 운영방식이나 근검 절약과 같은 개인의 생활규율에 의해 이윤과 축적의 욕구도 정당화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본능적인 무한정 욕구 충족이 아니라 규율에 의해 매우 절제된 욕망의 허용이 서구 자본주의를 가능케 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끊임없이 구성원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경쟁의 세계에서 개인이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고 탁월한 경쟁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욕망의 추구는 어느 정도 필연적인 것처럼 보였다. 이를 원활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윤을 추구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영리행위의 욕망 자체가 적극적으로 정당화될 필요가 있었다. 자본주의가 이전 사회와 다른 독특함이 바로 여기에서 발견된다. 노동에 대한 개념만 하더라도 근대 이전까지는 천한 신분의 사람들이 담당해야 할 부담스럽고 고된 일로 여겨지던 것이[3],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하늘이 부여한 성스러운 의무로 자연스럽게 인정되기 시작했다. 노동 자체가 삶의 중요한 목적으로 그 의미가 전이된 것이다.

 

부와 재산의 축적에 대한 이해도 큰 변화가 있었다. 전통적 사고로 볼 때 돈을 벌고 모으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자랑스러워하거나 격려할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한계를 넘어서는 소유욕은 죄스런 것이라 여겨져 기독교 신앙인들은 세속적 이익을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프로테스탄트는 남을 희생시키고 얻은 비겁한 욕망으로 여겨지던 영리행위조차 소명이라는 의무감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윤리적 정당성을 제공해 주었다. 나아가 개신교 윤리는 지속적인 이윤의 축적을 위해 더 열심을 다해 움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추구해 나가도록 요구했다. 근검절약과 근면, 계산과 계획적 태도, 금욕과 절제와 같은 덕목이 체계적인 삶의 중요한 태도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베버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사회에 정착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의 종교적 금욕주의라고 주장하였다. 이윤추구와 자본축적을 위한 활동이 단순한 욕망의 발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게 소명의 성취를 위한 구원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개신교의 금욕주의적 규율이 이윤축적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합리적으로 가능하게 만든 사건은 욕망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명확한 구별을 강조하던 이전 사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서구 자본주의만의  특이한 사항이었다.

 

2.     유교적 윤리와 거세된 욕망

 

유교적 세계관의 지배적 영향을 받아온 한국 사회는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삶의 가치로 여겨져 왔다. 인욕(人欲)이나 자기의 사욕(私欲)을 막는 것이 곧 하늘의 이치(天理)를 이루는 행위라는 주장은 그 실천윤리의 핵심이었다.[4] 소인과 군자를 구분하는 차이도 욕망의 제어 여부에 달려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욕망의 제어는 단순히 법적제재나 규율에 의해 금지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심성의 존재여부 자체가 결코 인정되지 않았다. 어떤 조건 하에서도 욕망은 거세되어야 할 대상이며, 이를 드러내는 것은 하나의 죄악처럼 부정되었다.

 

예를 들어 유교적 전통사회의 이상적 관료상인 청백리(淸白吏)의 위상이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예나 지금이나 청백리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기준은 ‘지공무사(至公無私)’이다.[5] 이는 단순히 공적인 의무에 충실하고 사적인 욕구는 자제하라는 뜻이라기 보다 공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사적인 욕망이 없어야 한다는 해석으로 적용되어왔다. 그러다 보니 실제 관료의 성실성이나 업무에 대한 적합도 보다 그가 얼마나 청빈한 삶을 사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경제적 무능력으로 인한 빈곤조차 관료의 도덕적 자질을 높여주는 웃지못할 상황이 발생할 때도 있었다. 공적인 업무 수행능력이 형편없는 경우에도 만일 그가 청렴한 삶을 추구하고 적어도 공무에 대한 마음이 없지 않다고 판단되면 충분히 청백리의 자격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문화의 일반적 정서라 할 수 있다.

 

