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가 이르렀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근원을 만드신 분께 경배하여라." 또 두 번째 다른 천사가 뒤따라와서 말하였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도시 바빌론이 무너졌다. 바빌론은 자기 음행으로 빚은 진노의 포도주를 모든 민족에게 마시게 한 도시다." 또 세 번째 다른 천사가 그들을 뒤따라와서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짐승과 그 짐승 우상에게 절하고, 이마나 손에 표를 받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다. 그 포도주는, 물을 섞어서 묽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부어 넣은 것이다. 또 그런 자는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14장7절-10절)
요한계시록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반복적인 용어선택과 비유적인 표현이 많이 있기때문입니다. 십사만사천명이 구원받는다는 숫자에 몰입하면, 이 숫자안에 들어야한다는 강박과 불안함이 생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말라는 말에, 짐승의 표를 받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음모에 교회는 오랫동안 진통을 알았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때인가, 바코드가 일생생활에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코드가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니 심판의 때가 얼마 안남았다는 내용이 교회를 휘감았습니다. 불안함에 신앙이 극단으로 치닫는 분들도 계셨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미국에 처음 왔을때는 베리칩이 바코드와 비슷한 분위기로 음모론이 가득했습니다. 사탄이 마련한 표시를 받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 이런 비슷한 음모론에 휩싸여 있습니다. 백신을 맞는 순간,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십사만사천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를 가르키는 것이지 실제 숫자의 개념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많이 무리를 나타내는 것이지 그안에 경쟁을 통해 선택받아야 하는 숫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마와 손의 표를 받지 말라는 것도 성경에 두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인을 이야기하는데, 인을 새긴다는 것은 “소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짐승의 인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 즉 하나님의 소유에서 박해자의 소유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려운 것 같지만, 내용을 깊이 읽다보면, 요한의 문학적 상상력과 희망과 기대, 곧 끝날 박해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더 크고 놀라우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요한계시록의 방향이 녹아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묵상
십사만사천과 짐승의 표시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었었나요? 지금은 어떤 마음인가요?
중보기도
박두진 권사님이 혈소판 수치가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오르지 않으면 수요일쯤에, 올라있는 혈소판 수치 만큼만 항암치료를 받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8차가 아니라, 7.5차 정도 되는 것이겠죠. 지치지 않고 치료를 위해 노력하시는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에 든든히 교회가 세워지기를 기도해주세요.
인도와 미얀마 그리고 미국과 한국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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