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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열린교회BKUMC

시편 66:8-20, 2024.11.06 (수)



나는 주님께 도와 달라고 내 입으로 부르짖었다. 내 혀로 주님을 찬양하였다. 내가 마음 속으로 악한 생각을 품었더라면,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응답하여 주시고, 나의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 (시편66:17-19)

긴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으니 새로운 날이 된것 같습니다. 매번 이 복잡한 대통령선거제도는 잘 이해가 가질 않지만, 그 시간은 지나갔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이 있겠지만, 평화가 그 가운데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아시겠지만, 저희 집에 강아지 한마리를 입양해서 키운지 4년째 되어갑니다. 유기견이다 보니 정확한 나이는 모르는데 4살쯤 되었다고 하니까 이제 거의 여덟살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도 적응하고 주인도 적응하는데, 사고치는 것은 날로 진화합니다. 안하던 사고를 칠때마다 점점 나아지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는데 알아듣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칼럼을 쓸때, 또는 늦은밤까지 뭔가를 할때 옆에 앉아서 꼬리를 흔드는 것 하나는 왠지모르게 평온함을 줍니다.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라고 합니다. 이기적인 개인성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자기 삶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의 간섭, 또는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사는게 맞어~! 라는 의식이 강하니 행복할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전체주의 또는 국가의 시스템이 간섭할수록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평온함으로 문장을 시작하면서 사실 이 평온함, 평화는 누군가가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마음 먹었냐에 따라 평화가 삶에 찾아올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편기자는 평온하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65편까지는 다윗의 시였지만, 66편은 노래를 인도하는 어떤 무명의 인도자의 요청에 따라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를 따라부르는 자들의 마음은 다양합니다. 절망과 슬픔에서 부터 무기력 또는 기대와 소망이 가득한 사람들까지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인도자의 요청은 분위기에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상관없이 세상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의도한것과 다르게 삶이 굴곡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자신의 기준에서 가혹하게 삶을 판단하면 이런 불행이 어디있을까? 싶지만, 여기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을 찬양할 여유가 있다"면 이건 새로운 삶의 모양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진지하게 삶을 살아가고, 여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간다는 의미는 내 삶 자체를 하나님께 맡긴 삶이라는 확신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내 삶은 이런 삶 그리고 그런 삶을 통해 일어나는 기대"를 소망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온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묵상

오늘 평온함으로 평화의 인사를 서로에게 나누십시오.


중보기도

  1. 이민자들이 모인 열린교회가 평화와 기쁨을 전할 수 있는 교회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2. 오린다 예배당 공사가 잘 마무리되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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