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내면서, 이렇게 시간이 빨리가는 순간을 경험한적이 있나 싶습니다.
하루를 보내면서, 이렇게 시간이 빨리가는 순간을 경험한적이 있나 싶습니다. 느끼는 분마다 다르겠지만, 일주일이 하루 처럼 느껴집니다. 펜데믹이 끝나면 아무래도 예전 같은 시간을 경험하며 살게될지도 궁금해집니다.
역대기사가는 심판을 보는 사람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 르호보암도 결국은 안정이 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렸다가, 애굽의 침략이라는 시험거리로 다시 마음이 돌아섭니다. 늘 이런 반복이 있는 신앙생활은 곤란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패턴으로 간증도 하고 있고 비슷한 경험을 듣게 됩니다. 왜, 좀 다르게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수 없을까?가 한동안 제가 가졌던 질문중에 하나였습니다. 부흥회에서 듣는 말씀드도, 간증집회에서 하는 간증도, 베스트셀러인 기독교서적에서도 이런 르호보암과 비슷한 패턴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이 치셔서..”라는 고백으로 다시 삶을 일으켰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제발, 내 삶에서는 하나님이 떠나지 않기를, 그러니 늘 겸손하게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되심을 고백하는 삶을 사는게 기도제목입니다. 적어도 이런 패턴을 따르고 싶지는 않기때문입니다.
르호보암 이후에 아들 아비야가 왕위를 물려받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북왕국과 남왕국의 전쟁이 일어나는데, 크게 남유다가 승리를 합니다. 역대기 사가는 분명하게 여로보암에 대한 문제를 지적합니다. 솔로몬의 신하였는데, 반역을 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내리고, 여로보암 곁에는 건달과 불량배가 몰려들었다고 해서, 북왕국을 건달, 불량배 국가로 평가합니다. 그 이유는 8절에 분명히 기록하기를, “너희 신이라고 만들어 준 금송아지들이 너희와 함께 있다고해서, 지금 다윗이 자손이 맡아 다스리는 주님의 나라를 감히 대적하고 있다.” 다시말해, 이방신을 섬기는 건달들이 감히 하나님의 자녀인 다윗의 자손들을 건들였다는 의미입니다.
역대기사가의 평가는 분명하게, 하나님앞에 바로 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갈립니다. 이런 관점에서 적어도 남유다는 여전히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했고, 적어도, 르호보암은 고난속에 하나님께 돌아서는 회개를 보여주었다는 것이 역대기 역사가의 평가입니다.
순간이 모여져서 시공을 초월함으로 역사의 물주기를 만들어냅니다. 이 순간 우리들이 어떤 순간을 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마 후대의 역사가들이 우리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하며 이 순간 순간을 보낸다면 제법 신중해질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이후에 이 역사는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순간을 소중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생각해보기
순간이 모여서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할때, 지금 내가 보내는 순간은 어떤 역사적 기록을 남기고 있을까요? 르호보암처럼 회개하고 돌아왔나요? 회개하기 전에 르호보암 같나요? 아니면 여로보암처럼 하나님을 떠난 다른 삶의 방향을 모색하나요? 이 순간을 한번 어떻게 지내는지 생각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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