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성벽이 무너졌는데도, 너희 예언자들은 성벽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않았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주의 날에 전쟁에 대비하려고 성벽을 보수하지도 않았다. (에스겔 13:5)
한국에 산의 이름 중에 “악”이 들어가면 산이 험하다는 의미입니다. “설악산", “치악산", “삼악산"등 이런 이름이 붙은 산들은 산세가 험하고, 등산할때도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는 산입니다. 이런 험한 산을 가끔 오를 때, 정말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때가 있는데, 어떤 분은 이제 돌도 안된 아이를 뒤에 메고 오르는 엄마를 본적도 있고, 험한 산중에 홀로 등산을 즐기는 여성분도 본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산을 좋아하는 분들이 이런 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냥 그 자체가 산을 등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런 분들과 달리, 친교와 이끌림에 의해 강제로 산을 올랐던 저로서는 산 정상을 올라서는 성취감보다, 함께 산을 오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더 큰 기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혼자서 산을 오를리는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기대하며 살고 있습니다. 홀로 산을 오르는 것을 기대하기도 하고,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기대합니다. 갑자기 사람이 변한것이 아니라, 혼자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맛을 보게 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용한 산속에서 나란 존재를 스스로 들여다 보는 시간과 더불어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소중하고 간절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히 절대로 그럴리 없을 것이라는 기억이 생생한데, 그 기억과 상관없이 마음이 바뀌는 것을 느끼고 있으니, 변화를 느끼고, 어떤 과정으로 이 변화들이 이루어지는 지를 관찰할 수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변화를 바라보는 것 만큼 신나는게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에스겔 본문은 거짓 예언자들의 활동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거짓 예언의 문제는 거짓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 거짓 예언으로 인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변화를 못하게 하는 것은 왜곡된 시선으로 삶을 묶어놓게 하는 잘못된 방향을 내놓는 사람들때문입니다.
에스겔은 바른 변화를 위한 방법을 알고 있지만, 막막한 거짓예언에 멸망에 방향에 선 유다를 보며 질책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놓치면 결국 더 큰 어려움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묵상
어떤 변화를 위해 노력중이세요?
중보기도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송영랑 집사님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하나님께서 아버님을 지켜주시고 천국가실 때까지 그 길을 잘 인도해주시기를…어머님을 강건히 잘 붙잡아주시기를 함께 힘모아서 기도해주세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