국가나 기업을 운영하는 관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개인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가의 여부처럼 지극히 인격적이고 내적태도에 머물러 있다는 건 이윤의 욕망추구가 적극적으로 용인되는 자본주의 시대에는 오히려 장애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개인의 이윤욕에 대한 규율의 방식에 있어서 서구의 기독교적 세계관과는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금욕주의적 규율은 인간의 사욕을 적극적인 직업노동의 개념으로 합리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반면에 유교적 세계관은 심정적으로 개인의 욕망을 거세하는 순수한 금욕주의로만 작용하였다. 그 결과 이윤추구와 같은 욕망이 합리적 경제활동을 위한 긍정적 동력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지게 된 것이다. 다만 공적인 이익을 추구한다는 명분하에서만 모든 이해추구와 욕망의 실현은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 주도하의 경제개발이 효과를 거둔 것이나 IMF 경제위기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희생정신 등은 이를 뒷받침 해주는 현상이다. 유독 ‘가진 자’와 ‘튀는 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강한 우리 사회의 특성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개인은 공적인 규율 속에 묻혀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서구의 자본주의 정신에 견줄만한 그 무엇이 전혀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근거이기도 했다. 뚜 웨이밍 하버드대 교수는 이를 ‘유교적 윤리’라고 명명한 바 있다.[6] 개신교의 금욕주의적 전통처럼 아시아의 유교 전통 속에서도 절약, 근면, 교육 그리고 금욕생활을 이끄는 규율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유교윤리의 전통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맥락과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을 동일시한 것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무엇보다 서구의 자본주의를 보편적인 현상으로 규정하여 모든 것을 끼워 맞추려는 시도는 서구 중심적 편견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1990년대 이후에 불어닥친 동아시아 경제 위기 상황을 유교적 전통가치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는 모습은 이를 반증해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국민 개개인의 근면함과 절제하는 생활태도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의 원동력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유교적 금욕주의는 기업의 적극적인 이윤추구와 자본축적을 위한 합리적 추동력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라 기존 체제와 집단의 목적을 위해 개인의 욕망을 자제하는 수동적인 방식으로만 사용되었다. 고도 성장기 한국의 경제발전이 사기업이 아닌 권위주의적 정부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기간 동안 국가라는 대의 앞에 개인의 욕망은 당연히 억제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는데, 유교윤리는 이를 정당화하는데 필요한 규율의 근거가 되었다. 개인의 희생과 헌신의 미덕은 결국 산업화 과정의 어두운 단면을 덮기 위해 강요된 규율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이것은 이윤추구와 축적으로 대변되는 세속적인 욕망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여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기업활동으로 재생산해낸 서구 자본주의 정신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유교윤리의 금욕주의적 형태가 한국인들의 의식구조에 남아 있다는 증거는 경제위기의 주된 원인을 도덕적 해이와 같은 심정적 요인에서 찾으려는 경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위의 청백리와 관련된 이야기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유교적 세계관의 실천윤리는 개인의 욕망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에 핵심이 있다. 이 말은 반대로 사욕을 채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그 행위의 내용이나 결과는 크게 문제를 삼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명예나 위신처럼 개인의 명분때문에 공적인 규범이나 기업의 경제활동에서 얻게 되는 실리가 무시되고 간과되는 상황에 비교적 관대한 사회의 정서도 이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책임소재가 개인의 수준에만 머무르게 되면, “나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얼마든지 가능해 질 수 있다. 이것은 신이라는 객관적 초월자와의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개신교 윤리와 큰 차이를 보여준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관점 하에서 행하는 행동규율과 자기 스스로 알아서 통제를 해야 하는 것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신탁의 개념을 통해 서구의 기독교적 전통은 근대의 합리적 법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반면 신이나 법처럼 객관적 심판자가 없이 스스로 완전을 추구하는 유교윤리의 전통은 자기규율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다른 사람의 판단에 따라 평가받는 길 이외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 때문에 유교윤리의 대부분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치와 덕목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삼강오륜과 같은 유교의 핵심윤리는 타인에게 행해야 할 덕목을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역으로는 상대방으로부터 받게 될 평가를 대비한 처세의 원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구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비인격적인 규범에 따른 규율을 강화시켰던 것과는 달리 유교적 세계관은 매우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규율의 방식을 정착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연줄과 인맥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이민교회의 딜레마[7]

 

