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외로운 사람들에게 머무를 집을 마련해 주시고, 갇힌 사람들을 풀어 내셔서, 형통하게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은 메마른 땅에서 산다. (시편 68:6)
시편이 그냥 하나님께 부르는 찬양시인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역사적의 배경과 그 안에서 일어난 놀라운 경험을 노래로 기록한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다윗의 시이고, 인도자에 따라 불렀다는 것은 예배때 이 사건을 기억하고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0장에 보면, 암몬왕 나하스가 죽자 다윗이 신하들을 조문단을 꾸려서 보냅니다. 나하스가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인지는 나와있지않지만, 다윗으로서는 당연한 도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하스의 아들 하눈왕과 관리들은 이것을 염탐하러온것으로 보고, 다윗의 신하들의 수염을 자르고 엉덩이가 보일정도로 옷을 자르는 수치심을 주고는 돌려보냅니다.
다윗이 복수할것을 두려워한 암몬은 용병단을 꾸려서 전쟁을 준비하지만, 이스라엘의 요압장군에게 용병단이 압살당합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다윗은 노래했습니다. 자신의 승리를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 지를 고백하려는게 다윗의 의지이고, 오늘 불려진 시편노래의 의도입니다.
고백과 이야기 그리고 여기에 많은 삶의 흔적들은 어떤 방향을 향해 가는지를 알려줍니다. 우리들이 주로 이야기하는 것, 보려고 하는 것, 나누려고 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11월, 어쩌면 한해를 마무리할 것을 준비하는 시간속에 "전수" 즉 다음세대에 전해줄것,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가를 보여줄것인가?를 이야기하려다 보니, 고민이 많습니다. 교회의 모양을 갖추는 것에 힘을 쏟았으니, 어떤 내용을 채워야할지를 고민한다는 뜻입니다. 하드웨어안에 어떤 소프트웨어를 갖춰야할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술이나 이벤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가를 고민해야한다는 뜻입니다.
눈에보이는 많은 숙제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다 해결하려고 덤벼드는 것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간절함을 드러낼 수 있을까?"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우리의 출발선이 있어야 할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형통하다는 것은 내 중심으로 모든 것이 술술풀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창세기에 보면, "죽복"이라는 단어는 "무릎꿇다"라는 동사로 파생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스스로를 낮추실때 이것을 우리가 "축복"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고, 우리가 우리를 낮추었을때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잘 풀리는 삶이 우리의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스스로를 낮추시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들 늘 우리를 낮추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묵상
"형통"하게 하신다는 경험이 있으신가요?
중보기도
오클랜드 캠퍼스 빌딩이 잘 팔릴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열린교회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토요일 새벽예배, 주일예배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세요. 11월 10일 주일예배에는 새신자 환영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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