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신학적 완성은 개척한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완성되어갑니다. 많은 질문과 답이 편지로 오갔을 것이고,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던 바울이 효과적으로 각 교회를 치리하는 방법은 편지였다는 것에 놀라울 뿐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바울이 쓴 편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기전과 믿은후, 단순한 행위에 대한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화된 것을 믿기전과 믿은 후로 나누고 있습니다. 이 믿음의 과정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믿음”과 “은혜”는 떨어질 수 없는 단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들이 “믿음을 가지게 되어서” “믿는 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 우리들이 기억해야할 구원의 삶의 모습입니다.
지난 주일에 교회가 매력을 잃은 시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분주함이 한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분주함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냐 하면, 예전은 생활을 위한 분주함이었다면, 이제는 다양하게 접하게 되는 정보로 인한 분주함입니다. 관계를 통해서 정보를 얻던 시대에서 혼자 있어도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 이런 시대에 관계는 단순화 되고, 복잡한 관계는 피하려는게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교회는 이런 의미에서 복잡함을 지금도 나눠야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한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른 신앙적인 본질로서 교회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네, 맞습니다. 복잡한 것을 여전히 나누는 공간에 최대한 최소를 나눌수 있는 교회 공간을 찾아 갑니다. 감정을 소비하지 않고, 가벼운 관계로도 불편함이 없는 곳, 물론 신앙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이런 교회 분위기, 사회분위기에 속에서 우리들이 다시 기억해야할 것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크신 사랑으로” 우리들이 은혜를 받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매력을 잃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큰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중보기도
청년들이 오늘 부터 트리니티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교회소식지는 “토요일 오전”에 보내려고 합니다. 새로운 소식들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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