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스라엘 족속에게 내 영을 부어 주었으니, 내가 그들을 다시는 외면하지 않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에스겔 39:29)
곡은 로스와 메섹과 두발을 다스리는 왕입니다. 정확하게 어느지역인지는 모르지만, 북방의 땅이라는 것, 그래서 오늘의 러시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아들인 야벳의 후손들로 알려져 있으니, 이스라엘과 연관이 있는 족속들입니다.
이들은 유다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약탈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곡의 행위는 이스라엘에게는 끔찍한 또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되었습니다. 마치 넘어진 사람을 다시 밟는 것 같은 기억을 이스라엘에게 주었습니다.
이 기억은 요한계시록에서도 큰 고난의 상징으로 소개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곡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곡을 심판함으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외면치 않겠다고 하십니다.
어떤 고난이 몰려와도 하나님이 외면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99번 고속도를 타고 남쪽으로 가다보면, 리빙스턴이라는 작은 도시가 나옵니다. 전국의 모든 고구마를 생산하는 곳이다보니까, 고구마 영농조합이라는 것이 있고, 여러 농장에서 농사지은 고구마를 한군데 모아서 판매하고 배송하는 일을 맡아합니다. 보통은 이런 조합들은 같은 조건 같은 환경을 만들어서 비슷한 맛을 내도록 노력해야하는데, 농사를 짓는 사람마다 비료를 잘 주거나, 아끼거나 하다보니까, 농장마다 맛이 다를수 밖에 없으니, 매번 구입할때마다 어떤 것은 맛있고, 어떤 것은 맛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고구마도 다루는 사람에 따라 다른 맛을 내는 것처럼, 신앙의 모양도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보는 것도 그럴수 있고, 곡이 그랬던 것처럼 기회를 엿보고 감당하기 쉬운 전쟁으로 약탈을 꿈꾸는 것도 결국 어떤 눈으로 삶을 끌어가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삶의 모양, 당연히 최선을 다한 결과가 의미가 있겠지만, 모두가 똑같은 모양으로 삶을 살아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 야벳의 후손은 홍수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선택을 경험한 후손들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경험을 해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자손들이 있는 반면에,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내는 자손들이 있습니다. 선택의 문제일지 모르지만, 결국 어떤 무게로 세상을 살아가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 다름은 결국 “하나님이 다루심으로 정리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묵상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나요?
중보기도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속회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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