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마음을 다 기울이고 생명을 다하고 힘을 다 기울여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주님께로 돌이킨 왕은, 이전에도 없었고 그 뒤로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왕하 23:25)
요시야에 대한 열왕기하의 평가는 "주님께로 돌이킨 왕은 이전에도 없었고 그 뒤로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는 하나님께 치열하게 바로서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랫동안 율법을 지키지 않고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나라를 돌이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열왕기상하에서는 나라의 운명이 왕의 신앙에 달려있었습니다. 왕이 어떤 방향에 서있는가?에 따라 나라가 어떤 상황에 빠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정치와 종교가 일치하던 시대, 물론 제사장과 예언자들의 활동이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왕이 어떤 방향을 향해있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이런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선택하셨다는 의미이고, 가나안땅은 이런 이스라엘을 불러다가 약속한 땅으로 보내셨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더해줍니다. 여기에 왕은 바로 이런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였으니 당연히 왕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가 매우 중요하게 나라의 운명을 좌우했을 것입니다.
열왕기상하는 다윗왕을 기준으로 왕들을 평가합니다. 다윗은 그 만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든든하게 했던 인물로 다윗의 자손에서 메시야가 등장한다는 신앙은 이스라엘을 어떤 상황에서도 지탱하는 힘을 주었습니다.
다윗 이후, 요시야가 훌륭한 평가를 받은 이유는 다윗만큼은 아니지만 유다를 하나님 앞에서 율법안에서 바로세우려고 노력했기때문입니다.
애굽의 느고왕이 북진 하는 것을 막다가 므깃도에서 전사하지 않았다면 요시야왕은 더 큰 과업들을 달성했을 것입니다.
신앙은 한번 뒤쳐지고, 잊어버리면 회복하기 쉽지 않습니다. 가끔 예전에 열심히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안타까운 이유는 신앙은 현재의 고백이 중요하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는 중요하지 않기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불교처럼 선행을 쌓아두는 누적된 삶으로 복음을 구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신앙은 누적은 없습니다. 지금 바로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앞에 서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죄도 누적되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먹물같은 죄가 하얗게된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가 요시야왕을 통해 알리고 싶은 것은 지나간 시간에 묶여살지 말고 지금 바로 하나님앞에 서려고 하는 노력이 곧 삶을 결정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하루, 시간은 비슷한 시간을 보내시겠지만, 새로운 시간앞에 하나님과 새로운 삶을 마주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 묶여있지 말고 다만, 지난 시간을 자양분 삼아 오늘을 새롭게 사는 것에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오늘하루, 새로운 삶을 마주한 기쁨의 날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묵상
요시야를 성경이 높이 평가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중보기도
가끔 사람들의 마음을 모를때가 있습니다. 드러나는 표현은 긍정인것 같은데 부딪히는 불안함에 가볍게 흐트러지는 것을 보면, 우리들이 함께 믿고 세운 신앙공동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교회, 곧 신앙공동체는 우리들이 함께 세워가는것입니다. 열린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기도합니다. 눈앞에 불안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생각지 못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린다캠퍼스를 업데이트 하면, 현재, 양쪽 슬라이딩 유리도어와 폴딩도어를 달았습니다. 각 방에 들어가는 전기등을 LED로 바꿨고, 화장실에 벽 타일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공사하는 분들의 말로는 화장실이 이쁠거라고 합니다. 이쁜 화장실이 어떤건지 궁금합니다. 주문한 물건들이 하나하나 도착하고 있습니다. 교회 뒤쪽 백야드가 거의 2 에이커 정도 되는데, 제멋대로 자란 풀들을 잘라야한다는 소방서의 지적에 내일부터 고용된 분들이 잘라낼겁니다. 더불어 죽어가는 레드우드도 잘라냅니다. 하나 하나 만들어져가고 있습니다. 간절한 기도가 더욱 필요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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