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난해함은 시선과, 용어 그리고 숫자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있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은 요한의 변경된 시선과 함께 내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요한의 환상정도 혹은 천국의 환상, 심판의 환상으로 이해하지만, 요한은 박해의 끝은 결정적으로 하나님이 승리하심을 환상가운데 발견하고 그것을 나누고 있습니다.
몇가지 특징은 우선, 구원은 이스라엘에게 제한적이라는 사실고, 이방인에게 활짝열려있던 복음이 요한에게는 매우 제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요한의 환상으로 인해서 구원받는 조건을 까다롭게 이야기하고, 어렵고 두려운것을 보는 이유는 요한의 계시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가 철저하게 정해진것에 의해서 혹은 다른 사도들의 사역과 다른 방향에서 일어날 것을 전하기 위해 계시록을 기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은 절대적인 심판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고, 등장하는 용어와 숫자에 예민하게 해석하는 경향을 보면, 한발짝 물러서서 요한계시록이 보이고 있는 환상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구원관을 세워가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간단하게 예를 들면, 24장로의 등장은 마치 특별한 어떤 존재임을 예측하게 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숫자는 신성한 숫자를 가르키고, 24는 완벽한 숫자 12의 두배로, 더 완벽한 존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은 정말로 하나님의 구원이 배타적일까? 요한의 걱정은 첫번째 박해로 교회가 쪼개지고, 분열되고,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박해로 인해, 믿음의 사람들이 박해로 인해, 교회를 공격하는 내부의 거짓 교사들이 등장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박해받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했습니다.
박해는 심각했고, 심각한 만큼 요한은 더 간절히 신약의 예언서를 기록해야 했고, 대부분 내용은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구약의 예언서와, 외경을 메타포로 삼아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지어낸것일까?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요한이 지어낸 것이라기 보다는 공동체의 고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이 대표적으로 정리한 사람일 수도 있고, 저자에 대해 여러가지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시 교회가 필요했고, 필요한 것을 나눔으로 “하나님이 마침내 승리하시고, 믿음을 굳건하게 지키는 자에게 구원은 허락된다는 것”을 초대교회에 확인시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문자로 이해하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승리하시고 마침내 심판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며 비슷하게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긴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방향은 분명히,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교회는 이 말씀을 붙들고 긴 박해의 기간을 견디어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시간은 지나가고 상화도 변화되고, 지금의 상황에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해는 그 박해를 이겨낸 교회공동체의 믿음의 상황을 확인함으로 지금 우리들의 신앙을 든든히 해나가는 것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묵상
성경에 등장하는 자주 등장하는 숫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요한계시록이 곧 하나님의 승리를 드러냄으로 초대교회의 박해를 이겨내게하는 힘을 주기 위한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중보기도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교회학교와 중고등부, 청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점점 세상은 코로나바이러스를 극복한 것처럼 회복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는 좀더 신중하게 예배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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