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시드기야와 고관들이 모두 포로로 끌려갑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보호를 받고, 예레미야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에벳멜렉도 구원이 약속됩니다.
새길말씀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은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에게 예레미야의 처우를 두고, 이렇게 명령하였다.
“너는 그를 데려다가 잘 보살펴 주어라. 너는 그를 조금도 해치지 말고, 오직 그가 너에게 요구하는 대로 그에게 해주어라. (렘 39:11-12)
묵상
마침내 예루살렘의 성벽이 뚫리고 유다가 멸망합니다. 시드기야와 고관들이 도망을 가지만, 느부갓네살 왕은 쫓아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아들들을 처형하고, 시드기야의 두눈을 뽑아버립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에 대해서는 보호를 명령합니다.
성경의 전쟁은 진멸법으로 전해저 옵니다. 전쟁에서 지면 살아남은 자가 없게 됩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시드기야를 죽이지 않고 포로로 끌고 갑니다. 유다의 고관들도 함께 끌려갑니다. 앗수르의 식민지 정책은 민족들을 피를 섞어서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면, 바벨론은 포로로 끌고 가서 바벨론의 엄청난 문명에 동화되도록 합니다. 바벨론은 이처럼 자신들의 문명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이런 문명을 세운 대 제국이 작은 유다왕국을 무너뜨리는 것이 어려웠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애굽으로 가는 길못에 유다가 있지 않았다면, 존재감 없이 그대로 방치했을지도 모릅니다.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점령한 이유는 애굽을 견제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복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자신의 문명에 대한 자신이 감이 컸던 느부갓네살이 예레미야를 따로 보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루살렘이 점령될때, 예레미야는 감금상태였습니다. 특히 근위대 뜰에 갖혀있었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유다왕국에 대척점에 있던 어떤 정치범 정도로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이유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하나님이 예언을 통해,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선포하신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과연 느부갓네살의 보호를 어떤 이유로 직접 받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보호하고, 예레미야를 보호하려고 했던 궁중 내시 에벳멜렉에게도 구원이 허락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건 속에 숨겨진 진실은 이후 이 역사를 해석하는 자에 의해 드러난다고 합니다. 시드기야와 고관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역사에는 현실이 아닌 자신들의 기대로만 가득차있었고, 느부갓네살은 대제국이라는 야망으로 자신의 역사를 쓰고 있었고,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이들이 모르는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이런 삶의 여정에 우리들이 선택해야할 방향은 무엇일까요?
기도
하나님, 하나님이 기록하고 이끌어가는 역사에 놓여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중보기도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긴장을 놓치 말고 서로 조심해서 속히 모든 삶의 모양들이 회복되도록 기도해주세요.
박두진 권사님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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