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시겠지만, 제가 사는 버클리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합니다. 후드티를 입고 나서야 하는 정도이고, 낮에도 햇빛은 따갑지만 바람이 가을바람처럼 붑니다. 왠 호강하는 소리라고 생각하실 테지만, 불과 산만넘어가면 엄청난 더위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지역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라스카 한류가 샌프란시스코를 지나가면서 해안가 근처가 주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특별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후라도 꽃에 물을 주지 않으면 금새 타들어가서 말라 죽어버립니다. 장렬하는 태양을 견디기 힘든 것이겠죠. 작년에 박은희 집사님네가 주신 백일홍이 스스로 씨를 내려서 꽃이 필려고 노력중이고 남소자 권사님이 주신 꽃도 한 무리는 사슴에 의해 생기를 잃었지만 다른 꽃나무는 왕성하게 꽃을 피우며 삭막한 저희 집 앞뜰을 나름 꽃밭이라 불리게 합니다.
요즘 하루정도 물을 충분히 주려고 노력하는데 곁에서 더불어 들꽃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꽃을 피워내고 있으니 덩달아 들꽃을 보는 재미에 뽑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라지에 물을 주고 키워내는 꼴이라고 생각하셔도 될 듯합니다.
들꽃도 꽃이니 함부로 뽑아낼 수 없다는 마음이 생기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로 부터 내려온 사람들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복음이 소용없다는 가르침에 마주했습니다. 이 문제가 예루살렘까지 전해졌고, 바리새인 출신 기독교인들이 당연히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라고 자기가 경험한 성령의 능력을 고백하며 이방인들도 당연히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고백으로 할례 논란을 마무리합니다.
복음은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선포하신 예수님의 선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율법이라는 틀이 종교적 권리에 사람들을 판단하는 도구처럼 사용되었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더없이 큰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신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것보다,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겠죠. 그러니 들꽃같은 사람조차도 이쁘게 가꿀 수 있게 인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앞뜰에 물을 주고 들꽃에도 물을 주려고 합니다.
중보기도
장승현 형제가 생각보다 오랜 재활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큰 수술에 큰 재활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이번주에 병원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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