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시편25:5)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으련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순간을 늘 만나게 됩니다. 일이 잘풀리지 않으면 좌절하거나, 답답해 합니다. 여기에 마땅히 잘 되던 것들이 잘 따라주지 않으면 심각해 집니다. 예를 들어 잘되던 인터넷이 느려지고, 늘 손에 잡히는 곳에 있던 문서나 책 혹은 필기구들을 찾을 수 없으면 “극한 인내”(?!)를 시험하는 순간을 맞이 하기 까지 합니다. 이때, 내 바탕에 깔려 있는 “인격”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데, 대부분 이런 상황에 “차분히 기다리면서 이 일을 마치려고 할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 잘안됨을 여러가지 기질로 터뜨리게 될지"를 선택하는 기로에 있게 됩니다. 어떤 날은 “아니 내가 왜 그렇게 까지 화를 냈을까?” 싶을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해서 스스로를 혹은 주변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할때가 있습니다. 그냥 우리들의 일상에서 자주 경험할만한 일이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결국 “기다림”에 익숙하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기다리는 자는 기다리게 하는 사람에게 진 것처럼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조바심이 나고, 기다리게 하는 사람은 자신이 누리는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기다림을 왜곡 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기다림은 약자가 지녀야할 마음이 아닙니다. 기다림을 통해 오는 결과 보다 기다림을 통한 유익을 기대하는 것이 우리들이 지금 이야기하는 기다림의 의미입니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도우미에게 패칭 케어 (Patching Care)라는 것을 교육받게 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치료라는 것은 주어진 메뉴얼과 정해진 시간을 두고 하는 것이지만, 패칭케어는 그냥 환자의 상태를 기다리고 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치료에 주력한다는 의미입니다.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만 기다림을 통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기다림에는 조바심은 없고, 기다림이 치료의 최상의 결과를 가지고 온다는 확신을 갖고 하는 치료방법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기자는 “종일 주님을 기다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이 진리로 나를 지도하고 가르쳐 주심을 종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 기다림의 목적은 “주님이 진리로 나를 지도하고 가르쳐 주심”을 기다리는 것이고 “날마다 주님의 도움만을 기다린다.”(공동번역)라는 의미입니다. “나를 구해주시는 하나님, 그분의 진리를 따라 우리를 인도하고 가르치심을 기대하는 것”,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 기다림을 즐길만한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묵상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에서 종일은 “날마다”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반복적이고 끝이 안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주님을 기다림으로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요?
중보기도
박두진 권사님의 치유와 알맞는 계획을 위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속히 해결되도록.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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