한인이민자의 약 60%정도가 교회와 관련이 있다는 통계 보고가 있다.[8] 그 중 30%정도는 이민 이후 교회에 출석하게 된 새로운 교인들이라고 한다. 이민교회가 단순히 종교활동을 위한 신앙공동체의 역할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민생활의 필요를 제공하고 도와주는 봉사단체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면서 생긴 상황이다. 한인이민교회의 성격을 종교 기관임과 동시에 한인 이민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민속적(ethnic) 조직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9] 특히 한국의 정치상황과 주변의 정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현실참여적 성향을 띠던 초기 이민교회와 달리 1965년 이후 이민자들에게 교회는 생존에 필요한 물적, 정서적 자원을 제공하는 공급처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이민교회는 구성원의 요구에 부합하는 종교소비자 중심의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교회의 성장에 대한 관심과 욕구, 이민교회 수 증가, 그리고 이민교회간 경쟁은 이를 부추기는 요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민교회의 종교적 성향이 점차 개인의 구원문제에만 초점을 두는 사사화(Privatization)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10] 주변부로 고립된 이민공동체를 주류사회와 연결시키는 고리의 역할을 하기 보다 오히려 게토화(ghettorization)된 공동체의 삶을 합리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회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청교도 정신에 기반한 공적윤리가 교회를 통해 이민사회에 접목될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한인이민교회가 이민자들의 필요에 맞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에 머물게 됨에 따라 종교의 중요한 역할인 욕망의 규율방식에 있어서도 한계를 갖게 되었다. 한인이민공동체가 공적인 영역에서 고립되어 있다는 것은 결국 정치영역에서 시민으로서의 위치가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의미이다.[11] 때문에 대개의 관심은 사적 영역인 경제적 생존의 문제에만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민생활의 성공적인 모습을 경제적 안정과 자녀들의 교육에서 찾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종교소비자인 이민자들의 수요가 생존과 교육의 문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공급자인 이민교회의 서비스 제공이 매우 사적인 영역에 집중될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따라서 개인적인 경제활동의 욕구가 가족이라는 범위 안에서 신앙적으로 정당화되는 상황을 이민교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출애굽의 여정이나 가나안에서의 정착과정을 통해 얻은 신앙의 교훈을 이민자의 삶과 연관시키는 경우에 언제나 축복의 결실이 안정된 가정생활과 자손의 번영으로 귀결되는 것은 그 일례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개인의 이윤추구와 자본축적의 욕망을 정당화시킨 것에 있어서는 서구 개신교 윤리의 규율방식과 일면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사적인 경계 안에서만 허용된 욕망이라는 점을 빼면 말이다. 반면 공(公)을 위해 개인의 욕망을 철저히 규제했던 유교윤리에 비해 규율은 다소 약화된 모습이다. 주류사회로부터 다소간 고립된 이민공동체에게 공개념은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을 지배할만큼 크게 작용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욕망의 규제가 어디까지나 가족이라는 사적영역에 국한되었던 결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소명’이라는 직업윤리 보다는 ‘운명’이라는 현실순응의 방식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이민공동체가 주류사회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고 글로벌화된 시대의 흐름에 부합한 시민의식을 고취하는데 있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민사회가 가족이라는 경계를 넘어 전체 공동체로 확장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는 욕망을 규율하는 방식에서부터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상이 이민교회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1] 마루야마 마사오(丸山 眞男)/김석근 역, <일본정치사상사연구> 통나무, 1995

[2] Max Weber,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Stephen Kalberg ed., Routledge, 2001

[3] 노동의 헬라어 번역인 “포노스 πόνος”는 고난과 불행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낱말이다. 노동이 타락한 인류에게 부과된 신의 징벌이라는 성서의 내용은 전통적 서구사상에서 노동을 부정적이고 부차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4] 이황, “성학십도” <한국의 유학사상>, 삼성출판사, 1991

[5] 차성환, “글로벌 시대 한국인의 숙명적 비극: 전통과 현대의 모순”, <글로벌 시대 한국의 시민종교> 삼영사, 2000

[6] Tu Wei Ming, “A Confucian Perspective on the Rise of Industrial East Asia”, Confucianism and the Modernization of China, v. Hase & Koehler Verlag, 1994

[7] 미국 한인 이민공동체의 경제윤리나 규율방식의 특성에 대해 일반화시킬 만한 연구자료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이민자들이 서구의 윤리적 가치나 한국의 전통적 세계관과 구별되는 특정한 사회문화적 동기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근거를 제시할 자료는 거의 전무하다. 따라서 이민교회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할만큼 특정한 종교적 신념을 이민사회에 제시했을 것이란 가정만 가지고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검증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민교회의 성향과 이민자의 현실조건을 가지고 둘 간의 연관성 속에서 발견되는 사회학적 함의를 살펴보는데 의미를 두고자 한다.

[8] 김찬희, “미국으로 이민 오는 한인의 수와 한인교회의 전망”, <미주 한인교계 연감>, 크리스천헤럴드, 2014

[9] 김계호, “미주 한인교회 백주년 기념 회고와 전망: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청암논단>, 2009

[10] 김계호, 위의 글

[11] “Pew 재단 2012년 보고서(2010 센서스와 퓨 재단 서베이 종합)를 보면 재미 한인중 64.7%가 시민(40.6%가 귀화시민, 24.1%는 미국태생)으로 아시안계의 평균 귀화율 74.1%보다 훨씬 떨어진다. 무엇보다 아시안 이민 그룹 중에 미국 정착에 성공했다는 주관적 평가나 미국에 동화한 지표는 한인이 가장 낮은 편이다.” 이윤모의 “한인 미국 이민 110주년과 도전” <새로이포럼> 자료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