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겨 주셨다. 그러나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들린다. (막 4:11)
마가복음 4장부터는 본격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을 가르칩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우리에게 맡겨주셨지만, 바깥 사람들에게는 수수께끼 처럼 들린다고 합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살아서 우리에게 역사할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비유의 포인트는 알아듣는자와 못알아듣는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이들에게는 비유로 하시는 말씀이 수수께끼 같아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등불에 대한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복음을 이해하는 것, 즉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숨겨진 것을, 감추어진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좀 복잡하지 않게 간단하게 깨달아지면 좋은데, 수수께끼 혹은 감추어진 것이라는 말로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십니다.
겨자씨 비유는 이렇게 숨겨지고 감추어진 것들이 드러내지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열매를 맺게 됨을 드러냅니다. 알수없다는 것은 작은것으로 표현하고, 이런것들이 드러나면 마치 겨자씨가 싹을 틔우고 큰 나무가 되는 것과 같다는 비유입니다.
마지막에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이모든 이야기의 전개를 하나로 만들어내는 문학적 기법이 사용됩니다. 비유의 속성은 이해하는 자의 마음에 따라 그 깊이를 가늠하는데 있습니다. 즉 깊이 고민하면 할 수 록 내용은 더 깊이 마음에 와 닿을 수 있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에 대해 점점 명확해진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들을 이야기하시고, 풍랑을 잠잠케하신 사건은 비유가 아닌 가장 직접적인 사건입니다.
비유를 깨달은 자들은 예수님의 기적에 크게 동요하지 않지만, 여전히 비유를 이해못한자들은 기적에 두려워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무게는 하나님의 말씀은 기적을 넘어서는 우주적 선포임을 이야기합니다. 즉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베푸시는 기적에 관심을 갖지만, 그 기적은 마치 비유처럼 중요한 맥락이 감춰져 있음을 우리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그 감춰진 것은 우리들이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큰 열매를 맺기도 하지만, 돌짝밭에 떨어진 것처럼 금새 시들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믿음을 세워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긴 여정입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정확하게 어디로 향해야하는지를 살피는 것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믿음의 실천입니다.
묵상
어느것에 관심이 있으세요? 당장의 열매인가요? 아니면 긴 기다림을 통해 완성된 확신인가요?
중보기도
1. 장명숙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하와이 아름다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저희교회가 후원하는 비전교회입니다.
사순절 오늘의 실천
너무 관대한 자신에게 엄격한 마음 갖기
그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에서부터 홍해 길을 따라 나아갔다. 길을 걷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몹시 조급하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습니까?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까? 먹을 것도 없습니다. 마실 것도 없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 (민 21:4-5)
식상함을 극복하는게 늘 숙제처럼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교회사역을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했을때 매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린적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교회사역은 이벤트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은혜로 사역의 방향이 바른 가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는 분중에 세미나병에 걸린 목사님도 계십니다. 늘 새로운 세미나를 찾아서 전국을 돌아다니시고는 다음해 1년을 그 세미나에서 배운것으로 사역을 디자인합니다. 매년 새로운 것들을 시작하니 교인들도 정신없어하고, 마르다처럼 일하는 분들이 지치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새로운것을 해야한다는 강박이 교회사역을 더 가볍게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교인들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그것을 일년내내 돌린다고 해서 교인들이 성숙해지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어쩔때는 여백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공동체에서 오히려 하나님과 깊이 동행하는 것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민수기 본문은 출애굽의 길어진 평범한 일상에 대한 두려움이 불평으로 터져나온 이야기입니다. “보잘것 없다”, “진저리 난다”라는 다소 과격한 문장들이 등장합니다. 광야생활이 만만치 않았고, 마실것, 먹을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터져나온 불평들이 가득합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는 모양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그리고 선택된 백성들이지만, 아직까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모르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드러내는 것은 눈에 보이질 않고, 자신들의 익숙한 눈으로만 하나님을 해석하고, 지금 일어난 일을 해석하려는 의지가 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한 배려보다는 광야가 이들을 훈려시키는데 가장 최적의 사역이었던것 같습니다. 당장은 불평을 드러내지만, 광야를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훈련받고, 불평보다는 순종의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광야라는 긴 여백은 우리를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완벽한 도구일지 모릅니다.
묵상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광야인가요? 아니면 다른 여백에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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