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갑작스러운 부고소식에 하루종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함께 목사 안수 과정에서 만났던 분이고, 같은 지방에서 5년정도 함께 동역하며 정기적으로 교제했던 분이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유학길에 올랐다가, 공부보다는 목회에 소명있다는 생각에 늦은 나이에 안수과정을 시작한 분이었습니다. 유학시절에 좀더 쉬운 방법으로 안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바르게 과정을 마쳐야 한다는 마음으로 귀국 하셨다고 합니다. 여성 홀로, 유학 안수 과정 그리고 목회를 하시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그 목사님은 늘 올 곧게 사역하려고 하셨습니다. 부당한 것에 올 곧게 이야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배울게 많은 분이었습니다. 가끔은 너무 까다로워서 사람들이 관계하는데 부담스러워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개인적으로 그 분의 그런 성품이 좋았습니다.
제법 긴 암투병 끝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목사님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글들이 SNS를 통해 알려졌고, 저의 마음도 함께 보태었습니다. 덕분에 연락이 오래만에 닿은 분들과 짧은 기억을 나누고는 지나온 시간에 무게를 담아 생각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간은 가도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고, 너무 빨리 변하는 것들 사이에 먼 시간이 마치 지금 마주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스스로 많이 변해버린 것을 재빨리 알아차릴 수 있는 시간도 마주했습니다.
변치 말아야 할 것이 변한 것은 아닌지, 변해야 할 것이 안변한 것은 아닌지, 기억의 너머에서 그 분이 늘 이야기하시던 생각들이 메리치며 가슴을 울리는 시간을 잠시 보낸것 같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장로들이 에스겔을 찾아왔습니다. 앞으로의 일이 궁금했기때문입니다. 이 궁금함 앞에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전한 메시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장로들 마음에 품어있는 우상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그 죄로 인한 심판은 여전히 계속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노아, 다니엘, 욥이 살아있다 해도, 장로들과 같은 마음이라면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우상"에 대한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토록 예민하게 구신걸까? 구약시대의 언어와 지금의 언어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예민하게 보인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실제로 구약의 기록은 사건이 일어난 후 반성하며 기록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반성의 과정에서 이미 예언자들이 예언한 내용들을 통해 그 반성은 명확해졌습니다. 잃어버린 기억의 여정을 더듬으며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성서기자들은 노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방향은 하나님을 향한 바른 믿음을 갖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 해야합니다.
기억이 우리를 새롭게도 하고, 바르게도 합니다.
묵상
어떤 마음이 가득한가요? 새로운 것인가요? 바른 것인가요?
중보기도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질병가운데 있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아이들과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소망회 회원들을 위해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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