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그는 이스라엘의 왕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갔고, 자기의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쳤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의 역겨운 풍속을 본받은 행위였다. (왕하 16:3)
이제 역사의 중심은 남유다로 넘어왔습니다. 유다의 아하스 왕은 이전의 유다왕들과 달리 이스라엘왕들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윗을 전혀 따르지 않았던 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종교에 대한 관심은 컸던 것 같지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아닌 이미 사라진 이방인들이 했던 가장 추악한 것을 따라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번제로 드렸다는 것은 그 만큼 종교성은 강했지만, 하나님이 아닌 엉뚱한 신앙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아하스가 잘하는 것은 외교술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리아와 북 이스라엘 연합군에 위협을 받자, 앗수르를 움직여서 시리아를 공격하게 합니다. 이때, 성전에 마련된 값나가는 성전도구를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앗수르왕을 만나고는 우리아 제사장에게 자기가 본것과 똑같은 번제단을 만들도록 명령합니다. 이것 또한, 종교성인 강했던 아하스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하스는 힘있는 앗수르왕과 그들이 하는 종교예식을 따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신앙심이 깊기는 했지만, 신을 의지하려고 노력했지만,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든든히 할 어느신이 듯, 눈에 좋아 보이면, 혹은 힘이 강해보이면, 어느 신이든 상관없이 따라하려고 하는 모습으로 아하스를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깊고 넓은 것은 좋지만, 어떤 방향으로 신앙을 품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아하스는 열광적이었지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향해 그 에너지를 사용했습니다.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깊이 하나님이 경외하는 신앙이 더 깊은 신앙입니다. 다른 화려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묵묵히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바른 신앙입니다. 자신을 높여주고, 소위 성공이라는 곳을 향하기위해 신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사안일을 위해 부적을 붙이고 다니는 행위와 비슷합니다. 아하스왕은 열광적이었지만, 바른 신앙인은 아니었습니다.
묵상
바른 신앙은 어떤 모습일까요?
중보기도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중고등부 수련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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